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른쪽 맨 위부터 캐러딘의 젊은시절, 출연작 TV드라마 <쿵푸>와 영화 <킬 빌>, 최근의 모습들. | ||
유명인사들의 석연치 않은 죽음에는 늘 뒷말이 무성하다. 아니, 더 나아가 정확한 사인이 밝혀지지 않은 채 미스터리로 남아 두고두고 회자되는 경우도 많다. 얼마 전 방콕의 한 호텔에서 숨진 채 발견된 영화 <킬 빌>의 액션 배우 데이비드 캐러딘(향년 72세)의 죽음 역시 숱한 의문을 남긴 채 여전히 미궁에 빠져 있다. 목을 매단 채 발견되었다는 점에서 처음에는 자살인 줄로만 알았던 이번 사건이 어떻게 된 일인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가족들과 지인들은 “절대로 자살할 사람이 아니다”라며 범죄조직에 의한 타살을 주장하고 있다. 이를테면 “중국의 거대 폭력조직인 ‘삼합회’에 의해 암살되었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일종의 변태적인 ‘섹스 게임’을 즐기다 실수로 목숨을 잃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선 사건이 벌어진 그날로 돌아가 보자. 캐러딘은 새 영화 <스트레치>의 촬영을 위해 지난달 31일부터 스태프들, 배우들과 함께 태국 방콕에 머물고 있었다. 호텔 직원들의 말에 따르면 그는 호텔에 투숙하는 동안 상당히 기분이 좋아 보였으며, 매일 밤 호텔 로비에 있는 피아노를 연주하거나 로비 바에서 플루트를 연주하는 등 항상 즐거워 보였다고 말했다.
때문에 그가 사건이 발생하기 전날인 수요일 밤 저녁식사 시간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을 때에도 이를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일행들도 그저 몸이 좋지 않아 쉬고 있겠거니 하며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청소를 하기 위해서 캐러딘의 방에 들어간 호텔 직원은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끔찍한 광경에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캐러딘이 옷장 속에서 목을 매단 채 숨져 있었던 것이다. 당시 현장 감식반의 말에 따르면 캐러딘은 알몸 상태였으며, 로프로 목을 매달아 질식사한 것으로 추정됐다. 이상한 점은 끈으로 묶인 부분이 목뿐만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양손과 성기도 로프로 묶여 있었으며 특히 목과 성기는 하나의 로프로 연결되어 있었다.
또한 태국의 한 타블로이드 신문이 공개한 현장 사진에 어렴풋이 보이는 캐러딘의 모습은 망사 스타킹을 신고 있었으며, 침대 위에는 여성용 빨간색 속옷이 놓여 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몇 시간 후 태국 경찰은 캐러딘이 자살로 목숨을 잃었다는 내용의 수사 발표를 했다. 외부에서 강제로 침입한 흔적이 없고, CCTV 확인 결과 캐러딘의 방에 출입한 사람도 없었으며, 사라진 물건도 없었다는 것이 이유였다. 또한 경찰은 무엇보다도 캐러딘의 몸에 외상의 흔적이 없었다는 것도 자살로 결론지은 이유라고 덧붙였다.
사실 캐러딘은 생전에 몇 차례에 걸쳐 자살이라는 말을 입 밖에 내곤 했었다. 2004년 한 인터뷰에서도 그는 “여러 번 자살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봤다”고 말하면서 “한동안 내 책상 서랍에는 실탄이 장전된 권총이 한 자루 들어 있었다. 매일 밤 나는 권총을 꺼내 머리를 날려 버리는 상상을 하곤 했다. 하지만 그 때마다 죽는 것보다는 사는 게 낫다고 생각했고, 다시 권총을 서랍에 넣어두곤 했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그는 “하루는 플라자 호텔의 3층인가 4층 창가에 앉아 밖을 보면서 ‘이대로 뛰어 내려 죽으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본 적도 있다”라고 털어 놓기도 했다.
뿐만이 아니라 1995년 집필한 자서전 <엔들리스 하이웨이>에서도 그는 다섯 살 때 자살을 기도했던 적이 있었다고 적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캐러딘의 가족들은 태국 경찰의 수사 결과를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유족들이 주장하는 수상한 점은 무엇보다도 유서가 없다는 것이다. 캐러딘의 부인인 애니는 “그는 삶에 대한 애착이 강한 사람이었다. 절대로 자살할 사람이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실 이번 사건을 찬찬히 뜯어보면 수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태국에서의 촬영이 끝나는 대로 캐러딘은 미국으로 돌아가 세 편의 영화에 출연할 예정이었다. 또한 시체가 발견된 날 밤에도 친구들과 함께 술을 마시기 위해서 로비 바의 단체석을 예약해 두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호텔 직원들 역시 그가 자살을 염두에 둔 사람치고는 기분이 좋아 보였으며 어두운 구석은 전혀 없었다고 증언했다.
