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인사에서 보이듯 금융 부문에서도 세대교체와 실적주의 원칙이 유지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특히 삼성전자 인사를 통해 나타난 50대 사장 발탁 분위기가 금융계열사에도 적용될 것으로 금융권은 내다본다. 삼성의 현직 금융계열사 사장은 대부분 60세를 넘긴 인물들이다.
삼성 금융계열사의 사장단 인사가 임박하면서 60대 CEO들의 거취가 주목된다. 고성준 기자
지난 23일 삼성생명에서는 김창수 사장을 비롯해 사외이사 등이 참석한 정기이사회가 열렸다. 이번 이사회는 사장단 인사와 관계없이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이사회로, 이미 2~3주 전 일정이 정해졌다.
그러나 삼성전자 임원 인사가 마무리되면서 나머지 계열사의 사장단 인사가 임박한 시점이어서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이날 이사회에 올려진 안건들은 구체적으로 공개되지 않았지만 차기 최고경영자(CEO)에 관한 논의가 오갔을 것으로 금융권은 보고 있다.
삼성 금융계열사 관계자는 “원래 인사 관련 정보는 사내에서도 철저히 비밀에 부쳐진다”면서 “임원후보추천위원회를 통해 올라간 의견을 그룹 수뇌부가 검토해 결정을 끝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일괄 발표를 위해 다른 계열사들과 일정 조율 등을 하느라 늦어졌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8월 1일 신설된 삼성생명의 임원후보추천위원회는 김창수 사장, 김준영 사외이사, 김두철 사외이사 3명으로 구성돼 있다. 삼성화재의 경우 현재까지 이사회 개최 계획이 없는 상태지만 임시이사회의 경우 바로 전날에도 소집 가능하다. 삼성화재 임추위 역시 안민수 사장과 문효남·조동근 사외이사 3인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지난해 8월부터 금융사는 임추위를 통해 대표이사를 선임하는 것으로 관련 법률이 개정됐다.
금융권의 시선은 삼성생명뿐 아니라 삼성의 전체 금융계열사로 향해 있다. 최근 삼성이 50대 젊은 CEO로 전면 교체하는 분위기이니만큼 금융계열사 임원도 그 대상이 될지 관심을 모으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 금융계열사에는 이미 임기가 만료된 60대 CEO가 다수 포진해 있다. 김창수 삼성생명 사장이 62세로 가장 많고, 안민수 삼성화재 사장과 윤용암 삼성증권 사장은 61세다. 원기찬 삼성카드 사장은 58세지만 임기를 2년 앞두고 있어 임기 만료 시 60대가 된다.
이 가운데 김창수 사장, 안민수 사장, 원기찬 사장은 지난해 말 사장단 인사를 건너뛰면서 자동 유임된 상태다. 윤용암 사장은 내년 1월 임기가 끝난다. 업계에서는 금융계열사도 삼성전자처럼 세대교체가 이뤄져 사장 교체가 유력하다고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금융계열사에 50대 사장단이 취임할지는 두고봐야 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금융권은 제조업보다 통상 임원 승진이 느리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가 과장을 5년 하고 차장으로 승진한다면 금융계열사는 과장생활을 6년 해야 한다. 승진 연한이 직급마다 늦은 편이라 임원 승진도 늦어질 수밖에 없다. 또 제조업 계열사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력풀이 좁아 나이를 기준으로 한 일괄 사퇴는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만만치 않다.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는 대개 40대 후반에 임원 승진을 한다. 상무부터 부사장까지 보통 10년이 넘게 걸리기 때문에 40대 후반 상무가 50대에 사장으로 승진하기는 쉽지 않은 구조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금융권은 제조업에 비해 연봉이 높고 승진도 늦은 편이기 때문에 50대 사장이 나오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의 금융계열사 사장단은 그룹 내에선 고령으로 분류되지만 금융업계에서는 젊은 축에 속한다. 보험업계의 경우 60대 수장이 많은 편이다. 이철영 현대해상 부회장(68세), 김정남 DB손해보험 사장(66세), 차남규 한화생명 사장(64세) 등 60대 중후반 CEO가 다수 포진해 있다.
그렇다고 50대 CEO의 탄생이 아주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원기찬 사장과 안민수 사장은 2013년 각각 54세, 57세의 나이로 사장직에 올랐다. 윤용암 사장과 김창수 사장 역시 2014년 각각 58세, 59세의 나이로 사장직에 올랐다. 모두 50대에 사장으로 선임됐다.
흥미로운 점은 이번 삼성 금융계열사 인사 과정에서 금융부문 현안을 총괄하는 ‘소그룹 컨트롤타워’가 꾸려질 가능성이 제기된다는 점이다. 그룹 미래전략실이 해체된 뒤 삼성전자와 삼성물산, 삼성생명을 정점으로 하는 소그룹 단위 컨트롤타워가 세워질 것이라는 관측이 현실화되고 있다는 말이다.
특히 금융계열사의 경우 금융그룹 통합감독 도입과 보험업법 개정안, 새 국제회계기준(IFRS17) 도입 등 계열사끼리 협의해 공동으로 대처해야 하는 굵직한 사안들을 앞두고 있는 만큼 이를 조율할 컨트롤타워의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만약 금융계열사 컨트롤타워가 꾸려질 경우 미래전략실 금융일류화추진팀을 거친 주요 임원들이 수장 후보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금융일류화추진팀은 미래전략실이 해체되기 전에 삼성 금융계열사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아온 조직이다.
특히 이들 가운데 안민수 사장이 중용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안 사장의 경우 삼성화재 사장에 오르기 전 삼성생명에서만 20년가량 근무한 데다 2010~2013년 삼성생명 금융사장단 협의회 사무국장을 맡아 금융계열사 전략수립에서 핵심역할을 담당했다. 안 사장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신임을 얻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점도 ‘이재용 체제’로 변화를 꾀하는 그룹 인사기조에 적합하다는 평가다.
다만 기존 미래전략실 금융일류화추진팀이 인사권과 경영권까지 행사했던 것과 달리 소그룹 컨트롤타워는 사업전략과 기획을 세우는 제한적 역할을 맡을 가능성이 높은 만큼 안 사장 같은 ‘거물 인사’가 자리를 옮기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미래전략실이 해체된 뒤 퇴임했던 임영빈 전 금융일류화추진팀장(부사장)이 금융계열사 컨트롤타워를 이끄는 중책을 맡아 다시 복귀할 수도 있다. 올해 초 임 전 부사장과 함께 퇴임했던 정현호 사장이 현역으로 복귀한 것과 비슷한 행보인 셈이다. 임 전 부사장은 2013년 말부터 금융일류화추진팀을 이끌며 ‘금융지주회사 전환’, ‘보험계열사의 자본확충 계획 마련’ 등 금융계열사의 핵심 사안을 지휘했던 인물로 알려졌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전자부문이 사실상 미니 미전실을 부활시킨 만큼 금융부문도 컨트롤타워가 생겨날 가능성이 높다는 시각이 많다”면서 “만약 새 조직이 생길 경우 ‘급’이 어느 정도일지 관심사”라고 전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