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왕자의 선택에 영국 왕실이 관대한 이유에 대해서는 다양한 추측이 나오고 있다. 우선 해리 왕자가 왕위를 계승할 확률이 낮다는 점, 그리고 이미 이혼 문제로 몇 번의 홍역을 치렀던 영국 왕실의 태도가 조금은 유연해졌다는 점 등을 이유로 꼽고 있다. 이유야 어떻든 모두의 축복 속에 웨딩마치를 울리게 된 해리 왕자 커플의 만남과 결혼, 그리고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 살펴본다.
11월 27일 영국 해리 왕자와 할리우드 여배우 메건 마클이 약혼을 발표했다. 런던 켄싱턴궁 정원에서 서로 보며 웃고 있는 모습. EPA/연합뉴스
“두 사람의 약혼 발표에 기쁨을 표하는 한편 행복을 기원한다.”
지난 11월 27일, 해리 왕자의 약혼 사실이 발표된 후 버킹엄궁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부부의 명의로 된 축하 성명을 공식 발표했다. 들리는 바에 따르면, 해리 왕자의 조모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비롯해 부친인 찰스 왕세자, 그리고 형인 윌리엄 왕자 모두 해리 왕자의 약혼녀인 마클을 따뜻하게 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마클과의 약혼 발표는 영국인들에게는 다소 놀라운 소식이었다. 둘이 교제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었지만, 과연 결혼을 할까는 반신반의했던 것. 이유는 바로 마클의 배경 때문이었다. 우선 영국인이 아닌 미국인이라는 점, 그리고 할리우드 배우 출신에 이혼녀라는 점도 그렇거니와 아프리카계 흑인 혼혈이라는 점도 종전의 영국 왕실의 신붓감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
이에 한편에서는 엘리자베스 여왕이 쉽게 결혼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이는 왕실 법령에 따른 우려이기도 했다. 1772년 제정된 ‘왕실결혼법령’에 따르면, 모든 왕실의 일원은 국왕이 허락하지 않는 결혼은 절대 할 수가 없다. 다만 이 법은 2013년 개정됐는데, 왕위계승서열 6위 안에 드는 경우에만 국왕의 허락을 받도록 하고 있다. 이 경우, 현재로서는 1순위인 찰스 왕세자부터 2순위인 윌리엄 왕자, 그리고 3, 4순위인 조지 왕자와 샬럿 공주, 그리고 5순위인 해리 왕자와 6순위인 앤드류 왕자까지 적용된다.
이에 따라 지난 2010년, 윌리엄 왕자 역시 케이트 미들턴에게 청혼하기 전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허락을 받아야 했고, 여왕의 ‘오케이’ 사인이 떨어진 후에 비로소 약혼을 발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리 왕자 역시 마찬가지였고, 여왕의 대답은 이번에도 ‘예스’였다.
사실 영국 왕실 배우자의 조건이라고 해서 딱히 규정되어 있는 것은 없다. 왕족이든, 귀족이든, 평민이든 출신 성분은 전혀 상관이 없다. 다만 종교만큼은 제한을 두고 있다. 배우자감이 유대인이든, 불교 신자이든, 무슬림이든, 심지어 무신론자이든 법적으로 제한은 두고 있지 않지만, 결혼한 후에는 영국 국교인 성공회로 개종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영국의 왕은 성공회의 일원이어야 한다’는 왕위계승법에 따른 것이다. 다시 말해 영국의 국왕은 동시에 성공회의 수장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가령 왕위계승서열의 직계 자손들이 가톨릭 교도와 결혼할 경우에도 왕위를 물려받을 수는 있지만, 본인이 가톨릭으로 개종할 경우에는 왕위에 오를 수 없다. 따라서 개신교인 마클 역시 결혼 후에는 성공회로 개종하는 절차를 밟을 예정이며, 동시에 영국 시민권도 취득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클의 배경이 영국 왕실에 걸림돌이 되지 않은 또 다른 이유는 해리 왕자의 왕위계승서열 때문이다. 조카들이 태어나면서 서열이 5위로 밀려난 데다, 내년에 셋째 조카까지 태어날 경우 순위는 6위로 더 밀려나게 된다. 때문에 어차피 왕위를 물려받을 가능성이 희박해진 해리 왕자가 누구와 결혼하든 부담이 적어졌다는 것이 왕실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혼녀라는 배경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는 까닭은 이미 왕실에서 몇몇 선례가 있기 때문이다. 우선 찰스 왕세자의 경우가 그렇다. 다이애나비와 결혼 15년 만에 이혼했던 찰스 왕세자는 다이애나비가 사망한 후 내연녀였던 카밀라 파커 볼스와 재혼했다. 볼스 역시 이혼녀긴 마찬가지였다. 또한 엘리자베스 여왕의 동생인 마가렛 공주 역시 이혼녀였다. 이혼남이었던 공군 대령인 피터 타운센드와 사랑에 빠졌던 마가렛 공주는 왕실의 반대에 부딪쳐 강제로 헤어져야 했다. 그후 스노든 백작을 만나 결혼했지만, 결국 이혼하고 말았다.
