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 의사로 사칭한 계정과 피해 여성들의 대화 내용.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지난 11월 26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오픈카톡에 여자 산부인과 의사인 척하면서 성기 사진 받아내는 ○○충’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이 글의 작성자는 “성병 때문에 상담하러 오는 간절한 환자를 의사인 척하면서 이용했다”며 “다 같이 신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작성자는 의사 사칭 계정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과 피해자들의 대화 내용을 캡처한 사진도 올렸다.
첨부된 사진에 따르면 산부인과 의사 사칭 계정은 자신을 “산부인과 의사”라며 “남자분들은 성기 검사되는 분만 오는 경우가 있어서 못 믿으면 시비 걸지 말라”는 설명과 여성으로 보이는 사진을 자신의 프로필 배경사진으로 설정했다. 아울러 참여코드를 밝히며 1:1 비밀 채팅을 요구했다. 카카오톡 오픈 채팅 기능은 익명성이 보장되며, 임의로 채팅방을 만들어 놓으면 누구나 들어와 대화에 참여할 수 있다. 이 가운데 1:1 비밀 채팅은 채팅방에 입장하기 전 ‘참여코드’라는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들어올 수 있는 구조다.
작성자가 밝힌 대화 내용은 더욱 충격적이다. 이 계정은 각종 산부인과 관련 진료를 원하는 피해 여성들에게 ‘성기 사진’을 요구하며 무료로 진료해준다는 식으로 접근했다. 피해 여성들은 대부분 젊은 여성들로 주변의 시선, 비용 등으로 산부인과에 가기를 꺼려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뿐만 아니라 다른 피해 여성과 나눈 대화 내용을 보여주며 진짜 산부인과 의사가 진료한 것처럼 꾸며 대화 상대를 안심시키려 했다. 이 과정에서 다른 여성들에게 받은 성기 사진을 보여주기도 했다. 다른 대화 내용에서 이 계정은 피해 여성이 직업을 의심하자 ‘의사 면허증’과 영업 중인 곳의 정보도 남겼다. 하지만 남성이 선보인 의사 면허증 사진은 포털 사이트 등에서 ‘의사 면허증’이라고 검색하면 손쉽게 나오는 사진 중 하나였다.
피해를 호소한 한 A 씨(18)는 <일요신문>에 “몸에 이상이 있어도 미성년자라 산부인과에 가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익명을 믿고 상담했지만 오히려 익명에 당한 것 같아 화가 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처음엔 의심을 가졌지만 의사면허 등 구체적인 정보들을 말하니까 나도 모르게 믿게 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내용이 커뮤니티 등을 통해 알려진 뒤 다수 여성들이 이 계정을 신고, 현재는 계정이 사라진 상태다. 이 글을 접한 대부분에 여성들은 댓글을 통해 “경찰에 정식으로 신고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정작 피해 여성들은 이마저도 주저하고 있다. 경찰 신고하게 되면 오히려 자신의 신상이 드러나게 될까 두렵기 때문이다. 앞서의 A 씨는 “경찰에 신고하고 싶은 마음은 크지만 오히려 내 신상이 알려지는 게 두려워 그마저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산부인과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무관하지 않다. 실제 서울시 여성가족재단이 여고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0명 중 7명은 ‘아파도 산부인과에 가기 싫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성인 여성 53% 이상은 생식기 건강에 이상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약을 먹거나 참는 데 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산부인과 전문의는 “어린 학생들의 경우 산부인과에 드나드는 것 자체에 두려움을 갖고 있어 염증 같은 가벼운 질환에도 ‘죽을 병인가’ 하고 고민하다가 저런 곳(익명 채팅)에 의지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카카오톡 오픈채팅은 ‘익명성’이 보장된다는 점 때문에 성매매, 음란채팅 등 범죄의 도구로 이용돼 왔다. 특히 10대 청소년들이 카카오톡과 오픈채팅을 많이 이용하고 있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가장 심각한 것은 성매매다. 오픈채팅에서 ‘데이트’, ‘여고생’, ‘만남’, ‘알바’ 등을 검색하면 ‘조건만남’을 유도하는 채팅방들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2016년 한 해 동안 채팅 앱을 통한 성매매는 약 1404건 적발됐고, 검거된 사람만 3489명에 달했다.
카카오 측은 이 같은 불법 채팅방 단속과 관련, ‘금칙어 설정’과 ‘신고’ 기능으로 제재를 가하고 있지만 효과는 미미한 실정이다. 카카오 관계자는 “유해 단어가 노출, 검색되지 않도록 금칙어로 제어하고 있고, 신고를 통해 조치를 취하고 있다”면서도 “아무래도 사적 대화 영역이다 보니 다 들여다볼 수 없어 한계가 있는 상황”이라며 “자칫 사생활 침해로 이어질 수 있어 조심스런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경찰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경찰청 사이버수사기획팀 관계자는 “채팅방에서 개인 간 비밀리에 이뤄지는 불법 만남이나 거래는 단속에 한계가 있다”며 “매매가 이루어진 다음 해당 음란물을 영리 목적으로 인터넷에 유포하거나, 음란물을 빌미로 협박을 하는 등 2차 범죄로 이어질 경우에만 주로 처벌되고 있다”고 말했다.
처벌 기준이 낮은 것도 이 같은 불법 채팅방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로 지적된다. 사이버수사를 전담하는 한 검찰 관계자는 “최근 들어 여성으로 가장한 경찰이 오픈채팅에 접근 성매매 등을 적발하는 케이스가 많다”며 “그러나 그들은 보통 벌금형에 그치고 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익명 채팅은 가입정보 조작이 가능한 데다 대화 내용을 캡처해 놓지 않으면 범행을 입증할 단서도 찾기 어렵다. 해당 업체에서 가해자에 대한 개인정보를 보관하지 않을 경우 사실상 수사가 힘들다”며 사용자의 주의를 요구했다.
김상훈 기자 ksanghoon@ilyo.co.kr
성심병원 사태 여기를 통해 ‘오픈’…오픈채팅 잘 쓰면 ‘약’ 카카오톡 오픈채팅에 ‘피해자’ ‘모임’ 등의 키워드를 검색하면 수십 건의 채팅방이 나온다. 이들은 오픈채팅을 통해 간편하게 의견을 공유하고, 대책을 강구한다. 카카오톡 캡처. 지난 2일 직장인 권리보호단체인 ‘직장갑질 119’가 상담을 위해 열어둔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서 간호사들의 피해 사례가 봇물 터지듯 쏟아진 것. 이 단체는 오픈채팅을 통해 제보받은 내용들을 정리해 ‘한림성심병원 보고서’를 만들어 국회에 전달하기도 했다. 아울러 전국 각지의 간호사 및 간호학과 학생들도 오픈채팅방을 통해 피해 사례를 통합, 언론사들에 제보했다. 실제 카카오톡 오픈채팅에 ‘피해자’ ‘모임’ 등의 키워드를 검색하면 수십 건의 채팅방이 나온다. 이들은 오픈채팅을 통해 간편하게 의견을 공유하고, 대책을 강구한다. ‘성심병원 사태’와 관련 ‘오픈채팅’을 이용하고 있는 한 간호사는 “사건이 터진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간호사들끼리 간호환경 개선을 위한 의견을 공유하고 있다”며 “‘익명’이 보장된다는 점 때문에 자신 있게 의견이 오고 가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