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억 원대 투자금 사기 사건이 발생한 채굴기 위탁 업체 ‘마이닝맥스’. 사진=마이닝맥스 홈페이지
‘2000억 원대 가상화폐 사기사건’은 세계 2위 가상화폐인 이더리움(Ethereum)의 ‘채굴’을 대리한 업체 마이닝맥스를 둘러싸고 발생했다. 마이닝맥스의 회장 A 씨 등 경영진들이 채굴기 투자금과 채굴된 이더리움 수익 등 2000억 원 가운데 상당 금액을 가로채 해외로 도피한 것. 현재 관련 사건을 수사 중인 인천지검, 전주지검 등이 마이닝맥스의 임원과 사업자 간부 16명을 구속했지만 실제 범행을 설계하고 주도한 것으로 파악되는 수뇌부들의 신병 확보와 이들이 은닉한 범죄 수익 파악에 어려움이 따르고 있다. 마이닝맥스 본사가 미국에 위치하고 있고 수뇌부들 역시 미국에 거주 중이기 때문이다.
가상화폐는 주식처럼 서로 거래를 통해 구입할 수도 있지만 복잡한 수학 공식을 푸는 것으로도 획득할 수 있다. 이 수식을 푸는 것을 가상화폐 분야의 전문 용어로 ‘채굴’이라고 하며, 사람 대신 채굴 작업을 진행하는 고성능 컴퓨터를 ‘채굴기’라고 한다. 마이닝맥스는 이 채굴기 구입에 투자할 투자자들을 모집한 뒤, 그들을 대신한 채굴작업을 통해 획득한 이더리움 수익을 투자자와 회사가 각각 6:4 비율로 나눠왔다.
채굴기는 한 대당 230만~380만 원 상당으로 거래됐으며, 회원들은 높은 수익률에 혹해 여러 개의 채굴기를 구입하고 채굴작업에 투자했다. 사업이 정상적으로 운영되던 초기에는 2년 안에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었다고 했다. 처음 한두 대만 구입했던 투자자들이 친인척들로부터 거금을 빌려 채굴기 수를 늘려나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마이닝맥스의 운영 방식은 정상적인 투자회사라기보다는 피라미드식 다단계였다. 채굴기를 구입한 투자자들은 다른 투자자를 모집해 마이닝맥스를 소개하고 채굴기를 판매한다. 다른 투자자 모집에 성공하면 ‘사업자’로 지위가 올라가며, 마이닝맥스 측으로부터 소개비 명목으로 미화 200달러가 지급된다.
9월 26일 마이닝맥스 공식 페이스북에 올라온 홍보행사 포스터. 이 게시물에는 마이닝맥스의 채굴 중단에 대한 문의 리플이 달렸다. 사진=마이밍맥스 페이스북
지역의 지부장을 맡아 마이닝맥스 투자를 홍보해 온 것도 이 사업자들이 주축이 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자들을 많이 모으면 모을수록 사업자들에게 주어지는 인센티브도 다양했다. 일각에서는 마이닝맥스가 이들에게 고급 외제 차량을 제공하거나 해외 여행을 보내주었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투자자들이 마이닝맥스의 실체에 의구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지난 7월부터다. 채굴된 이더리움을 현금으로 바꾸기 위해 환전 출금 신청을 했지만 마이닝맥스 측이 “신청 고객들이 많아 순차적으로 진행해야 한다”라며 출금을 차일피일 미룬 것.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1개월까지 미뤄졌던 출금은 신청한 전액이 아니라 일부만 지급되기도 했다. 그마저도 투자자들이 상급자인 간부 사업자들에게 직접 닦달을 하고나서야 이뤄졌다.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마이닝맥스에게 투자자들의 신청에 따라 출금해 줄 수 있는 여유 자금이 없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급속도로 증가하는 투자자들에 비해 채굴되는 이더리움의 양이 적기 때문에 출금이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런데 애초에 채굴기의 수량만 제대로 갖춰졌다면 출금이 불가능할 정도로 이더리움이 적게 채굴될 리 없다는 것이 투자자들의 주장이다. 이 때문에 마이닝맥스가 애초에 투자받은 돈으로 채굴기를 구입하지도 않았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사업이 제대로 운영되던 초기 이후에 일부만 지급됐던 이더리움 수익도 실제 채굴기를 이용한 수익이 아니라 신규 투자자의 돈을 기존 투자자에게 지급한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이른바 ‘폰지(Ponzi)’ 사기 형태로 투자자들을 속여 왔다는 것.
채굴기의 실체가 문제로 떠오르면서 마이닝맥스는 서울 목동 KT IDC 등 전국 총 24곳의 IDC센터에서 채굴기 4만 8000여 대를 두고 채굴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투자자들이 확인을 위해 IDC 방문을 신청하자 마이닝맥스 측은 “채굴기 견학은 불가능하다. 오픈 시 발생할 수 있는 해킹과 취약해질 보안 상태 때문”이라며 거절했다.