마클은 흑인 어머니와 백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어머니와 피부색이 달라 놀림을 당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한때 악동이자 바람둥이였던 해리 왕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마클은 어떤 여성일까. 캘리포니아주 LA 출신인 마클은 아프리카계 흑인인 어머니와 네덜란드계 아일랜드인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현재 요가 강사 겸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으며, 전직 방송국 조명감독이었던 아버지는 얼마 전 파산한 것으로 알려졌다. 둘은 마클이 6세 때 이혼했다.
어려서부터 어머니와 피부색이 달라서 놀림을 당했다고 말하는 마클은 주변에서 “정말 네 엄마가 맞냐?”라는 질문을 들을 때마다 상처가 됐다고 말했다. 흑인과 백인 사이에서 정체성 혼란을 겪으면서 자랐던 마클은 자신의 피부색이 너무 검지도, 너무 하얗지도 않은 까닭에 할리우드에서 자리잡기가 힘들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쇼프로그램인 <딜 오어 노 딜>의 쇼걸로 방송 활동을 시작했던 마클은 법정 드라마 <수츠>를 통해 얼굴을 알렸다. 2011년부터 총 시즌7까지 방영된 이 드라마에서 마클은 법률 보조원인 레이첼 제인 역을 맡았다. 해리 왕자는 <수츠>의 제인 역을 맡았던 마클을 보고 “내 이상형이다”라고 말하는 등 일찌감치 호감을 드러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마클은 봉사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특히 양성 평등 및 여권 신장 운동에 관심이 많으며, 이에 ‘유엔 여성 친선대사’로 활동하는 한편, 캐나다 ‘월드비전’ 및 ‘원 영 월드’ 홍보대사로도 활동했다. 또한 유기견 두 마리를 키우고 있는 동물 애호가이기도 하다. 그리고 바로 이런 점이 해리 왕자의 호감을 샀던 것으로도 알려졌다. 해리 왕자 역시 꾸준하게 자선단체 활동을 해오고 있었으며, 둘은 특히 아프리카 지역에서 구호 활동을 펼치는 데 열심이었다.
마클은 봉사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해리 왕자와 함께 아프리카에서 구호활동도 펼쳤다.
마클의 전 남편은 할리우드 영화 제작자인 트레버 엥겔슨(41)이었다. 둘은 2004년 처음 만나 6년 동안 사귀다가 2011년 결혼식을 올렸다. 당시 마클은 30세였다. 하지만 둘 사이는 오래 가지 못했다. 결혼 2년 만인 2013년 ‘극복할 수 없는 차이’로 갈라섰으며, 그후 마클은 <수츠>의 촬영 때문에 캐나다 토론토로 이주해서 생활했다. 이곳에서 마클은 해리 왕자를 만나기 전까지 캐나다의 유명 셰프인 코리 비티엘로와 2년 동안 교제했다.
