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내 대표적인 학술단체인 국제인권법연구회와 그 전신 격인 우리법연구회. 두 단체에서 모두 회장을 역임한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 이후, 두 연구회 출신들이 중용되기 시작했다. 최근 판사들이 요직에 간 사례들을 살펴볼 때, 이들 단체 출신들 외에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대한민국 최고의 엘리트 조직이라는 사법부(법원)를 대표하는 학술단체가 보수를 상징하는 민사판례연구회에서 진보를 상징하는 우리법연구회(국제인권법연구회)로 넘어갔다는 평이 나온다. 하지만 법원 분위기가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요직에 사람을 앉힐 때 ‘실력’보다 성향이 우선인 것 같다는 우려가 조금씩 고개를 들고 있다.
우선 진보를 상징하는 우리법연구회와 보수 엘리트주의를 대표하는 민사판례연구회의 역사부터 짚어보자. 우리법연구회(국제인권법연구회)가 처음 만들어진 것은 1988년. 6·29 선언 후에도 제5공화국 당시 사법부 수뇌부가 유임되자, 그 대표격인 김용철 대법원장의 연임에 반대해 연판장을 돌린 서울지법 소장 판사들이 만든 판사 모임이 우리법연구회다. 초창기 멤버는 10명 안팎이었지만, 당시 판사들 사이에서는 ‘레전드’로 불리게 되는 인재들 대부분이 포함됐다.
지난 22일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가 양승태 대법원장을 만나기 위해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고성준 기자
‘목숨 걸고 재판하는 판사’로 추앙 받았던 고 한기택 전 대전고등법원 부장판사(사법연수원 13기),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사법연수원 13기), 사법개혁의 틀을 짜고 형사재판의 공판중심주의를 법원에 뿌리내리게 했다는 평가를 받는 이광범 전 대법원 사법정책실장(사법연수원 13기, 법무법인 LKB파트너스 대표변호사) 등이 대표적인 우리법연구회 창립멤버다.
우리법연구회와 대척점에 있는, ‘보수 엘리트 단체’로 대표되는 민사판례연구회도 역사가 깊다. 국내 민법학의 대가 서울대 곽윤직 교수의 제자 10여 명이 1977년에 만들었고,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애초 학계 모임으로 시작했지만 회원들이 사법고시를 통해 판사로 임용되면서 법원 안에서 ‘이너서클’ 조직으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초창기부터 사법연수원 기수별로 2~3명만 뽑았는데 판사 임용성적이 손가락 안에 드는 우수한 소수에게만 은밀하게 가입을 권유했다. 성적이 좋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니었다. 서울대 법대 출신, 남성 판사가 아니면 가입할 수 없었다. 민판련 소속이라는 사실을 알리지 않는 분위기가 팽배해, 법원 내 비밀 엘리트 조직으로 불렸다. 특히 명문가 집안 자제들이 다수 포진하면서, 집안까지 좋아야 가입할 수 있다는 볼멘소리도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집안보다 실력이 우선’이라는 게 법원 내 대다수의 설명. 비판이 쇄도하자 여성 판사, 비서울대 출신에게도 문을 개방했지만 여전히 ‘에이스 학술단체’였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사법연수원 2기), 이용훈 전 대법원장(고등고시 15회) 등 다수의 대법원장이 민판련 출신이다.
우리법연구회도 나름의 가입조건은 있었다. 민판련처럼 특정 학벌이나 성적과 같은 ‘가입 조건’은 없었지만, 이념적으로 뜻이 맞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우리법연구회 초반 창설 분위기를 아는 한 법조계 관계자는 “우리법연구회는 기존 회원이 주변 판사를 추천하는 방법으로 회원을 늘려나갔는데, 가장 중요한 가입 기준은 연구회 기존 멤버들이 추구하는 정치·법률가적 철학과 이념에 동의하느냐였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지적은 유남석 신임 헌재재판관 인사청문회에서도 제기됐었다. 이에 유남석 재판관은 “법원의 판사로 있는 분들이 편향성을 추구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순 학술단체”라고 우리법연구회를 설명했지만, 우리법연구회나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 판사들은 SNS 등을 통해 정치적인 얘기를 쏟아내고 있다. 특히 평소 SNS를 통해 정치적 발언을 쏟아내는 류영재 판사(사법연수원 40기)는 대통령 선거 바로 다음날이었던 2017년 5월 10일 페이스북에 “역사에 기록될 자랑스러운 시간들”이라는 글을 올려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두 단체 모두 법원을 대표하는 ‘천재’들이 모여 있었지만, 법원 내 흐름을 먼저 주도한 것은 우리법연구회였다. 노무현 정부 당시 전체 회원은 100명이 조금 넘는 수준이었지만, 강금실 법무부 장관. 박시환 대법관, 김종환 대법원장 비서실장 등 요직은 모두 우리법연구회 멤버들 차지였다. 자연스레 정치 사조직이라는 비판이 법원 내부에서 나오기 시작했고, 당시 이용훈 대법원장은 “법원에 이런 단체가 있어서는 안 된다. 부장판사급 이상은 모두 탈퇴했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법원 내 하나회라는 논란 끝에 2010년 해체됐지만, 다음해인 2011년 우리법연구회 멤버들을 중심으로 국제인권법연구회가 만들어져 정신을 계승했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행사에 참여했다.
