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호선 서울대입구역에서 일어난 단전 사고가 문제였습니다. 동력장치 고장으로 전기가 끊어지면서 열차가 늦어졌습니다. 승객들이 느낀 체감도는 상당했습니다. 열차가 거북이걸음을 반복하면서 지연시간이 훨씬 늘어난 것입니다. 월요병으로 아침을 시작한 직장인들이 진정한 ‘지옥철’을 경험한 것이지요.
블랙아웃(blackout). 전기가 부족해 갑자기 모든 전력 시스템이 정지한 상태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지하철 2호선의 단전 사고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2014년 11월경 구의역에서도 지하철이 멈췄고 불과 4개월 전에도 낙성대-선릉역 사이에서도 단전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지하철 2호선에서 단전 사고가 자주 일어나는 이유가 뭘까요? 왜, 우리는 2호선을 탈 때마다 “전력 공급이 잠시 끊겼습니다”라는 방송을 밥 먹듯이 들어야 할까요? <일요신문i>는 시청․홍대입구․왕십리역 등 2호선의 매머드급 환승역으로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이 ‘뒷목’을 잡는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2호선 블랙아웃’의 비밀을 파헤친 까닭입니다.
27일 오전 8시 15분경, 2호선 서울대입구역 승강장에서 승객들의 아우성이 들렸습니다. 동력장치 고장으로 전기가 끊어지면서 신림역에서 사당역 방향으로 향하던 2호선 상행 열차가 단전으로 운행을 중단한 것입니다. 서울교통공사 측은 대림역에서 서초역 구간의 열차 운행을 전면 중단했습니다.
인스타그램 화면 캡처
8시 24분, 동력장치 복구로 열차 운행이 재개됐지만 출근길 직장인들은 극심한 불편함을 겪어야 했습니다. 인터넷 커뮤니티와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는 지하철 2호선 ‘출근대란’ 인증글과 항의가 쏟아졌습니다.
인스타그램의 한 회원은 이날 승객이 운집한 사진과 함께 “10시까지 가야 하는데 답이 없다. 월요일인데 헬요일이다. 이런 X친”이라는 내용의 게시글을 올렸습니다. 다른 회원들은 “2호선이 아침부터 또 말썽이다. 본사를 가야하는데 갈 수 있을까”라는 댓글을 달았습니다.
페이스북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승강장에 몰린 승객들의 모습이 보이시나요?
페이스북 캡처
그렇다면 사고 원인은 무엇일까요?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변전소에 이상이 생겼습니다. 전력이 들어오는 계통에 문제가 생겨서 전차선 ‘단전’이 일어났습니다. 전동차 동력 장치의 이상으로 운행이 정지됐습니다”라고 전했습니다.
전차선? 변전소? 갑자기 쏟아진 키워드의 정체는 뭘까요? 지하철 운행방식을 이해하면 쉽습니다. 한국전력이 송전한 전기는 변전소를 거쳐 각 역의 변전실로 갑니다. 전기는 철도 위의 가설된 전차선을 타고 열차 상단에 있는 ‘팬터그래프(집전장치)’로 흘러들어갑니다.
지하철 2호선 팬터그래프. 최준필 기자
마름모 모양의 집전장치가 보이시나요? 팬터그래프를 통해 전기가 전동차로 흐르면서 운행을 하는 방식입니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교통공사 기관사는 “한전에서 전기를 받아 우리가 쓸 만큼 전기를 만들어냅니다. 그래서 전차선에 공급하고 그 전기를 전동차가 받아서 쓰는 것입니다, 이번 경우는 낙성대 변전실에서 전기를 공급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고 전했습니다. 변전실에서 전기가 ‘툭’하고 끊기면서 ‘2호선 출근대란’이 일어난 것입니다.
윤관석 의원실 자료
2호선은 서울 지하철 중에서도 단연 골칫덩이입니다. 윤관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최근 공개한 ‘연도별 운행장애 및 철도사고 발생건수 현황’ 자료에 따르면 2호선은 운행 장애로 6건, 철도 사고 11건을 기록했습니다. 다른 호선에 비해 압도적인 수치입니다.
특히 지하철 2호선 단전사고는 전통(?)적으로 승객들의 출근길과 퇴근길을 괴롭혀온 원인입니다. “열차의 전원이 끊기어”라는 방송 멘트를 기억하시나요?
그렇다면 지하철 2호선은 왜 항상, 아침시간, 지각을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시간에, 전기가 ‘뻥’하고 나가버리는 것일까요?
첫 번째 원인은 ‘엄청난 승객수’입니다. 서울시는 지난해 교통카드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2호선의 하루 평균 이용객은 227만 1000명(28.4%)이었습니다. 다른 노선에 비해 가장 많은 승객이 이용한 지하철이었습니다.
승차인원뿐 아니라 환승역이 모든 환승역(51개)의 절반에 가까운 23개나 있습니다. 출퇴근 시간대인 오전 7~9시 사이에 2호선에 승객들이 붐비는 까닭입니다.
많은 승객을 태워야 하는 2호선은 배차간격이 정말 짧습니다. 2호선 승강장에 있는 전광판에 2호선 차량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모습을 기억하시나요? 2~3분 간격으로 지하철이 줄지어 다니곤 합니다.
서울교통공사의 다른 기관사는 “간격은 다 똑같은데 2호선은 전동차들이 쭉 밀려있는 상황이 반복됩니다. 승강장을 조금이라도 늦게 닫아서 조금이라도 밀리면, ‘단전’ 우려가 커집니다. 전동차가 집중적으로 몰려있기 때문에 부하가 한 번에 몰립니다. 전기 용량이 초과되면서 열차나 변전실에서 자동으로 전기가 끊기는 것입니다”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수많은 차량이 좁은 구간에 몰리면서 ‘단전’ 현상이 나타나는 셈입니다.