마클이 해리 왕자를 처음 만난 것은 2016년 5월이었다. 상이군인과 참전용사들의 체육대회인 ‘인빅투스 게임’ 참석차 토론토를 방문했던 해리 왕자와 공식석상에서 자연히 만났던 것. <US위클리>는 당시 만남에 대해서 “그 자리에서 둘은 처음 만나긴 했지만, 단지 친구일 뿐이었다”고 말했다.
첫 만남 후 호감을 느꼈던 둘은 곧 서로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팔로잉하기 시작했다. 매일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으면서 애정을 확인한 후에는 런던과 토론토를 오가면서 데이트를 즐겼다. 본격적으로 만남이 시작된 것은 지난해 8월 말부터였으며, 둘 사이가 처음 언론을 통해 보도된 것은 10월 말경이었다. 그리고 “해리 왕자가 마클에게 흠뻑 빠졌다”는 보도와 함께 이미 찰스 왕세자에게 마클을 소개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둘 사이는 그야말로 급속도로 발전했다. 얼마 후에는 마클이 해리 왕자의 거처인 켄싱턴궁에서 머물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들려오는가 싶더니 형인 윌리엄 왕자와 만나 인사를 나누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둘 사이의 중요한 전환점은 2017년 3월 무렵에 찾아왔다. 당시 해리 왕자는 절친의 결혼식에 마클을 동행했으며, 그후에도 몇 차례 지인의 결혼식이 있을 때마다 마클과 함께 나타났다. 그런가 하면 공개장소에서 스스럼 없이 키스를 나누는 모습도 종종 포착됐다.
마침내 8월에는 스코틀랜드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는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정식으로 인사를 드렸으며, 청혼을 하기 직전인 10월 말, 다시 한 번 버킹엄궁에서 한 시간 동안 엘리자베스 여왕과 티타임을 가지면서 결혼 허락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둘의 결혼식은 내년 5월 윈저성 내에 있는 세인트 조지 성당에서 열릴 것으로 전해졌다. 모든 결혼식 비용은 왕실 측에서 부담하게 된다. 해리 왕자와 결혼함과 동시에 마클은 영국 왕실의 가족이 되며, 이에 따라 영국 시민권도 취득하게 된다. 다만 ‘정당하고 공식적인 절차를 밟게 될 것’이라는 왕실 측의 발표처럼 자동으로 시민권이 부여되지는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왕족이라고 해서 특혜는 없다는 것이다. 보통 시민과 같은 절차를 밟게 될 예정이며, 여기에 소요되는 기간은 3년 정도다. 그동안 마클은 미국 국적을 유지하게 된다.
사실 지금까지 외국인이 영국 왕실의 일원이 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마지막으로 영국 왕족과 결혼했던 미국인은 이혼녀였던 월리스 심슨이었다. 이런 까닭에 마클을 심슨 부인과 비교하는 사람도 많다. 두 차례 결혼에 실패했던 심슨은 당시 런던에서 열린 파티에서 왕세자 신분이었던 윈저공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윈저공은 왕위를 계승해 에드워드 8세가 된 후 심슨과 정식 결혼하려 했지만 영국인들과 왕실의 반대에 부딪쳐 곤란한 상태에 빠졌다. 왕관이냐, 사랑이냐 둘 가운데 선택을 해야 했기 때문. 결국 에드워드 8세는 사랑을 택했다. 왕관을 포기했던 에드워드 8세는 심슨 부인과 결혼했고, 그렇게 귀족 신분에 만족한 채 여생을 보냈다.
결혼 후 배우로서의 모든 활동을 접겠다고 선언한 마클은 현재 왕실 교육을 받으면서 결혼 준비에 여념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식 장소에서 말하는 법, 앉는 자세, 자동차에서 내리는 자세, 계단을 오르내리는 자세, 사람들에게 인사하는 방법 등 전반적인 예절 교육을 받고 있으며, 옷 입는 스타일과 헤어 스타일도 왕실의 지침에 따라 바꾸고 있다.
