지난해 12월 시행된 희귀질환관리법으로 인해 일부 기존 희귀병 환자들이 ‘혜택 배제’ 가능성 탓에 염려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없음. 일요신문DB
강직성척추염은 면역체계의 이상으로 생기는 질환이다. 척추 관절에 염증이 생겨 심할 경우 척추 뼈와 관절이 대나무처럼 하나로 붙어 척추 마디가 굽어지지 않는다. 초기 증상은 고관절이나 무릎관절이 아프면서 붓고 열이 나는데 그대로 방치하면 척추 변형이 일어나면서 관절운동이 불가능해진다.
강직성척추염 환자들은 그동안 ‘산정특례제도’의 지원을 받는 희귀난치질환자로 분류됐다. ‘산정특례’는 값비싼 의료비 때문에 고통을 겪는 희귀난치성 질환자들을 위해 보건복지부가 본인 부담 진료비를 경감해주는 제도다. 강직성척추염 질환자들이 치료비의 10%를 부담해온 까닭이다.
강직성척추염 환자 A 씨는 “갑자기 무릎이 뻣뻣하고 엉덩이뼈가 아팠다. 처음에는 허리디스크인 줄 알았는데 강직성척추염 진단을 받았다. 통증이 너무 심해서 1년을 집에만 있었다. 우울증이 왔고 인생을 포기하고 싶었다“라며 ”주사제가 매우 비싼 편이지만 다행히 산정특례 제도 덕분에 약값이 훨씬 덜 들었다”고 전했다.
최근 A 씨와 같은 강직성척추염 환자들이 전혀 다른 의미에서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2017년 10월 23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강직성척추염 산정특례 제외 검토 철회 요청”이라는 제목의 청원까지 올라왔다.
청원자 B 씨는 “강직성척추염이 희귀질환관리법상 유병인구 2만 명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산정특례에서 제외될 위기다”며 “강직성척추염 치료비는 환자와 가족들에게 극심한 경제적 고통을 안겨줬는데 제외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시행된 희귀질환관리법 2조는 “희귀질환이란 유병인구가 2만 명 이하이거나 진단이 어려워 유병인구를 알 수 없는 질환이다”고 명시하고 있다. 2015년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강직성척추염(M45)으로 인한 산정특례자(V140)의 건강보험 지급자료를 분석한 결과, 진료인원은 2010년 1만 5613명에서 2014년 2만 4137명으로 늘어났다.
이승호 강직성척추염 환우회장은 “2만 명이라는 획일적 기준으로 희귀질환에서 제외하겠다고 말하는 것이 환자들을 새로운 혼란에 빠트렸다. 기존에는 보건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이 희귀질환에 해당하면 산정특례를 해줬다. 그런데 새로운 법에 따르면 강직성척추염이 희귀질환에서 탈락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희귀질환과 산정특례는 별개의 것”이라는 입장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산정특례 대상 질환이 국가적으로 인정하는 희귀난치성 질환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강직성척추염이 산정특례에서 빠지지 않는다”고 밝혔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도 “산정특례 목적 자체와 희귀질환 여부는 목적 자체가 다르다. 연계를 시킬 필요는 없다”고 전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에는 강직성척추염에 대한 산정특례 제외 검토를 철회해달라는 글이 올라와 있다.
하지만 강직성척추염 환자들의 불안은 여전하다. 강직성척추염연합회 ‘강인함’의 대표 C 씨도 “보건복지부의 입장을 믿을 수 없다. 정부에서 희귀와 난치를 분류하고 분류에 따라 산정특례 대상을 재검토하겠다는 소식을 최근에 들었다”고 전했다.
