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이 박병호 영입을 주도했던 테리 라이언 전 단장과 스카우트 실무자가 해고됐다. 입지는 더 좁아졌다. 올해는 마이너리그에만 머물렀다. 결국 박병호는 남은 계약기간 동안 보장된 650만 달러(약 70억 원)을 포기하고 넥센 복귀를 알렸다. 더 많은 돈보다 ‘따뜻한 둥지’를 택했다.
# 박병호와 황재균이 돌아왔다
넥센은 박병호를 다시 맞아들이게 돼 벌써 들떠 있다. 여러 모로 ‘박병호 효과’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 올해 롯데가 좋은 예다. 지난해 간판타자 이대호가 4년 총액 150억 원을 받고 금의환향하자 롯데팬들은 “다시 사직구장으로 가자”며 들썩였다. 사직구장 응원 열기가 되살아났다. 실제로 롯데는 그라운드 안팎에서 이대호의 존재로 인한 장점을 충분히 누렸다. 올해 5년 만에 가을 야구 무대도 밟았다.
넥센으로 복귀한 박병호. 일요신문 DB
올 시즌 4년 만에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던 넥센도 박병호로 인해 타선의 무게감이 확 달라졌다. 4번 타자와 1루수 자리가 동시에 채워졌고, 잔뜩 가라앉았던 팀 분위기에 활력이 생겼다. 무엇보다 박병호는 목동구장에서 2년 연속 50홈런을 때려내고 미국으로 떠났던 타자다. 고척스카이돔으로 둥지를 옮긴 이후 처음으로 넥센 유니폼을 입고 뛰게 됐다. 떠나가던 팬들의 마음을 돌리고, 고척돔 관중석을 꽉 채울 만한 스타가 한 명 생겼다.
KBO 리그 전체에도 이득이다. 박병호가 떠난 뒤 최정(SK)이 2년 연속 홈런왕을 가져갔다. 2015년에는 에릭 테임즈(밀워키·전 NC)와 공동 홈런왕에 올랐지만, 올해는 레이스를 독주했다. 다시 돌아온 박병호와 ‘디펜딩 챔피언’ 최정의 홈런왕 라이벌 대결에 뜨거운 관심이 쏠릴 것은 당연하다. 흥행에 호재가 될 만한 요소다.
물론 박병호의 복귀는 다소 씁쓸한 과정을 통해 진행됐다. 코리안 빅리거들의 추운 겨울을 암시하는 풍경이다. 한국에서는 이름과 존재만으로도 환영을 받는 스타플레이어지만, 메이저리그 무대는 냉정하기 그지없었다. 한때 KBO 리그 출신 선수들에게 폭발적인 관심을 보였던 메이저리그 구단들도 서서히 뜨겁던 시선을 거둬가고 있다.
황재균(kt)도 빅리그 도전을 1년 만에 접었다. 올해 초 원 소속구단 롯데의 파격적인 제안을 거절하고 미국으로 떠났던 황재균이다. 훨씬 적은 금액에 샌프란시스코와 계약한 뒤 “메이저리그에서 단 한 경기라도 뛰어 보고 싶은 꿈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꿈은 이뤘다. 시즌 막바지 빅리그에 콜업돼 데뷔전에서 홈런을 쳤다. 그러나 그게 전부였다. 메이저리그의 높은 벽을 실감했다. 결국 kt와 4년 88억 원에 FA(프리에이전트) 계약을 맺었다.
오승환(세인트루이스)과 김현수(필라델피아)는 아직 메이저리그에서 소속팀을 찾지 못했다. 강정호(피츠버그)는 음주운전 사고로 취업 비자 발급조차 불투명하다. 1년간 무뎌진 경기 감각을 살리기 위해 도미니카 리그로 향했지만 성적 부진으로 방출됐다. 피츠버그가 언제까지 기다려 줄지 알 수 없다.
# ‘실패’로 돌아갔던 ‘꿈의 무대’ 도전사
한때 메이저리그는 ‘꿈의 무대’였다. 박찬호(전 한화) 추신수(텍사스)처럼 프로를 거치지 않고 미국으로 직행해 성공한 선수들은 나왔지만, KBO 리그 출신이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일본 프로야구를 우회하는 게 유일한 길로 여겨졌다.
실제로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까지 한국의 스타플레이어들이 야심차게 도전장을 내밀었다가 좌절하는 일이 잦았다. LG 최고 스타였던 이상훈은 1997년 36세이브를 올린 뒤 메이저리그 진출을 꾀했다. 보스턴이 LG에 임대료 250만 달러를 주기로 하고 계약도 했다.
일사천리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는 듯했다. 그러나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이 계약을 인정하지 않았다. “전 구단이 참여할 수 있는 공개경쟁 입찰을 해 소속팀을 정해야 한다”고 했다.
이상훈은 미국으로 건너가 두 차례 공개 테스트를 치렀다. 1998년 2월 메이저리그 포스팅 제도의 사상 첫 ‘이용자’가 됐다. 보스턴은 예상대로 가장 높은 금액을 써내 독점 협상권을 가져갔다. 다만 최고 응찰액이 60만 달러에 그쳤다. LG가 이상훈을 보내는 대가로 받아들이기엔 너무 적은 액수였다.