그럼 호칭은 어떻게 될까. 전통적으로 왕실 가족의 남자들은 결혼과 동시에 국왕으로부터 칭호를 부여받게 된다. 윌리엄 왕자의 경우에는 현재 ‘캠브리지 공작’이라는 칭호를 사용하고 있다. 해리 왕자의 경우에는 ‘서식스 공작’이 될 것이라는 의견이 가장 유력하다. 지금까지 영국 왕실에서 ‘서식스 공작’은 조지 3세 왕의 여섯째 아들이었던 아우구스투스 프레데릭 왕자 단 한 명뿐이었다. 이밖에 현재 비어있는 칭호로는 ‘클라렌스 공작’ ‘버킹엄 공작’ ‘콘노트 공작’ ‘윈저 공작’ ‘올버니 공작’ ‘컴벌랜드 앤 테비오트데일 공작’ 등이 있다.
이에 따라 마클의 공식 직함은 결혼 후 ‘서식스 공작 부인’이 될 예정이다. 다만 ‘공주’라는 호칭으로는 불리지 못한다. 왕위계승 전통에 따라 왕실 가족의 태생들만이 이름 앞에 ‘왕자’ 혹은 ‘공주’라는 칭호를 붙일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윌리엄 왕자, 해리 왕자라고는 부를 수 있지만 케이트 공주, 메건 공주라고는 부를 수 없는 것이다. 같은 이유로 고 다이애나비 역시 생전에 공식적으로는 ‘다이애나 공주’라고 불린 적이 없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약혼 반지도 화제! 마클 손에 다이애나 다이아 반짝 해리 왕자의 약혼 소식과 함께 해리 왕자가 피앙세인 마클에게 선물한 다이아몬드 약혼 반지도 함께 화제가 되고 있다. 해리 왕자가 6개월 동안 직접 디자인에 참여하면서 비밀리에 제작한 것으로 알려진 이 반지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공식 보석업체인 ‘클리브 앤 컴퍼니’사가 제작했다. 해리 왕자가 마클에게 선물한 다이아몬드 약혼 반지. 다이애나비의 유품이 포함돼 있다. 가운데에는 보츠와나산 원석인 다이아몬드가 자리하고 있으며, 양 옆에는 고 다이애나비의 소장품이었던 작은 크기의 다이아몬드 두 개가 세팅되어 있다. 다이애나비는 생전에 이 다이아몬드를 브로치로 착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보츠와나산 원석을 선택한 이유는 커플이 처음 함께 휴가를 보냈던 곳이자 해리 왕자가 어릴 때부터 자주 방문했던 나라였기 때문이다. 보석 전문가는 이 반지의 가격에 대해 “이 정도 크기에 이 정도 품질이라면 최소 5만 파운드(약 7300만 원)는 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하지만 다이애나비의 소장품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그 가치는 헤아릴 수 없다”고 덧붙였다. 다이애나비의 푸른색 사파이어 약혼 반지. 윌리엄 왕자는 이 반지를 케이트에게 약혼 반지로 선물했다. 사실 영국 왕실의 약혼 반지들은 늘 화제의 중심에 섰었다. 다이애나비가 착용했던 푸른색 사파이어 반지가 가장 대표적인 예다. 다이애나비를 상징하는 것으로 유명했던 이 반지는 열네 개의 다이아몬드에 둘러싸여 있는 12캐럿의 사파이어가 특히 인상적이며, 링은 18k 백금이다. 이 반지는 2010년 윌리엄 왕자가 케이트에게 약혼반지로 선물했다. 앤드류 왕자의 전 부인인 사라 퍼거슨(요크 공작 부인)의 약혼 반지는 그녀의 빨강 머리를 닮은 붉은 빛의 버마산 루비 반지였다. 루비 주변에는 열 개의 다이아몬드가 장식되어 있다. 둘은 1996년 이혼했다. 2005년 찰스 왕세자와 재혼한 카밀라 파커 볼스(콘월 공작 부인)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모후의 소장품이었던 보석을 이용해서 제작한 다이아몬드 반지를 착용하고 있다. 플래티넘 링에 스퀘어 다이아몬드가 세팅되어 있으며, 양 옆에는 작은 보석이 박혀 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약혼 반지는 전통에 따라 남편인 필립공 모친의 왕관에 박혀있던 보석으로 제작되었다. 가운데에는 3캐럿 짜리 다이아몬드가 있고, 그 주위에 다섯 개의 작은 보석들이 세팅되어 있다. [주] |
