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탄자니아에서 태어난 알비노들은 그들의 신체를 노리는 사람들 때문에 죽음의 공포를 겪고 있다. 사진은 알비노 어린이. 로이터/뉴시스 | ||
전 세계적으로 2만 명 가운데 한 명꼴로 발생하는 알비노는 사람은 물론 동물 사이에서도 나타나는 유전자 질환으로, 멜라닌 색소의 결핍으로 피부와 머리카락이 흰색을 띠는 현상을 가리킨다.
최근 아프리카의 몇몇 나라에서는 ‘알비노 사냥’이 성행하고 있어 사회적으로 커다란 문제가 되고 있다. ‘알비노 사냥’이란 알비노들의 신체 부위를 주술에 사용하기 위해서 절단하는 끔찍한 행위로 엄연한 ‘살인 행위’란 점에서 심각한 폐해를 양산하고 있다. 독일 시사주간 <슈테른>과 영국의
탄자니아 소녀인 비비(10)는 오른쪽 다리가 없는 불구다. 또한 손가락 세 마디도 잘려나간 채 뭉뚝하다. 여동생 틴디(8)와 함께 1년이 넘도록 병원에서 살다시피 하고 있는 소녀는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느냐는 질문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소녀에게 집은 편안한 보금자리가 아닌 악몽과도 같은 곳이기 때문이다.
지난 2007년 12월, 세 명의 괴한들이 집으로 쳐들어온 것은 온 가족이 잠든 한밤중이었다. 갑자기 오두막에 들이닥친 남성들의 손에는 각각 횃불과 도끼가 하나씩 들려 있었다. 모든 일은 순식간에 벌어졌다. 비비가 공포에 떨면서 비명을 지르는 순간 이들은 도끼로 비비의 오른쪽 다리와 손가락 마디를 자른 후 달아났다. 이날 밤 비비가 습격을 당한 이유는 단 하나, 바로 알비노였기 때문이다.
▲ 오른쪽 다리와 손가락이 잘린 알비노 소녀 비비 | ||
현재 인구 4000만인 탄자니아에서는 알비노가 다른 지역보다 다섯 배가량 더 많이 태어나고 있다. 공식적으로 신고된 알비노들의 수는 4000명. 하지만 BBC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은 20만 명 정도의 알비노들이 출생신고를 하지 않은 채 숨어 지내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알비노 자식들을 흉조로 여기면서 숨기고 있는 까닭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문둥병 환자라는 둥, 악마의 저주가 내렸다는 둥 손가락질하긴 했어도 죽이는 일은 없었건만 근래 들어 부쩍 알비노 연쇄 살인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 까닭은 뭘까. 누가, 왜 알비노들의 목숨을 노리고 있는 걸까.
알비노 사냥이 벌어지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아프리카에서 대대적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는 미신적인 종교행위가 최근 다른 방향으로 변질됐기 때문이다. 알비노들의 팔다리나 머리카락, 뼈, 피부 등을 섞은 후 주술을 외우면 행운이 온다거나 부와 성공을 보장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주술사들이 늘어난 것이다.
따라서 알비노 사냥의 배후에는 항상 주술사, 중개인, 고객 등 세 명이 있게 마련이다. 주술사들의 주된 고객들은 대부분 어부나 금 채굴자들이다. 빠른 시간 안에 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 이들은 비싼 돈을 지불하고서라도 알비노의 신체 부위를 얻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이들은 중개인, 즉 전문 사냥꾼을 고용해서 원하는 것을 얻으려 하고 또 중개인들은 알비노의 팔다리나 손가락, 머리카락 등을 팔면 수백 달러를 벌 수 있기 때문에 알비노 사냥을 부의 지름길로 여기고 있다. 사정이 이러니 알비노들이 언제부턴가 ‘걸어 다니는 돈다발’로 불리기 시작한 것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게 됐다.
▲ 알비노의 신체를 갈아 만든 것으로 보이는 정체불명의 가루. | ||
지난해 말 영화를 보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변을 당했던 엘리자베스 후세인이라는 13세 소녀는 길에서 칼을 든 한 무리의 남성들을 만나 온몸을 난도질당했다. 소녀의 팔과 다리는 모두 잘려나가 있었으며, 훗날 잘린 팔다리는 인근에서 영업 중이던 한 마술사의 집에서 발견됐다. 또한 집 앞마당에 앉아 밥을 먹고 있던 은예레레 루타히로(47)는 “다리를 내놔”라고 소리 지르며 갑자기 침입한 네 명의 남성들에게 팔과 다리를 잃었다.
사정이 이러니 알비노들이 매일매일을 공포에 떨면서 지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떤 알비노 어린이들은 보디가드를 대동한 채 학교를 다니는가 하면, 또 다른 알비노들은 아예 집에서 한 발짝도 나오지 않은 채 꼭꼭 숨어 지내고 있다.
이렇게 비명횡사하는 알비노의 수가 점점 늘어나자 탄자니아 정부도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지금까지 알비노의 신체 부위를 매매하다 적발되어 체포된 사람들은 200여 명. 마을 곳곳에서는 정부 관계자들이 주민들을 모아 놓고 알비노의 뼈나 신체에는 주술적인 힘이 없다고 계도하고 있다.
하지만 탄자니아 정부의 이런 노력이 실효를 거둘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듯싶다. 아직까지도 몇몇 작은 마을에서는 알비노들이 살해당하는 비극이 여전히 벌어지고 있으며, 브룬디, 케냐 등 이웃나라에까지 알비노 사냥이 번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얼마 전 콩고 공항에서는 한 남성이 가방 안에 알비노 어린이의 머리를 숨긴 채 입국하다가 세관에 걸리는 일이 발생했다. 이 남성은 콩고의 한 사업가의 부탁으로 머리를 밀반입했다고 말하면서 무게에 따라 돈을 받는다는 충격적인 말도 했다.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지난 4월 스페인에서는 60명의 알비노들이 단체로 망명을 신청하기도 했다. 이유는 아프리카에서 살다가는 언제 갑자기 죽을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얼마나 절박했는지 스페인 정부는 이들의 망명 신청 이유가 정당하다고 판단된다며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