이상훈은 결국 메이저리그 대신 일본에 먼저 진출했다. 1998년 LG와 자매결연 구단이었던 주니치와 임대 계약을 했다. 2년 뒤 3년 총액 535만 달러를 받고 보스턴 유니폼을 입었다.
두산 진필중은 2002년 2월 포스팅을 신청했다가 응찰 구단이 나오지 않아 꿈을 접었다. 한 시즌을 더 뛰고 2002년 12월 재도전을 해봤지만, 2만 5000달러라는 터무니없이 적은 액수를 받아들었다. 두산과 진필중 모두 수용하지 않았다. 비슷한 시기에 도전장을 내밀었던 임창용(KIA·당시 삼성) 역시 65만 달러 응찰액이 나와 메이저리그 진출을 포기했다. 임창용 역시 훗날 일본 프로야구에서 실력을 입증한 뒤에야 메이저리그에 입성할 수 있었다. 2013년 시카고 컵스와 계약해 6경기에 등판했다.
롯데 최향남이 2009년 포스팅을 통해 첫 계약에 성공했지만, 상황 자체가 일반적인 ‘해외 진출’과 달랐다. 최향남은 당초 세인트루이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에 합의했지만, 롯데가 방출을 거부하고 ‘포스팅 시스템을 거쳐야 미국에 보내줄 수 있다’는 조건을 내걸면서 문제가 생겼다. 최향남이 세인트루이스를 간곡하게 설득했다. 결국 세인트루이스는 단돈 ‘101달러’를 입찰했고, 롯데는 약속대로 금액에 상관없이 최향남을 보내줬다. 메이저리그를 향한 불굴의 도전정신이 박수를 받았다. 그러나 최향남은 트리플A에서 뛰다 메이저리그 무대는 끝내 밟지 못하고 돌아왔다.
류현진.
# 류현진은 선구자다운 행보 이어가
진짜 큰 문은 류현진(LA 다저스)이 열었다. 류현진은 한화에서 7시즌을 꽉 채운 뒤 2012년 말 해외 진출 자격을 얻었다. 메이저리그 진출을 꿈꾸며 포스팅에 나왔다. 다저스는 포스팅 금액 2573만 7737달러 33센트(약 277억 원)을 적어내 독점 교섭권을 따냈다. KBO 리그 출신 선수가 메이저리그에서 그 정도 대우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한국 야구의 경사이자 충격으로 여겨졌다. 류현진은 더 나아가 다저스와 6년 3600만 달러(약 381억 원)에 사인했다. 이닝 옵션을 달성하면 최대 4200만 달러(약 423억 원)까지 받을 수 있는 계약. KBO 리그가 최초의 빅리거를 배출했다.
류현진의 성공 여부가 이후 KBO 리그 출신 선수들에 대한 메이저리그의 시선을 좌우할 게 분명했다. 시선이 쏠렸다. 결과는 대성공. 류현진은 빅리그 진출 첫 2년 연속 14승을 올렸다. 메이저리그 최정상급 투수로 분류되던 클레이튼 커쇼와 잭 그레인키에 이어 팀 3선발로 활약했다.
물꼬가 트였다. 2013시즌이 끝난 뒤 국가대표 오른손 에이스였던 윤석민(KIA)이 FA 자격을 얻어 볼티모어와 계약했다. 2014년 말에는 현역 최고 공격형 유격수였던 강정호(당시 넥센), 2015년 말에는 4년 연속 홈런·타점왕 박병호가 차례로 포스팅을 거쳐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 강정호는 500만 2015달러, 박병호는 1285만 달러에 각각 낙찰됐다. 류현진에는 미치지 못해도, 과거 선수들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많은 포스팅 응찰액이었다.
김현수는 두산에서 FA 자격을 얻은 뒤 2년 총액 700만 달러를 받고 볼티모어에 입단했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성공을 거둔 이대호와 오승환도 각각 시애틀과 세인트루이스를 새 소속팀으로 정했다. 이대호는 스플릿 계약(메이저리그 진입시 400만 달러)을 했고, 오승환은 1+1년 최대 1100만 달러에 사인했다. 황재균도 샌프란시스코로 향했다.
류현진이 어깨와 팔꿈치 수술로 2년을 쉬는 동안, 한국에서 온 동지의 수는 두 배로 늘었다. 하지만 그 열풍은 오래 가지 못했다. 내로라 하는 왼손 투수 김광현(SK) 양현종(KIA)은 포스팅에서 실망스러운 금액을 받아 들었다. 손아섭(롯데)도 포스팅에 실패했다.