투자자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지난 9월 결국 마이닝맥스의 중간 관리자, 즉 사업자들로 구성된 비상대책위원회가 환전 출금 지연의 이유를 밝혔다. 정부가 사기업의 IDC 이용을 문제삼으면서 올 7월 말부터 IDC가 일방적으로 채굴기 위탁 계약을 해지하는 바람에 4만 8000대 가운데 현재 가동 중인 8000대를 제외한 4만 대를 철수한 상태라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1개월 반 정도 채굴을 중지하고 9월 말까지 채굴기 2만 3000대를 부산에 설치한 뒤 10월 말까지 나머지 2만 대를 다른 지방에 설치할 예정이라고도 덧붙였다. 채굴기 설치가 완료되는 대로 지급이 지연된 이더리움 16만 개를 모두 지급하겠다는 게 마이닝맥스 측이 밝힌 청사진이었다.
그러나 이들이 설치하겠다는 4만 대의 채굴기는 실체조차 확인되지 않았다. 마이닝맥스 비대위가 공개한 채굴기의 사진들도 가동 중인 장면을 촬영한 게 아니라 박스 안에 담겨 있는 기계를 촬영했을 뿐이었다. 실제 이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피해 투자자들의 법무법인 관계자도 “(채굴기가) 피해 투자자들의 기대에는 현저히 미치지 못하는 정도만이 잔존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힌 바 있다.
더욱이 가동 중이라는 8000대도 당초 계약 내용대로의 고사양 채굴기가 아닌 저급 사양이라는 사실도 드러났다. 이마저도 한국 투자자들이 구입한 채굴기가 맞는 것인지에 대한 확인도 불가능하다. 마이닝맥스가 해외 투자자들이 구입한 채굴기도 한국에서 설치해 운영해 왔기 때문이다. 해외 투자자들도 11월 3일 이후 이더리움 환전 출금이 전면 중단된 상태인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사기를 확신한 투자자들은 결국 지난 10월~11월이 돼서야 마이닝맥스에 대한 고소장을 접수했다. 문제가 발생한 지 3개월 이상이 지난 뒤에야 피해 투자자들이 단체로 고소에 이르게 된 것은 이들이 마이닝맥스가 내놓은 청사진을 믿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더 큰 이유는 마이닝맥스 비대위 관계자들이 “고소가 접수된다면 채굴기나 이더리움 수익금 등은 범죄수익으로 국고환수될 수 있다”며 투자자들을 주저하게 했기 때문이다. 마이닝맥스 자체가 다단계 방식으로 운영돼 왔기 때문에 투자자들은 그들의 말을 믿고 피해를 쉬쉬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운영 방식이 실제로 법에 저촉된다고 인정될 경우, 최악의 상황으로는 채굴된 이더리움 수익은커녕 투자자들이 정당하게 구입한 채굴기까지 국고로 환수될 수 있다는 우려 탓이었다.
마이닝맥스 미국 본사 측 경영진은 ‘한국 사업자 꼬리 자르기’에 나서는 모습을 보였다. 사업설명회나 방문판매, 새로운 투자자 모집 등 불법 다단계 행위는 비대위에서 활동 중인 사업자들과 이에 동조한 투자자들이 했을 뿐, 마이닝맥스 경영진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 더욱이 채굴기 구입과 가동이 중단되고 수익 지급이 지연된 이유도 한국의 사업자들의 문제이지 경영진과는 관련이 없다는 공지를 밝히기도 했다.
마이닝맥스 측은 “방문판매법에 위배가 되고, 유사 수신에 저촉이 되고 이게 모두 회원(투자자) 여러분에게 직접적으로 해당이 되는 이야기”라며 “비대위가 말하는 법적인 조처가 과연 누구를 위한 조처가 될지 한 번 더 심사숙고하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중간 관리직인 사업자와 경영진이 서로가 서로에게 책임의 화살을 돌리고 있는 꼴이다.
결국 지난 10월 일부 투자자들이 전주지검에 마이닝맥스 사업자 등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사기) 혐의로 고소한 것을 시작으로 다른 투자자들도 단체로 11월 초 마이닝맥스 회장 A 씨 등 경영진과 사업자들을 인천지검에 고소했다. 현재까지 알려진 마이닝맥스의 국내 피해자는 5000여 명에 달하며, 인천지검에서만 3명의 검사가 수사를 담당하고 있다. 검찰 역시 피해 회복을 위해 적극적으로 협조할 의사를 밝혀왔다고 피해 투자자 법무법인 측은 전했다.
마이닝맥스는 채굴기 위탁 운영 사업 외에도 부동산 업체인 이노에이엠씨(INNO AmC), 엔터테인먼트 회사 이노이엔씨(INNO EnC) 등 국내에서 다양한 법인을 운영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사들은 마이닝맥스 A 회장이 투자받은 자금을 분산시키기 위해 설립된 것이라는 의혹을 받고 있다.
특히 마이닝맥스에 이더리움 환전 문제가 발생했던 지난 7월, A 회장이 이노에이엠씨에서 100억 원을 출연해 이노이엔씨를 설립한 정황이 드러났다. 그 직후 A 회장은 “자금 관리를 해야 한다”는 이유로 이 가운데서 자본금 80억 원을 빼냈다. 이 ‘이노’ 시리즈의 법인들이 마이닝맥스 투자금을 빼내기 위해 설립된 페이퍼 컴퍼니라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인천지검은 마이닝맥스의 계열 회사에 대해서도 수사망을 좁혀나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는 12월 말경 마무리될 예정이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