다이애나비 보석들은 어디에? ‘스펜서 티아라’는 스펜서 가문으로 생전에 화려하고 아름다운 보석을 많이 소장했던 다이애나비의 보석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다이애나비가 세상을 떠나면서 그녀의 2100만 파운드(약 307억 원)의 재산 가운데 4분의 3은 두 아들인 윌리엄 왕자와 해리 왕자에게 상속됐고, 나머지 4분의 1은 열일곱 명의 대자녀들에게 골고루 배분됐다. 보석 소장품의 경우에는 생전에 작성한 유언장에 따라 미래의 며느리들에게 물려주도록 되어 있었다. 이 유언장에는 “내 모든 보석들은 아들에게 물려주어서 그 며느리들이 소유하고, 사용하도록 한다”라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모든 보석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생전에 그녀가 소장했던 보석들 가운데 일부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재산에 귀속됐으며, 또 일부는 경매를 통해 판매되기도 했다. 다이애나비가 결혼식 때 착용한 ‘스펜서 티아라’(왼쪽)와 사망 직전 공식석상에서 착용했던 목걸이 ‘백조의 호수 세트’. 다이애나비가 결혼식 때 착용했던 가장 유명한 보석 가운데 하나인 ‘스펜서 티아라’의 경우에는 현재 다이애나비의 동생인 얼 스펜서가 소장하고 있다. 이 왕관은 1세기 동안 스펜서 가문의 소장품이었으며, 따라서 다이애나비가 사망함과 동시에 스펜서 가문으로 다시 귀속됐다. 다이애나비의 상징과도 같은 이 왕관은 현재 아무도 사용하지 않은 채 보관되어 있다. 반면, 생전에 다이애나비가 아꼈던 것으로 알려진 ‘캠브리지 러버스 넛 티아라’는 엘리자베스 여왕이 결혼 선물로 대여해줬던 것이었다. 따라서 사망 후 다시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귀속됐으며, 현재 케이트 왕세손비가 간간히 착용하고 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모후로부터 선물받았던 사파이어 브로치는 원래는 브로치였지만 훗날 여러 줄이 달린 진주 목걸이로 다시 세팅해서 착용했다. 찰스 왕세자와 이혼한 후에도 즐겨 착용했을 정도로 애정이 많았으며, 사망 후에는 아들들에게 상속됐다. 해리 왕자가 약혼 반지에 사용했던 다이아몬드가 바로 이 목걸이의 보석이었다. ‘백조의 호수 세트’는 사망 직전 공식석상에서 마지막으로 착용했던 목걸이었다. 다이아몬드 78개와 진주 5개로 이뤄져 있으며, 사망 후 경매를 통해 팔렸다. 올해 초 다시 경매에 나왔을 때 낙찰가는 960만 파운드(약 140억 4000만 원)였다. 사파이어 주얼리 세트인 ‘사우디 스위트’는 결혼 당시 사우디아라비아의 파하드 왕세자로부터 선물 받은 귀금속이었다. 시계, 귀걸이, 팔찌, 반지, 다이아몬드 목걸이가 한 세트이며, 이 가운데 귀걸이는 윌리엄 왕자가 약혼 후 케이트 왕세손비에게 선물한 것으로 알려졌다. 메리 여왕의 소장품이었던 에메랄드 초커 역시 다이애나비가 즐겨 착용했던 보석 가운데 하나였다. 목걸이 혹은 머리띠로 착용했으며, 사망 후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돌아갔다. [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