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소룡은 1973년 32세의 나이로 돌연사했다. | ||
둘 다 중국 무술을 연마한 배우로 생전에 쿵푸 영화에 주로 출연했다는 점도 그렇거니와 또한 캐러딘의 최대 히트작인 70년대의 TV 시리즈 <쿵푸>가 사실은 이소룡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작품이었다는 점도 그렇다. 만일 이소룡이 갑자기 죽지 않았다면 캐러딘의 역할을 맡았거나 혹은 함께 출연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소룡이 죽은 후에는 대신 이소룡의 아들인 브랜든 리가 한 회에 특별 출연하면서 아버지의 못다 이룬 꿈을 부분적으로나마 실현하기도 했다.
또한 수수께끼를 남긴 캐러딘의 죽음처럼 이소룡의 죽음에 대해서도 여전히 미스터리가 가득하다. 지난 1973년 7월 20일, 대만 배우 베티 팅페이의 집에서 32세의 나이로 돌연사한 이소룡의 사인은 뇌가 심하게 부풀 오르는 ‘뇌부종’이었다.
사망 당일 주변 사람들의 증언에 따른 그의 행적을 살펴보면 사실 이상할 것이 전혀 없다. 그날 오후 2시경 이소룡은 영화 제작자인 레이몬드 차우와 함께 차기 작품인 <사망유희>에 대해서 논의했고, 이어 여주인공인 팅페이의 집으로 자리를 옮겨 회의를 계속 했다. 그리고 얼마 후 이소룡은 두통을 호소했고, 팅페이는 그에게 강력한 진통제의 일종인 ‘에콰제식’ 알약을 주었다. 잠시 후 낮잠을 자겠다며 잠이 든 이소룡은 그렇게 영영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숨을 거두고 말았다.
당시 부검 결과에 의하면 이소룡의 위에서 발견된 것은 진통제와 함께 소량의 대마초가 전부였다. 어떤 사람들은 대마초가 체내에서 진통제와 화학작용을 일으켜서 뇌부종을 일으켰다고 주장했지만 당시 부검을 했던 검시관은 “대마초는 죽음과 아무런 연관이 없다. 그저 두통약의 성분에 과민하게 반응해서 죽은 것뿐”이라며 이런 소문을 부인했다.
그럼에도 과연 진통제 하나만으로 뇌부종이 발생할 수 있을까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의학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설왕설래가 오가고 있다.
이에 일부에서는 부검 결과를 못 믿겠다며 음독설을 주장하고 있다. 말하자면 홍콩의 비밀 폭력조직인 ‘삼합회’의 소행이라는 것이다. 홍콩 연예계를 주름잡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삼합회는 당시 홍콩 연예인들의 뒤를 봐주는 대가로 일종의 상납금을 요구하고 있었으며, 이소룡 역시 예외일 수 없었다. 하지만 이소룡이 이를 완강히 거부했기 때문에 결국은 괘씸죄로 독살됐다는 것이다.
그가 살해됐다고 믿는 사람들은 이소룡이 죽기 전 한때 홍콩에 퍼져 있던 괴소문을 증거로 들기도 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이 소문에 따르면 그는 이미 죽어 세상에 없었다. 소문이 얼마나 그럴 듯했는지 당시 홍콩의 일간지 기자들이 이소룡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살아있는지를 물어 오기도 했다.
삼합회는 300년 전 청나라 시대의 포악한 세력에 맞서 결성된 힘없는 사람들의 단체였다. 하지만 세월을 거치면서 점차 범죄조직으로 변질되어 갔으며, 공산당이 집권한 후부터는 본격적으로 지하조직으로 탈바꿈했다. 현재 8개의 삼합회 파벌들이 각각 홍콩을 분할해서 장악하고 있다는 소문도 들리고 있으며, 특히 홍콩 영화계와의 뿌리 깊은 유착관계는 공공연한 비밀이 된 지 오래다.
가령 장국영의 죽음에도 삼합회가 연루되어 있다는 소문도 그 중 하나며, 최근 터진 진관희 섹스 스캔들 뒤에도 삼합회의 입김이 작용하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톱스타 여성들과의 누드 사진 유출로 한바탕 홍역을 치렀던 진관희는 한때 삼합회가 그의 한쪽 손목에 50만 홍콩달러(약 8500만 원)의 현상금을 걸었다는 소문에 휩싸이기도 했으며, 결국 삼합회의 협박 때문에 캐나다에서 홍콩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는 소문도 파다한 상태다. 이와 반대로 삼합회가 자신들의 눈 밖에 난 진관희를 연예계에서 퇴출시키기 위해서 고의로 사진을 유포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