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은 11월 들어 이전에는 없었던 특별 훈련에 돌입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 연합뉴스
북한에서 11월은 일종의 휴지기다. 11월은 무엇보다 농촌 일손이 바빠지는 추수철이다. 식량 수급 문제가 주요 난제인 북한에서 추수철은 아주 중요한 기간이다. 이 때문에 주민과 대학생은 물론 아이들까지 농사일에 총동원된다.
북한군 역시 마찬가지다. 각 군부대 인력들은 12월부터 치러지는 동계 훈련 전까지 별다른 훈련 없이 지내며, 인근 농장으로 동원되곤 한다. 비대화된 북한의 군부대 인력은 각 농장 추수철에 없어서는 안 될 일손들이다.
그런 북한군이 이번 11월에 이례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 모든 게 11월부터 12월까지 이어지고 있는 한미연합훈련 때문이다. 일단 11월 11~14일 사이 있었던 한미연합해상훈련은 북한은 물론 중국과 러시아까지 자극할 정도로 크게 진행됐다. 실제 중국도 남지나해와 보하이만을 중심으로 대응 성격의 훈련을 했다.
훈련 당시 루스벨트함, 니미츠함, 레이건함 등 미국이 자랑하는 항공모함 세 척이 총출동했고 핵잠수함 6척, 수상함 10여 척, 항공기 200대가 동시 투입됐다. 우리 해군 역시 이지스함과 구축함 등을 투입시켰다. 항공모함 세 척이 한반도 해상 인근에 투입된 것은 1976년 판문점 도끼 만행사건 이후 처음일 정도로 이번 해상 훈련 규모는 역대급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12월 4일부터 8일까지는 한미연합 항공기훈련이 재개된다. 일명 ‘비질런트 에이스(Vigilante Ace)’. 한미 양국 군은 이 기간 동안 8개 기지에서 발진한 항공기 230대를 투입할 예정이다. 물론 이번 훈련에는 항공기는 물론 공군, 해군 해병대 포함 병력 1만 2000명이 투입된다. 특히 이번 훈련에는 미 공군 첨단 자산인 스텔스 전투기 F-22 ‘랩터’ 6대가 사상 처음으로 동시 투입된다. 참고로 아직 F-22의 비행궤적을 북한군이 탐지하기는 어려운 수준이다.
당연히 북한군 입장에선 대단히 위협적이었다. 한미연합훈련의 핵심은 적 핵심 시설 정밀 타격 및 침투 저지이기 때문에 북한으로선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이번 연합훈련은 한미 정상 간에 약속한 전략자산 순환배치 확대 및 강화 계획의 결과물이다. 물론 이전부터 이번 훈련에 대한 내용은 이미 공표되고 공유됐던 사안이다.
아직 국내에서 별도의 공식 브리핑은 없지만, 북한은 이미 10월부터 대응 훈련을 차근차근 준비해 왔다. 필자와 접촉한 북한 관계자에 따르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정확히 10월 2일 군에 ‘특별 추계훈련’을 실시할 것을 공식 비준했다고 한다.
북한군은 11월 1일부터 추수 기간 동안 훈련을 하지 않는다는 전례를 깨고 앞서의 비준에 따라 훈련을 정식 시작했다. 이는 현재 진행형이며 동계훈련(보통 12월 1일부터 이듬해 4월 30일까지 진행)과는 별도로 진행되는 특별 훈련 형태다.
일단 투입 부대와 훈련 형식, 작전 지역이 이례적이다. 투입 부대는 최고사령부 작전예비대, 11군단(일명 폭풍군단), 정찰국 산하 12소, 62저격부대, 17저격부대, 620부대, 425부대, 815부대 등 공격부대들이 중심이며 육해군 연합작전이 기본이다. 다만 평소 북한군 내부 훈련은 이러한 공격부대와 함께 각 지방 군단 및 노농적위군 등 방어부대가 쌍방으로 진행되지만, 이번 훈련에선 이 같은 방어부대가 제외됐다.
여기에 비공식적으론 호위총국 내 친위부대(974군부대), 쿠데타를 진압하는 호위총국 내 2개의 정예여단 등이 동원됐다고 한다. 지금까지 호위총국은 훈련에 참여하더라도 비밀 엄수 문제로 관내에서 여단 혹은 총국 산하 특수부대, 기존 중앙당 작전부 산하 일부 연락소 전투부대들의 공격을 막는 ‘워 게임’ 형식으로 진행됐다. 그러나 이번 훈련에는 호위총국이 방어하고 북한 정찰총국 내 일부 특수부대들이 대부대 혹은 소부대 식으로 공격하는 등 다양한 형태로 진행 중이라고 한다. 특히 친위부대 내 경호조들까지 참가하는 식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작전 지역은 크게 두 곳에서 진행 중이다. 평안북도 철산군, 창성군(김정은의 실제 출생지), 의주군 등 서북지대와 강원도 문천시(고암동), 원산시, 함경북도 락원군(구 퇴조군), 신포시, 어랑군 등 동해지역이다. 즉 평북 지역에서는 김정은의 북한 군 최고수뇌부를 지키는 목표가 기본이고, 동해작전지역 내에서 훈련은 바로 한미 해상공격을 막는 목표가 기본이라고 한다.
북한 시각에서는 평북 지역도 중요하지만, 이번 훈련에서 눈 여겨 볼 곳은 동해지역이다. 우선 첫 번째로 문천·락원·신포에 위치한 동해함대를 주축으로 상대 해군 저지 훈련을 꾀하고 있다. 여기엔 원산·어랑에 위치한 공군부대가 가세해 보조를 맞추고 있다.
이에 앞서 훈련에 투입되는 북한 해군은 상대 항공모함에 대응하기 위해 각 경비정과 어뢰정을 로켓포정으로 교체하는 한편 소형잠수정 및 각 함선에 폭약 100kg 이상을 선미에 장착했다고 한다. 최대한 실전 분위기를 조성하고 상대를 의식한 시나리오에 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북한군은 ‘쉬파리작전’에 따른 교전수칙을 기본으로 실제적 훈련을 진행하는 것으로 보인다. ‘쉬파리작전’이란 유사시 적군의 우세한 함정 혹은 함대가 들어올 경우 북한 해군이 소유한 500톤 좌우의 소형 잠수함 및 각종 전투 함정들이 쉬파리처럼 달려드는 전술이다. 이는 사실상 자폭행위까지 포함한 공격 작전으로 대형 함선들을 격파하는 해상에서의 북한식 소부대 작전인 셈이다.
북한 군도 나름대로 이번 한미 해상 및 공중 합동훈련에 대해 민감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11월 29일 대륙간 탄도미사일 발사 역시 이번 훈련과 연계되어 있는 ‘이벤트’일 가능성도 높다. 이번 훈련은 그대로 기존 동계 훈련과 연결된다. 앞서의 관계자에 따르면 북한군은 내년 1월 8일(김정은 생일)까지는 이러한 한미연합 무력 방어 훈련을 지속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벌써부터 북한 내부에서는 이번 훈련에 대한 후유증을 우려하고 있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기름 등 예비물자 부족 탓이다. 이 때문에 북한군 내부에선 훈련은 정상 진행하되 ‘기동훈련’은 최대한 자제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윤걸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대표(겸 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
정리=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