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남성들이 주로 가입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고민 글이다. 다른 회원들도 “저도 요즘 즐겨찾기 테러 때문에 못 살겠다”라며 저마다 같은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회원 수 100만여 명을 자랑하는 남초 온라인 커뮤니티 ‘다음 카페 이종격투기’에서 발생한 이른바 ‘즐겨찾기 테러’ 사태다.
‘즐겨찾기 테러’ 피해를 호소하고 있는 한 남성회원이 올린 자신을 즐겨찾기한 회원들의 목록. 모욕적인 닉네임이 대다수다. 다음 이종격투기 카페 캡처.
다음 카페는 시스템 특성상 회원들이 다른 회원을 자신의 즐겨찾기 목록에 추가할 수 있게 돼있다. 예컨대 유머 글을 올리는 한 회원의 다음 글을 보고 싶을 때, 그를 즐겨찾기에 추가하면 그가 이제까지 쓴 글이나 앞으로의 최신 글 소식을 바로 확인할 수 있다. SNS에서의 ‘팔로’나 ‘친구추가’와 유사한 기능이다.
다른 회원의 즐겨찾기에 추가된 회원도 누가 자신을 추가했는지 확인이 가능하다. 다음 카페 앱에서 ‘나를 즐겨 찾는 친구’를 선택하면 자신을 즐겨찾기에 추가한 회원들의 닉네임이 뜬다. 과거에는 ‘나를 즐겨 찾는 친구’ 목록이 많으면 많을수록 인기 있는 회원임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테러’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문제가 된 것이 바로 이 ‘나를 즐겨 찾는 친구’ 목록에서 볼 수 있는 닉네임들이다. ‘느개비(느그 애비) 스타벅스 빨대도둑’ ‘이게 머리카락도 없는 게 까불어?’ ‘쉰내 나는 아재만 수집하는 계정’ 등으로 닉네임을 설정한 회원들이 다른 회원들을 무차별적으로 즐겨 찾기 목록에 추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 ‘즐겨찾기 테러범’은 대부분 남성 혐오 성향의 커뮤니티인 워마드와 그 분파의 여성 커뮤니티에서 원정을 나온 여성 회원들로 알려졌다. 여성 연예인에 대한 도가 지나친 성희롱이나 여혐 발언, 야동 등 선정적인 사진 게시로 유명한 남성 커뮤니티 중에서도 가장 회원 수가 많은 곳을 타깃으로 삼은 것이다. 닉네임을 욕설로 변경한 뒤 불특정 다수의 남성 회원들을 즐겨찾기에 추가해 그들을 불쾌하게 만들겠다는 목적이다.
이렇다 보니 즐겨찾기 테러를 당한 회원이 ‘나를 즐겨 찾는 친구’ 목록에서 보는 회원들의 닉네임은 전부 자신을 겨냥한 모욕적이고 성희롱적인 문구가 된 상태다. 탈모 상태를 조롱하거나 신체 부위에 대한 성희롱, 심지어 부모에 대한 모욕까지 이른 다양한 닉네임이 즐겨 찾기 목록에 뜨면서 피해 회원들이 정신적인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것. 그러다 보니 이들에게 법적인 책임을 묻겠다는 피해 회원들의 강경한 입장까지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실제로 이 즐겨찾기 테러범들에게 법의 철퇴를 내려칠 수 있을까? <일요신문>이 현재까지 드러난 사례를 취합해 전문가에게 질의한 결과, 결론은 아쉽게도 ‘아니오’였다. 다만 피해자가 좀 더 구체적인 요건을 갖춘 상태라면 범죄 성립이 가능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즐겨찾기 테러 피해 회원이 공개한 ‘나를 즐겨 찾기한 회원’ 목록. 이종격투기 카페 캡처.
PC로 다음 카페를 접속할 경우 즐겨찾기 목록을 포함해 다른 회원의 정보를 볼 수 없지만, 모바일 앱으로 접속한다면 가능하다. 이로써 공연성은 어느 정도 인정된다고 볼 수 있다.
또 이 변호사는 “불특정 다수를 무작위로 선정해 모욕적인 닉네임으로 즐겨찾기를 하는 경우 피해 회원이 직접 자신을 즐겨찾기한 회원들의 목록을 공개해 공연성 요건을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그러나 문제는 특정성이다. 이 같은 모욕성 닉네임의 즐겨찾기 테러범이 제3자에게도 공개돼 공연성이 인정된다 하더라도, 피해자가 ‘실존하는 어떤 인물’인지 특정할 수 있어야 범죄가 성립되기 때문이다.
이 변호사는 “단순히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회원의 닉네임만을 제3자가 확인하는 것을 넘어서서 실제 피해자의 이름이나 사진, 나이, 사는 곳 등의 개인정보가 드러나 있어야 한다”라며 “이런 개인정보를 통해 제3자가 위와 같은 피해를 받고 있는 인물이 실제 실존하는 누구인지를 알거나 알 수 있을 정도가 돼야 특정성 요건이 성립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피해를 당한 회원들이 직접 개인 신상 정보와 관련 피해 사례를 모두 공개해야지만 이들 즐겨찾기 테러범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즐겨찾기 테러 피해 회원들은 피해 사례를 모아 ‘테러범’들을 고소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상황이다. 만일 이번 사례를 통해 닉네임 모욕·명예훼손의 유죄 인정 판례가 남는다면, SNS 등에서 ‘병X만 보면 짖는 개’ 등 불특정 다수에 대한 모욕적인 닉네임으로 활동하는 회원들에 대해서도 법적 제재를 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