윤석민은 메이저리그 마운드를 밟지 못한 채 돌아왔고, 이대호·박병호·황재균은 1년만 뛰고 유턴했다. 강정호는 성공적인 2년을 보내고도 야구 외적인 실수에 발목을 잡혀 1년을 쉬었다. 오승환은 첫 시즌 마무리 투수로 자리 잡았지만, 올해 부침을 겪어 입지가 좁아졌다. 김현수는 2년 동안 플래툰 시스템에 갇혔다. 필라델피아로 트레이드됐지만 백업 외야수에 머물렀다. 국내 복귀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
# 도전 대신 안정을 택하는 이유
‘꽃길’ 대신 ‘도전’을 택했지만 ‘성공’은 생각보다 더 어려웠다. 이미 프로에서 짧게는 7년, 길게는 9년 이상 뛰고 미국 땅을 밟은 선수들에게 현실은 쉬운 길을 허락하지 않았다. 미래에 대한 불안함을 감내하면서 무작정 도전을 이어가기엔 그들은 이미 20대 초반 ‘유망주’가 아니다. 편안하고 따뜻한 KBO 리그를 두고 굳이 낯선 마이너리그에서 고된 생활을 이어갈 이유도 없다. 한국에서야 구단에서 애지중지하는 스타지만, 세계 모든 선수들이 모여드는 메이저리그에선 그들도 수많은 도전자 가운데 한 명일 뿐이다. 도전이든 안정이든, 선수들의 선택을 누구도 비난할 수 없는 이유다.
2018년 메이저리그 잔류가 확정된 KBO 리그 출신 선수는 다시 류현진뿐이다. 그 외에는 애초에 미국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한 추신수가 유일하다. 류현진은 올해 재활을 끝내고 재기에 성공하면서 메이저리그 다섯 번째 시즌을 무사히 마쳤다. 앞으로 남은 계약기간은 딱 1년. 올해가 끝나면 FA가 된다. 진정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룰 수 있는 기회이자 한계에 부딪힐 수도 있는 위기다. 그러나 적어도 류현진은 선구자다운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류현진이 열어 놓은 문으로 메이저리그에 입성했던 ‘동지’들이 하나둘씩 먼저 떠나고 있는 현실이 그래서 더 아쉽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
배지환, 빅리그 밟기도 전에 ‘국제 미아’ 될라 배지환(18·경북고)은 지난 9월 열린 2018 KBO 신인 드래프트에서 ‘지명받지 않고도’ 최고의 화제를 모았다. 드래프트 시작 직전 배지환이 미국 프로야구 애틀랜타에 진출하기로 마음을 굳혔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그는 강백호(서울고)와 양창섭(덕수고)에 이어 1라운드 3∼5순위 내 지명이 유력한 특급 유망주였다. 그러나 다른 동기생들과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 박찬호와 추신수처럼 KBO 리그를 거치지 않고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기로 결심했다. 애틀랜타 지역 언론은 “구단 스카우트들은 내야수인 배지환을 최근 몇 년간 한국에서 건너간 선수들 가운데 최고의 아마추어 선수로 평가하고 있다”며 기대를 표현했다. 그런데 그런 배지환이 ‘국제 미아’가 될 위기에 놓였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최근 배지환과 애틀랜타가 맺은 계약을 무효로 선언했기 때문이다. 애틀랜타 구단의 ‘꼼수’가 문제였다. 배지환은 졸지에 한국 구단에 지명될 기회도 놓치고, 새 소속팀까지 찾아야 하는 난감한 상황에 놓였다. 김현수를 만난 배지환. 사진출처=애틀란타 브레이브스 트위터 속사정은 이렇다. 메이저리그는 구단별로 국외 아마추어 FA와 아마추어 영입 총액을 제한하고 있다. 그 상한선을 초과한 구단에는 2년 동안 국외 아마추어 FA와 아마추어 영입시 계약금 최대 액을 30만 달러까지 낮추는 징계를 내린다. 계약금을 많이 줘야 하는 특급 유망주를 데려올 수 없다는 의미다. 애틀랜타는 2015년 상한선을 넘기면서 이 징계를 적용받았다. 그러나 그 후 실제 계약금을 낮추는 대신 꾸준히 이면 계약을 하는 ‘편법’을 써왔다. 계약금을 30만 달러 이하로 발표하고 ‘뒷돈’을 약속하는 방식이다. 2016년 유망주 케빈 마이탄을 영입하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로 이면 계약을 했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결국 애틀랜타의 국제 스카우트 선수를 대상으로 조사를 시작했다. 그 결과 이면 계약 사실이 발각됐다. 이미 사퇴한 존 코포넬라 전 단장은 영구제명 처분을 당했고, 앞으로 애틀랜타의 국외 아마추어 FA 계약금 한도는 2019년부터 2년간 1만 달러로 제한됐다. 2018년 신인드래프트 3라운드 지명권도 박탈당했다. 동시에 2015년부터 올해까지 계약한 유망주 12명이 FA로 풀렸다. 계약금이 30만 달러로 발표됐던 배지환 역시 같은 신세가 됐다. 애틀랜타와 계약이 무효화되면서 ‘해외파가 국내로 복귀할 시 2년 유예 기간을 둔다’는 규정에선 자유로워졌지만, 2차 1라운드 지명시 국내에서 누릴 수 있었던 여러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됐다. 다른 구단에 신고 선수로 입단할 경우 구단들 사이에 갈등이 불거질 가능성도 있다. 여러모로 배지환에게는 난감한 상황이다. 그의 ‘메이저리그 드림’은 시작도 하지 못한 채 표류했다.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