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에게 가장 큰 무기는 ‘뻔뻔함’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는 것처럼 스캔들이 터질 때마다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일단 버티고 보자는 태도로 일관하는 경우가 많다. 아예 입을 다물거나 혹은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결백을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 미국의 정치인들 사이에서는 더 이상 이런 뻔뻔한 태도가 먹히지 않는 모양이다.
최근 터진 일련의 성추문 사건만 봐도 그렇다. 5일 동안 실종(?)됐다가 나타나서는 “사실은 애인을 만나러 아르헨티나에 갔었다”고 고백한 마크 샌퍼드 사우스 캐롤라이나 주지사(49)나 자신의 부하직원이었던 기혼 여성과의 불륜행각이 들통 나자 며칠 후에 기자회견을 열고 사실을 인정했던 존 엔자인 네바다주 상원의원(51)이 이에 속한다.
둘의 공통점은 스스로 잘못을 인정했다는 데 있기도 하지만 주지사직과 의원직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인들은 정치인들의 불륜에 관대해진 걸까.
이에 대해
하지만 다 면죄부를 받는 것은 아니다. 같은 섹스 스캔들이라고 해도 누구는 용서를 받았지만 또 누구는 용서를 받지 못한 채 워싱턴에서 추방당한 경우도 있다. 지금까지 스캔들로 명암이 엇갈린 정치인들을 비교해봤다.
▲ 마크 샌퍼드
(49·현 사우스 캐롤라이나 주지사)
존 엔자인 상원의원과 함께 차기 공화당 대권 후보로 거론됐을 만큼 공화당 내에서 떠오르는 스타 정치인이었던 그였지만 최근 터진 불륜 스캔들로 모든 꿈이 날아가고 말았다. 그것도 5일간의 잠적 소동 끝에 사실은 정부와 함께 밀월여행을 즐겼다는 사실이 들통 나면서 망신을 당했으니 창피함과 굴욕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터.
그가 갑자기 행방불명됐던 것은 지난 6월 19일이었다. 휴대전화 전원을 끈 채 가족과 측근들과 연락이 두절되자 한동안 ‘주지사가 실종됐다’는 소문이 퍼지기도 했다. 샌퍼드의 대변인은 “현재 애팔래치아 산맥을 하이킹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라고 뒤늦게 해명했지만 그의 수상한 행적은 여전히 의심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올 것이 오고 말았다. 며칠 후 온라인 신문인 <더 스테이트>가 그의 여권 기록을 비밀리에 입수해서 조회한 결과 수상한 점을 발견했던 것이다. 애팔래치아에서 하이킹을 하고 있어야 할 그가 어찌 된 일인지 멀리 아르헨티나로 날아가 있었던 것.
소문이 일파만파 번지자 결국 샌퍼드는 귀국 직후 곧바로 기자회견을 열고 모든 사실을 실토했다. 20여 분 동안 진행됐던 기자회견에서 그는 간간이 눈물을 훔치면서 용서를 구하는 모습이었다. 그는 “마지막 5일 동안 아르헨티나에서 울면서 보냈다”라고 말하면서 정부와 완전히 관계를 정리하기 위해서 떠났던 ‘이별 여행’이었음을 암시했다. 5개월 전 이미 불륜 사실을 눈치챈 부인이 별거를 요구하자 하는 수 없이 관계를 정리하기로 했던 것이다.
샌퍼드가 ‘소울 메이트(천생연분)’라고 불렀던 내연녀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TV 앵커였던 마리아 벨렌 차푸르(43)였다. 아들 둘을 키우고 있는 이혼녀인 차푸르와 샌퍼드가 처음 만난 것은 2001년 9·11 테러가 발생한 직후였다. 당시 취재차 미국을 방문했던 그녀는 우연한 기회에 샌퍼드를 만났고 불행했던 결혼생활에 대한 고민 상담을 하면서 가까워졌다. 그리고 1년 전부터는 본격적으로 애인 사이로 발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샌퍼드는 현재 공화당 주지사협의회 의장직만 사퇴했을 뿐 주지사 자리는 그대로 지키고 있다. 눈물까지 흘려가면서 용서를 구한 덕분인지 일단 자리는 보전했지만 앞으로 그가 계속 무사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듯싶다.
▲ 존 엔자인 (51·현 네바다주 상원의원)
그가 아내 몰래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는 의혹은 지역 신문인 <라스 베이거스 선>을 통해 처음 제기됐다. 엔자인의 정부였던 신시아 햄튼(46)의 남편인 더그 햄튼이 <폭스 뉴스>에 이메일을 보내 제보를 해왔다는 사실이 보도된 것이다.
그대로 앉아서 당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는지 이 보도가 나가자 엔자인은 즉각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난 수개월 동안 더그 햄튼은 과도한 액수의 돈을 요구해왔다”고 말하는 한편 “내 인생에서 가장 나쁜 짓을 저질렀다”고 말하면서 불륜 사실을 인정했다.
깨끗이 과오를 인정한 후 공화당 정치위원회 위원장직에서 사퇴한 엔자인은 현재 상원의원직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상태. 하지만 이번 사건은 그리 쉽게 잠잠해질 것 같지 않다. 고백을 한 후에도 여전히 크고 작은 소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상원의원 선거 당시 참모였던 신시아 햄튼과 2007년 12월부터 이듬해 8월까지 9개월 동안 불륜 관계를 유지했던 그는 이 기간 동안 햄튼의 급료를 편법으로 두 배가량 더 지급했던 것으로 알려져 파장이 일고 있다. 자신이 위원장으로 있는 정치위원회에 햄튼을 회계원으로 고용하고 추가로 급료를 지불했던 것.