실제로 질병관리본부는 희귀질환관리법의 ‘유병인구 2만 명 이하’를 기준으로 희귀질환을 분류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질병관리본부 희귀질환과 관계자는 “과거에는 2만 명이라는 기준이 없었다. 법 시행에 따라 2만 명이 넘는 질환과 아닌 질환을 구분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관계자도 “희귀질환에서 제외된다고 해서 산정특례 대상에서 제외되는 건 아니다. 다만, 난치질환에 대한 정의와 산정기준을 내부적으로 마련 중이다. 희귀질환에서 제외된 질환이 난치질환 산정특례를 적용받을 수 있다. 하지만 반드시 난치 쪽으로 들어간다고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밝혔다.
강직성척추염 환자 D 씨는 “강직성척추염 진단을 받으면 ‘생물학적 제재’라는 단백질 억제 주사를 맞는다. 척추관절이 굳고 심한 사람에게 쓴다. 주사 세트 당 가격들은 100만 원에서 120만 원 정도다. 일반적인 건강보험을 적용하면 70만 원이다. 산정특례를 받아 7만 원 안팎을 내왔다. 제외가 된다면, 앞으로 경제적인 고통 때문에 풍비박산하는 집들이 넘쳐날 것”이라고 우려를 드러냈다.
문제는 ‘산정 특례 제외’의 공포가 강직성척추염 환자들에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동안 ‘산정특례’를 받아왔던 크론병 등 기존의 희귀난치질환자들 사이에서도 불안감이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유병인구 2만 명 ‘근처’에 있는 기존의 희귀난치질환자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류마티스 관절염 환자 인구는 25만 2300명, 크론병 환자 수는 약 1만 9000명에 달한다. 대한장연구학회와 대한류마티스학회가 최근 이들 질환에 대해 산정 특례 적용이 제외되지 않도록 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인 까닭이다.
임유순 류마티스 관절염 환우회장은 “우리는 죽을 때까지 힘들다. 손가락 변형도 온다. 가만히 있다가 발작하듯이 지진이 일어나는 것처럼 강한 통증이 온다. ‘희귀난치’ 질환에서 ‘희귀’만을 뽑아내면 안 된다. 한 번 희귀질환이 됐으면 끝까지 가야 한다. 생물학적 제재 등 류마티스 관절염 치료제에 대해 산정특례를 주지 않으면, 집 몇 채를 팔아야 하는 비용이 들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
‘가난한 것도 서러운데ㅠㅠ’ 저소득층 ‘희귀병 지원 사업’서도 제외 우려 강직성척추염, 류마티스 관절염, 크론병 환자들은 ‘희귀병 지원 사업’에서 제외될 우려도 크다. 보건복지부는 2008년부터 희귀질환자 중 저소득층 건강보험 가입자를 대상으로 본인 부담금 등을 지원하는 사업을 해왔다. 산정특례 등록자에 한해 등록신청 및 지원이 가능하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관계자는 “희귀질환자들에 대해서 산정특례로 경감된 본인 부담금에 대해 본인부담금을 다시 지원해주는 사업“이라며 ”산정특례는 치료비의 10%를 본인이 부담한다. 지원사업은 희귀질환자 소득과 재산에 따라 본인부담금에 대해서도 국가가 돈을 대주는 정책이다. 희귀질환관리법에 따라 강직성척추염 등 질환자들이 희귀질환 개념에서 빠지면, 저소득층 지원사업이 끊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승호 강직성척추염 환우회장은 “차상위층이나 저소득층 사람들은 10%도 내지 않고 지원 사업에 따라 주사를 맞아왔다. 그 사람들의 혜택이 없어진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경제적으로 어렵고 몸도 아픈 사람들을 정부가 구제해야 하는데…”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희귀질환관리법의 맹점이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논리적으로 희귀병 지원 사업 대상에서 빠질 수 있다“라면서도 ”하지만 희귀질환관리법은 관심을 못 받아온 희귀질환자들을 위한 법이다. 문제가 생기면 다른 정책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면 된다. 강직성척추염, 크론병, 류마티스 관절염 환자들을 무조건 ‘빼고가자’는 취지는 아니다”고 밝혔다. [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