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으로 고생한 수험생을 대상으로 한 할인 이벤트 광고가 외모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수험생 할인’을 키워드로 검색하면 관련 광고만 만여 개가, ‘수능 이벤트‘를 검색해도 9000여 개의 광고가 검색됩니다. 음식이나 놀이공원 광고도 종종 보이지만 다이어트, 성형처럼 외모와 관련된 광고가 대부분이죠.
그동안 학업에 열중하느라 하지 못했던 외모 관리를 하는 것이 무슨 문제냐는 의견도 있지만, 일각에서는 “학생일 때는 공부만 하라고 하더니 수능이 끝났다는 이유만으로 외모가 전부인 양 말하는 건 모순”이라고 반발했습니다.
일반적으로 ‘건강’과 ‘몸짱’을 강조해야 할 헬스장 광고에는 ‘예뻐져서 대학가자’라는 문구가 등장합니다. 광고에 굳이 과체중인 여성을 이용해 ‘대학에 가기 전에 예뻐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과체중은 대학 입학 전에 벗어나야 할 모습‘이라고 주입시키는 셈입니다.
이제는 살빼자고 말하는 헬스장 광고
또 다른 헬스장 광고에는 ‘공부하느라 고생했다. 이제는 살 빼자’는 말이 등장합니다. 광고를 본 한 네티즌은 “마른 몸이 정답인 건가”라며 “공부가 끝났으니 살을 빼야 한다는 말이 수능이 끝났다면 살을 빼는 게 당연한 것처럼 강요하는 것으로 들린다”고 말했습니다.
상큼한 신입생 되기 프로젝트라는 성형외과 광고
성형외과 광고에서 외모와 관련된 문구는 더 많이 눈에 뜁니다. 모델도 여성을 주로 사용합니다. 그것도 빼어난 외모의. 한 성형외과에서는 ‘상큼한 신입생 되기 프로젝트’라는 멘트를 사용하며 신입생이 ‘상큼’해지기 위해 성형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같은 회사의 다른 광고에서는 ‘캠퍼스 퀸카의 시작’을 성형외과와 함께하자고 말합니다. 고생한 수험생뿐만 아니라 학부모에게도 함께 프로모션을 제공한다고 합니다. 고생에 대한 보상을 ‘외모’를 통해서 받아야 하며, 모두가 캠퍼스 퀸카를 꿈꿔야만 하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성형외과에 나의 스무살을 부탁하라는 광고
다른 업체의 광고에서도 ‘수능 끝 예쁨 시작’이라며 ‘스무 살을 부탁한다’는 말이 등장합니다. 광고를 본 대학생 이 아무개 씨(20·여)는 “스무 살이 잘 사는 방법은 예뻐지기 위해 성형외과에 부탁하는 거였다”며 “내 스무 살은 실패한 거였다”라고 허탈해합니다.
성형외과나 헬스장에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예뻐질 준비가 됐냐’는 미용실 광고에서부터 ‘원래 날씬했던 것처럼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해준다는 다이어트 업체 광고까지 수험생에게 ‘예쁘고 날씬한 것’이 좋다고 은연중에 말하는 광고가 넘쳐납니다. 성인이 아닌 미성년자에게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수능 전과 후가 이중적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부분입니다.
미용실과 다이어트 업체까지 수험생을 대상으로 한 광고의 폭은 넓다
이다혜 서울여성회지부 동서울 여성회 회장은 “수험생을 대상으로 한 이런 광고는 외모 가꾸기도 일종의 자기 관리, 스펙 쌓기로 받아들여지는 문화를 조성한다”며 “이런 분위기 속에서 외모로 개개인의 가치를 서열 매기는 것은 학생들 자신의 자존감에도 부정적 영향을 준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승연·박영숙 이화여대 교수 또한 논문에서 “외모에 대한 사회문화적 태도를 인식하고 내면화한 여학생의 신체 만족도가 낮다”며 “낮은 만족도는 우울 또는 자살 사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는 남학생에게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광고를 통해 외모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회의 기준에 많이 노출될 수록 청소년에게 부정적 영향을 주는 셈입니다. 특히 대학 생활을 기대하는 수험생에게 ‘대학’과 연관되는 광고 멘트는 더 큰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위의 광고를 본 대학생 송 아무개 씨(23·여)는 “미의 기준을 하나로 두고 수험생에게 맞추라고 요구하는 게 불쾌하다”며 “이전까지 공부만을 강요하고, 화장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하더니 갑자기 성형까지 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지적합니다.
이어 그는 “(내가 수능이 끝났을 때도) 많은 부모가 입학 선물로 성형을 권했다. 왜 저렇게까지 하는지 너무 불쾌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자신을 수험생이라고 밝힌 한 네티즌은 “수능이 끝나면 화장, 성형 다 할 수 있다”며 ”같은 학생인데 수능 전과 후가 이렇게나 다르다“고 꼬집었습니다. 다른 네티즌도 “수험생 할인을 해 주는 것은 좋다”면서도 “하지만 할인을 받고 친구들이 성형하는 걸 보면 (할 생각이 없다가도) 해야 되는 건가 싶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꼭 예뻐져서 대학 가야하나요.
구예지 인턴기자 yezyhar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