우리법연구회가 해체된 시점과 맞물려 보수정당 출신으로 대통령에 오른 이명박, 박근혜 정부 체제가 본격화되면서 우리법연구회가 독식하던 자리는 민판련 소속들이 차지하게 됐다. 양창수 전 대법관(사법연수원 6기)도 임용 당시 민판련 회장이었고, 그 밖에 양승태 전 대법원장, 김황식 전 대법관·국무총리(사법연수원 4기), 김용덕 대법관(사법연수원 11기) 등이 보수 정권 하에 승승장구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기 전만 해도, 대법원 법원행정처 요직에는 이민걸(사법연수원 17기), 홍승면(사법연수원 18기) 등 민판련 출신들이 다수 포진해 있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민판련 출신들이 밀려났다. 앞서 거론된 이민걸 부장판사 등은 모두 일선 재판관으로 물러났고, 대신 우리법연구회나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들이 법원행정처 요직에 자리잡기 시작한 것. 김명수 대법원장을 비롯, 이용구 법무부 법무실장(사법연수원 23기), 김형연 청와대 법무비서관(사법연수원 29기) 등이 사법정책을 주도하는 자리에 앉게 됐다. 헌법재판소 신임 재판관으로 임명된 유남석 재판관(사법연수원 13기)도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다.
‘정치 지형’ 변화에 따라 자연스레 법원 내 주도 단체가 변화했다고 하지만 법원 내 분위기가 좋은 것만은 아니다. 민판련은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사람들이지만, 우리법연구회는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다’라는 지적이 나온다. 익명을 요청한 서울고등법원의 한 판사는 “사실 민판련에서 가입 제의를 받지 않은 평범한 판사들 입장에서 민판련 출신들을 보면 배가 아픈 것은 맞지만, 같이 일하다보면 정말 똑똑하고 일 잘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서 인정할 수밖에 없는 면이 있었다”며 “반면 우리법·국제인권법연구회는 사법연수원 23~24기를 기점으로 그 밑에는 인재가 없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완전히 쪼그라든 조직이지 않냐”고 지적했다.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역시 “정치편향성 논란에 국제인권법연구회 측은 500명 정도 되는 학술단체라고 설명하지만, 결국 그 중심에서 분위기를 주도하는 40~50명의 판사가 법원 내 분위기를 ‘개혁’으로 끌고 가려고 하는 것 같다”며 “이들의 실력이 과연 대단히 뛰어난지는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특히 “법원이 많이 보수적이라고 하지만 우리법연구회는 지나치게 편향적인 부분이 있어서 비소속 판사들이 ‘니네법연구회’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라며 “한동안 잠잠했던 인사 논란이, 우리법연구회 출신 중용으로 다시 불거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법원이 둘로 나뉘고 있다는 우려도 상당하다.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의 한 판사는 “얼마 전 한 기사에서 내 이름을 거론하며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이라고 적더라”며 “이름만 올리고 행사에 나가지도 않고 주축으로 활동하지도 않는데 그런 기사로 나를 재단하고 분류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설명했다. 앞선 부장판사 역시 “법원 인터넷망에 가서 가입 버튼만 누르면 들어갈 수 있는 게 학술단체”라며 “어디 소속인지가 인사에 중시되고, 성향을 대표하는 것 같은 분위기라 속상하다”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우리법·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들의 흐름이 한동안 계속될 것이라는 데에는 다들 이견이 없다. 법원 출신의 변호사는 “원래 대법원과 법원행정처에 누가 가느냐가 중요한 것은, 전원합의체 사건 등 정치사회적으로 의미가 있고 방향성을 제시하는 재판을 함과 동시에 법원의 미래를 결정하는 판단을 하기 때문”이라며 “문재인 정부 입장에서는 대법관이 진보적인 인사를 앉히는 분위기는 한동안 계속될 것이고, 그런 맥락에서 우리법·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들이 지속적으로 중용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앞선 부장판사 역시 “다음 정기인사를 봐야겠지만, 민판련 출신들보다는 우리법·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들이 더 많이 고등부장이 되지 않겠냐”면서도 “26~27기 위로는 우리법연구회 소속 판사들이 법원을 떠나 개업한 사람들이 많아서, 얼마 남지 않은 우리법연구회 출신 판사들이 더 요직에 가는 구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자연스레 김명수 대법원장이 처음으로 제청할 대법관이 우리법연구회 출신일지도 관심이 쏠린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조만간 내년 1월 2일자로 임기가 끝나는 김용덕, 박보영 대법관의 후임 대법관을 뽑아야 한다.
