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5일 북한 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와의 인터뷰 방송에 등장한 임지현(본명 전혜성)의 모습. 사진=우리민족끼리 방송 캡처
일단 지금까지 우리 내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그의 월북설과 납북설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단 지금까지 무게가 실리고 있는 월북설의 근거는 그가 생활고를 겪었다는 의혹, 3월경 한국에서 교제하던 남성과 실연을 겪었다는 점, 그 과정에서 메신저를 통해 입북 의지를 밝혔다는 점, 거주하던 고시원에서 귀중품을 챙기는 등 신변을 정리했다는 점 등이다.
반대로 월북설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납북설을 제기하는 입장의 근거로는 그가 장기 거주를 의도해 임대주택 입주를 꾀했다는 점, 이 때문에 그가 위장결혼한 중국인 남편과 서류 정리를 위해 중국행을 택했을 것이라는 의혹, 단지 입북 의도 메시지만으로 그의 월북을 설명할 수는 없다는 점 등이다.
필자가 파악한 임지현의 입북 과정을 이러하다. 우선 필자가 임지현의 납북 과정을 자세히 인지하고 있는 내부 관계자로부터 그의 납북과 관련한 결정적인 증언을 들을 수 있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임지현은 4월 중국 입국 이후 3일 만에 랴오닝성(遼寧省) 선양(瀋陽)에 위치한 칠보산 호텔에 들어갔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임지현이 위장결혼한 중국인 남편과 접촉을 위해 중국에 입국한 것은 사실이라고 한다. 선양의 칠보산 호텔 역시 그 남편의 부름에 따라 들어가게 된 것이라고.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칠보산 호텔은 북한 국가보위성(기존 국가안전보위부) 해외반탐국이 직접 운영(표면적으로는 국가안전보위부 산하 무역기관이 운영하는 것으로 되어 있음)하는 일종의 외화벌이 기관이었다.
이 호텔은 북한의 단순한 외화벌이 장소가 아니다. 반탐국 소속 요원을 포함해 중국 동북 3성에서 활동하는 북한의 해외 공작원들이 비밀회의를 진행하고 현지 당 생활 총화 및 특별강연회를 열던 장소다. 한마디로 임지현이 입실한 칠보산 호텔은 북한 보위부의 ‘아지트’였고 그는 호랑이굴에 제 발로 들어간 셈이었다.
보위성 관계자들은 앞서의 중국인 남편을 포섭했다. 앞서의 관계자에 따르면, 중국인 남편은 임지현에게 그동안 해결하지 못했던 채무 관계와 이혼을 위한 서류 정리를 해주겠다고 유인했고, 임지현은 그 덫에 걸려든 셈이었다. 다만 임지현이 어떻게 칠보산 호텔로 입실하게 됐는지 구체적인 루트와 과정은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임지현의 중국인 남편이 임지현의 포섭지원에 왜, 어떻게 동조하게 됐는지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이 관계자에 따르면 임지현을 저항 없이 납북하기 위해 특별한 장치를 사용했다고 증언했다. 이른바 석고를 이용한 특수 결박장치였다. 공기와 접촉하면 굳어버리는 석고를 활용해 납치자를 결박하는 일종의 붕대형 장치였다.
임지현은 이러한 결박상태에서 일시적 마취로 의식을 잃었고, 보위성 요원들은 그를 내국인 환자로 위장해 납북했다는 설명이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임지현은 이미 준비된 제3자의 여권을 통해 ‘단둥해관(세관)’을 통과했다. 이미 보위부가 미리 준비한 여권은 임지현과 나이 및 외모가 유사한 또 다른 북한주민의 것이었다고.
임지현은 방송을 통해 북한에 6월께 입북했다고 증언했지만, 앞서의 납북 과정은 4월경 일주일 안에 모두 이뤄진 것이라고 한다.
필자는 또 다른 북한 내부 정보원으로부터 이와 유사한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크로스 체킹이 가능했고, 내용은 대동소이했다. 특히 보위성 요원이 외모가 유사한 제3자 여권을 미리 준비했다는 내용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제3자 북한 주민은 중국 입국 후 비밀리에 북으로 다시 도강한 당시 상황을 추가로 확보할 수 있었다. 즉 임지현이 이 여권을 활용하기 위해 제3자 북한 주민이 비밀리에 도강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이 정보원이 파악한 루트는 앞서 단둥해관이 아닌 창바이(長白)세관을 통해 입국했다고 증언했다. 필자는 두 사람의 증언에서 엇갈리는 ‘루트’ 때문에 다소 혼란을 겪었고, 최근에서야 왜 루트가 엇갈리게 됐는지 원인 또한 찾을 수 있었다.
앞서 두 정보원이 아닌 또 다른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보위성은 임지현 납북을 위해 두 가지 루트 모두를 준비한 것이라고 한다. 즉 기획 단계에서 혹시 모를 문제가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 두 가지 루트를 마련하고 당시 시점에서 보다 안전한 세관을 택해 입북했다는 설명이다.
결론적으로 필자가 복수의 정보원을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임지현은 앞서 관계자가 증언했듯 단둥해관을 통해 북한에 들어간 것이 확실하다. 두 번째 정보원이 말한 창바이 루트는 일종의 예비루트였던 셈이었다.
지난해 4월 7일 입국한 북한 해외식당 종업원 13명의 모습. 사진=통일부
그렇다면 이처럼 충격적인 납북 작전을 기획한 국가보위성은 어떤 의도를 갖고 있었던 것일까. 앞서 관계자에 따르면 크게 두 가지로 얘기할 수 있다. 우선 북한 당국은 지난해 4월 8일 발생한 북한의 해외식당 종업원 13명(남자 지배인 1명, 여자 종업원 12명) 탈북에 대한 대응 차원이 컸다고 한다.
당시 이 종업원들의 탈북 계기는 당국의 상납 요구에 대한 부담이 크게 작용했다. 이 때문에 북한 내부에서도 파장이 상당했다. 게다가 우리 당국은 탈북한 종업원들을 다시 돌려보내라는 북한 당국의 요구를 묵살했다.
두 번째는 남한 탈북사회의 공포심 조성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오랜 방송활동으로 탈북자 사회는 물론 남한 사회 전체적으로 비교적 잘 알려진 임지현이 타깃이 됐다는 설명이다. 실제 탈북자 사회에서 임지현 사건은 여러모로 상당한 불안감을 가져왔다. 북한 입장에선 효과를 톡톡히 본 셈이다.
이윤걸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대표(겸 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
정리=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