이처럼 자살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가 누군가에 의해 살해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매니저인 척 바인더는 CNN의 <래리 킹 라이브>에 출연해서 “발견 당시 캐러딘의 손은 뒤로 묶여 있었다. 또한 침대 위에는 캐러딘의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의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라고 주장하면서 타살설에 무게를 두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그를 살해했다는 걸까. 이에 측근들은 이번 사건의 배후세력으로 중국의 비밀단체, 이를테면 무술협회나 삼합회를 지목하고 있다. 가족의 변호사인 마크 게라고스는 <래리 킹 라이브>에서 “캐러딘은 사망 전까지 비밀 쿵푸조직에 대한 조사를 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조직으로부터 살해당한 것이다. 그는 평소 무술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조직과 관련된 많은 일들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 캐러딘은 1970년대 인기 TV 드라마였던 <쿵푸>에 출연한 후부터 쿵푸 신봉자가 됐으며, 그 후로 꾸준히 무술을 연마하거나 공부에 매진해왔다. 기공체조나 타이치 등을 연마한 후 각종 강습 비디오에 출연했는가 하면, <소림의 정신>이란 제목의 회고록도 출간한 바 있다.
이에 캐러딘의 죽음이 이소룡의 죽음을 떠올리게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죽은 지 30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미스터리에 싸여 있는 이소룡의 죽음에 관한 주장 가운데 하나는 그가 삼합회에 의해 비밀리에 살해되었다는 것이다. 홍콩 연예계를 주름 잡고 있는 삼합회가 보호비 명목으로 이소룡에게 상납금을 요구했지만 거절했다는 것이 살해 동기라는 것이다.
캐러딘이 죽기 직전에 찍은 영화 <브레이크>에 함께 출연했던 배우 프랭크 크뤼거는 “이소룡을 살해한 비밀조직과 같은 놈들의 소행”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자신 역시 무술 연마자인 그는 인터넷 가십사이트인 ‘홀리스쿱(Hollyscoop)’을 통해 이와 같이 주장하면서 “오래 전부터 우리 무술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비밀조직이 자신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사람들을 암살하고 다닌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이소룡의 죽음 역시 마찬가지다. 구체적으로 어떤 조직인지는 알려지지 않았고, 나 역시 캐러딘을 통해 특정 단체의 이름을 듣지는 못했지만 비슷한 이야기는 들었다. <브레이크> 촬영 당시 캐러딘은 나에게 70년대에 자신을 협박했던 범죄조직에 맞서 싸웠던 적이 있다고 말했다”고 했다. 또한 그는 평소 캐러딘이 방대한 양의 무술 자료를 늘 소지하고 다녔다고도 말했다.
▲ 캐러딘의 부인(오른쪽)과 딸. | ||
이밖에 이런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증언들도 속속 나오고 있다. 생전에 다섯 차례 결혼했던 캐러딘의 전 부인들이 하나둘 그의 변태적인 취향을 폭로하고 나선 것이다. 세 번째 부인이었던 게일 젠슨은 캐러딘이 결혼 생활 내내 자해적성적가사를 즐겼다고 말했다.
그녀는 “남편은 자신의 몸을 묶는 데 사용하는 성적 기구들을 직접 만들어 사용하곤 했다. 필요한 도구를 사기 위해서 철물점을 드나들곤 했다”고 폭로했다. 또한 그녀는 “그는 매우 이상한 사람이었다. 자산의 몸을 묶는 걸 즐겼으며, 능수능란하게 스스로 자신의 몸을 묶을 줄도 알았다”고 말했다.
네 번째 부인인 마리나 앤더슨 역시 자신이 이혼한 이유는 캐러딘의 이런 변태 성행위를 참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그의 성적 취향은 매우 유별났다. 결혼 내내 변태적인 행위에 동참해줄 것을 요구했고, 이를 들어줄 수 없었기 때문에 결국 이혼을 결심했다”고 털어 놓았다.
만일 위의 증언들이 사실이라면 현재로서는 캐러딘이 자위행위를 하다가 실수로 목숨을 잃었다는 주장에 가장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실제 이렇게 사망할 경우 자살로 오인(?)되거나 혹은 유족들이 수치심과 창피함에 일부러 사인을 숨긴 채 서둘러 수사를 종결 짓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정확한 부검 결과가 발표되려면 아직 몇 주가 더 남아 있지만 아무래도 그의 죽음을 둘러싼 다양한 음모론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