현재 대법관 후보추천위원회가 2명의 후임으로 추천한 인사는 9명. 재야 출신 김선수 변호사와 현직 법원장 5명(이종석 수원지법원장, 안철상 대전지법원장, 김광태 광주지법원장, 노태악 서울북부지법원장, 이광만 부산지법원장), 여성고위법관 3명(민유숙 서울고법 부장판사, 이은애 서울가정법원 수석부장판사, 노정희 서울고법 부장판사)이 이름을 올렸다. 이 가운데 우리법연구회 출신은 노정희 서울고법 부장판사(사법연수원 19기)뿐이다. 하지만 법원에서는 민주 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회장을 역임한 김선수 변호사와 노정희 부장판사가 가장 유력하다는 얘기가 들린다.
한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는 “김명수 원장이 파격적인 인사를 위해, 여자 대법관 몫에는 우리법 연구회 출신 노정희 부장판사를, 남자 대법관 몫에는 비판사 출신인 김선수 변호사나 한양대 출신의 노태악 서울북부지법원장을 고를 것이라는 얘기가 파다하다”고 설명했다.
서환한 기자 bright@ilyo.co.kr
판사 블랙리스트 재조사 ‘산 넘어 산’ “인사에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하는데, 실제로 인사에 불이익을 받았다는 사례가 있으면 공개해달라.” (법원 내부 게시판에 올라온 익명글) 법원 내부 게시판에 글이 하나 올라온 것은 얼마 전. 법원행정처에서 판사 뒷조사 문건을 만들었다는 이른바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이 계속 이어지자, 한 판사가 익명으로 ‘인사 불이익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를 내놓으라’고 올린 글이다. 익명으로 올라온 글이기 때문일까, 구체적으로 불이익 사례를 증거로 제시한 답은 없었다. 하지만 글 밑에는 적지 않은 댓글들이 달리며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을 바탕으로 사법 개혁을 추진하려는 김명수 대법원장은 이를 재조사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판사 블랙리스트 파동이 불거진 것은 올해 초.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권 남용 논란이 불거졌을 때 법관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 이 아무개 판사(39)가 대법원이 성향을 이유로 행사 축소를 지시하고 인사 불이익을 줬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는 법원 진상조사위에서 “행정처 컴퓨터에 비밀번호가 걸린 판사 뒷조사 파일이 있다고 들었다”고 말해 법원을 들썩거리게 했다. ‘대법원이 판사 블랙리스트를 만든 것 아니냐’는 비판이 법원 내 쇄도했고, 결국 임종헌 법원행정처 차장이 책임을 지고 옷을 벗었고, 법원은 진상조사에 나섰다. 그리고 나온 조사 결과는 ‘사실무근’이었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꾸려진 법원 진상조사위원회는 “블랙리스트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문제가 일단락되는 듯했지만 김명수 대법원장은 자리에 오르자마자 “다시 확인하겠다”며 재조사를 결정, 블랙리스트 사건은 수면 위로 다시 떠올랐다. 하지만 조사는 쉽지 않아 보인다. 재조사위원회가 해당 문건이 저장됐다는 의혹을 받아온 컴퓨터를 사용했던 이 아무개 판사에게 “컴퓨터 속 파일을 열어볼 수 있게 동의해달라”고 요구했지만 이를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조사위는 가급적이면 빨리 조사를 진행할 계획이라지만, 조사 결과에 대한 편파성 우려도 상당하다. 법원행정처는 판사들을 뒷조사한 문건을 갖고 있다는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 재조사위원장에 민중기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임명했는데, 민중기 부장판사는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다. 게다가 민 부장판사가 최근 발표한 6명의 재조사 위원 중 4명이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인 탓에 편파 조사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실제 블랙리스트 의혹을 처음 제기한 것이 국제인권법연구회이기 때문. 앞선 서울고등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정치적으로 자유로워야 하는 법원이 정치적인 성향을 바탕으로 이렇게 서로 척을 지는 상황이 안타깝다”며 “워낙 보수적인 탓에 판사들이 뭉치지 않는 분위기라지만, 몇몇 판사들이 개혁을 외치며 고요한 법원 내 파문을 던지는 느낌”이라는 관전평을 내놓았다. [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