스캔들이 터진 직후 39%의 지지율을 보이면서 건재했던 그였지만 앞으로 정치 인생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 엘리엇 스피처
(50·전 뉴욕주 주지사 및 뉴욕주 검찰총장)
현직에 있을 때 ‘미스터 클린’이라는 별명을 얻었을 만큼 청렴결백을 강조했던 그였건만 추잡한 사생활이 드러나자 바로 옷을 벗고 말았다.
지난해 초 <뉴욕타임스>에 의해 시간당 수천 달러 하는 고급 콜걸들을 불러 주기적으로 성관계를 맺었다는 사실이 들통 나면서 망신살이 뻗치고 말았다.
그는 단골이었던 ‘황제 클럽 VIP’에서 6~7개월 동안 7~8명의 콜걸들을 만나면서 총 1만 5000달러(약 1900만 원)를 지불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 마지막으로 만났던 애슐리 듀프레(23)라는 이름의 콜걸에게는 시간당 1000달러(약 128만 원)씩 모두 4000달러(약 500만 원)의 화대를 지불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스캔들이 터지자 ‘9번 고객(스피처의 비밀 암호)’의 콜걸이었던 듀프레는 일약 스타로 떠올랐으며, 한때 유명 인사 대접을 받았다.
공직에 있을 당시 스피처가 성매매 비용으로 쏟아 부은 돈은 자그마치 8만 달러(약 8000만 원)였다.
당시 기자회견에서 “가족의 사랑과 신뢰를 저버리고 공무원으로서의 의무를 지키지 못한 것을 진심으로 사과 드린다”고 말하며 불명예 퇴진했다. 그 후에는 가족들과 함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거나 부친의 부동산 회사에서 부동산 투자와 관련된 업무만 보아왔다. 지난 3월에는 백악관 인근의 13층짜리 오피스 빌딩을 1억 8000만 달러(약 2300억 원)에 매입하면서 부동산 투자가로 변신했다.
▲ 데이비드 비터
(48·현 루이지애나주 상원의원)
‘D.C 마담’으로 불리던 데보라 진 팰프리가 운영하던 매춘업소의 단골 고객이었던 비터의 은밀한 사생활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지난 2007년 팰프리가 고객의 전화번호부 명단을 ABC 방송국에 넘기면서였다. 팰프리가 고객들의 명단을 공개한 이유는 당시 세금 탈루 혐의와 불법 매춘 혐의로 재산이 압류되자 “혼자만 죽기는 억울하다”는 복수심 때문이었다. 그녀는 “나의 불법 혐의가 기각되지 않으면 예정대로 1만여 명의 고객 명단을 전부 공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당시 명단을 입수했던 성인잡지 <허슬러>가 비터의 번호를 확인한 후 전화를 걸어 팰프리와의 관계에 대해 묻자 결국 비터는 다음 날 자진해서 서면으로 성명서를 발표했다. “내가 실망시킨 모든 사람들에게 진심 어린 깊은 사과를 하는 바이다.”
조사 결과 비터는 1999년부터 2001년까지 총 다섯 차례 서비스를 이용했던 것으로 알려졌으며, 당시 서비스 가격은 90분에 275달러(약 25만 원) 또는 시간당 300달러(약 30만 원)였다.
이밖에도 비터는 비슷한 시기에 ‘캐널 스트리트 마담’이라고 불리는 자네트 마이어의 폭로로 또 한차례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시간당 300달러 하는 콜걸 서비스를 받았던 그는 특히 웬디 코르테즈라는 매춘 여성의 단골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현재까지는 별 타격 없이 상원의원직을 유지하고 있는 그는 내년 선거에서도 재선이 유력한 상태다.
▲ 존 에드워즈
(53·전 민주당 대통령 경선 후보)
노스캐롤라이나 상원의원을 거쳐 2004년 민주당 부통령 후보, 2008년 민주당 경선 후보 등 한때 잘나가는 정치인이었던 그를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뜨린 것도 역시 섹스 스캔들이었다. 특히 그는 유방암 선고를 받고 투병 중인 아내를 배신했다는 점에서 도덕적인 치명타를 입고 현재 정치 생명이 거의 끝난 상태다.
2007년 <내셔널 인콰이어러>를 통해 보도된 그의 불륜 스캔들은 단순한 의혹에서 시작해 점차 기정사실화 됐으며, 현재 내연녀인 릴리 헌터는 딸까지 출산해서 키우고 있는 상태다.
둘이 처음 만난 것은 2006년 무렵이었다. 에드워즈의 홍보 동영상을 제작하면서 가까워진 둘은 이내 불륜 사이로 발전했으며, 민주당 경선 직전까지도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 후 헌터가 에드워즈의 아이를 가졌다는 소문이 불거졌지만 에드워즈 본인은 이 사실을 극구 부인했다. 끝없는 언론 보도와 추궁 끝에 결국 2008년 ABC 방송과의 인터뷰를 통해 외도 사실은 인정했지만 아이의 친부는 아니라고 끝까지 발뺌했다.
하지만 선거 캠페인 보좌관이자 에드워즈의 바람막이 역할을 했던 앤드류 영이 최근 “아이 아빠는 에드워즈가 맞다”는 폭탄 선언을 하면서 갈 곳이 없어지고 말았다.
현재 노스 캐롤라이나 채플힐 근교에 위치한 자택에서 가족들과 칩거하고 있는 그는 2008년 경선에서 중도 포기한 후 지금까지 공식석상에 모습을 거의 드러내지 않고 있다. 회고록 출간회를 빌미로 해외 여행을 다니고 있는가 하면 엘살바도르, 하이티섬 등을 방문해 자원봉사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