지하철 2호선 전광판(좌)와 시간표. 최준필 기자
두 번째 원인은 ‘순환선’입니다. 출퇴근시간대 2호선(을지로순환선)은 서울 중심부의 주요 구간을 순환해서 달려왔습니다. 종착역이 없기 때문에 2호선은 전기를 많이 씁니다. 게다가 세계에서 네 번째로 긴 순환선(48.8km)을 쉬지 않고 운행해왔습니다.
서울지하철 노동조합 관계자는 “전동차는 과전류가 흐르면 보호 기능이 작동합니다. 기기를 보호하기 위해 차단합니다. 전동차가 가면서 브레이크를 밟으면, ‘회생제동’ 기능 때문에 전기가 쭉 올라가면서 과부하가 걸립니다. 한 구간에 여러 대가 있으면 전기가 차단됩니다”고 설명헀습니다.
2호선 지하철 노선도 캡처
앞서의 기관사도 “쉬는 열차가 다른 호선에 비해 많이 없습니다. 계속 달리지죠. 부하분담이 돼야 하는데 특히 출퇴근 시간대에 승객들이 한꺼번에 몰리면 단전이 일어납니다. 2호선만의 독특한 현상입니다. 특히 월요일에 심합니다. 눈이나 비가 올 때 사고가 많이 생겨요”라고 밝혔습니다.
윤관석 의원실 자료
‘노후화’는 2호선이 ‘지옥철’로 불리는 네 번째 원인입니다. 윤관석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지하철 2호선(834량)의 평균 사용연수는 19.3년입니다. 2호선의 경우 운행 25년을 넘긴 전동차가 무려 17%에 달한다고 알려졌습니다. ‘노쇠한’ 열차의 기능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 아닐까요?
2호선 개통일은 1984년 5월 22일. 1974년 8월 15일에 개통된 1호선에 이어 가장 오래된 지하철입니다.
서울교통공사의 또 다른 기관사는 “열차 시설 노후화가 우려할 만한 수준으로 진행됐습니다. 1~8호선 통틀어서 가장 승객이 많은 호선인데다 낡은 전동차가 많습니다”고 밝혔습니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노후화가 되면서 나는 고장이 가장 골치가 아파요. 부품 수급이 어렵습니다”고 귀띔했습니다.
열차가 오래됐으면 교체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서울시민들의 2호선에서 겪는 ‘블랙아웃’현상도 사라집니다.
서울시도 2022년까지 최근 2·3호선 노후전동차 610량을 전면 교체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교체의 ‘골든타임’을 이미 지나갔습니다. 열차 내구연한의 ‘폐지’로 오래된 열차들은 여전히 운행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애초 열차의 내구연한은 15년이었습니다. 1996년 도시철도법이 개정되면서 25년으로 늘렸고 2009년 도시철도법 개정 당시 다시 40년으로 연장됐습니다. 2014년도 3월부터 시행된 개정 도시철도법에선 내구연한 관련 규정 자체가 사라졌습니다.
‘경제성’의 가치가 승객들의 ‘안전’을 침해한 것이지요. 서울지하철노조 관계자는 “내구연한이 이명박 정부 들어서 훨씬 늘어났고 박근혜 정부 시절에 내구연한 기준을 폐기했습니다. 이제는 운영자가 자체적으로 점검 후에 판단합니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른 관계자 역시 “마치 선박의 내구연한을 계속 늘린 것처럼, 이명박 정부가 경제성만을 따져서 열차의 내구연한을 대폭 늘렸습니다. 전동차도, 변전소, 전차선도 노후화됐는데 교체시기를 놓쳤습니다”고 밝혔습니다.
윤관석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1~4호선의 변절 설비는 시설량의 절반이 내구연한을 넘겼고, 케이블도 노후도가 69.5%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전기가 변전소, 전차선, 전동차로 흐르면서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지하철 2호선 차량 모습. 최준필 기자
다섯 번째 원인은 독특합니다. 2호선은 다른 호선에 비해 투입차량의 종류가 많습니다. 열차는 제어 방식에 따라 저항차, 초퍼(Chopper)차, 인버터제어전동차(VVVF)로 나뉩니다. 2호선에는 초퍼차,저항차,인버터제어전동차가 한꺼번에 몰려있습니다.
서울지하철노조 관계자는 “저항차는 공기로 브레이크를 잡습니다. 초퍼차는 역전류를 이용해 회생제동을 하는 방식이에요. 인버터제어차는 제동방식이 또 다릅니다. 기관사 입장에서는 스크린도어에 맞추기도 힘들뿐더러 조작이 까다롭습니다. 전압과 전류의 세기가 차이가 있기 때문에 여차하면 ‘단전’이 생길 수 있어요”라고 설명했습니다.
‘단전사고’는 대형 참사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 당일인 2월 18일 오전 9시55분경, 화재가 발생한 즉시 지하철의 전원이 끊겼습니다.
화재 직후 중앙로역에 진입한 전동차는 사면초가 상태에 놓였고, 결국 역 건물 조명이 모두 꺼졌습니다. ‘암흑천지’의 상황 때문에 대구 지하철 희생자는 더욱 늘었습니다.
도대체 언제까지, 우리는 ‘단전’ 사고가 습관처럼 반복되는 지하철 2호선을 타야 할까요? 조속한 조치가 필요해 보입니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
전철남-지하철은 우리 생활에 있어서 가장 친숙한 교통수단입니다. 시민들의 발이지요. 하지만 친숙한만큼 각종 사고와 사건, 민원들이 끊이지 않기도 합니다. <일요신문i>는 자칭 지하철 덕후 기자의 발을 빌어 그동안 궁금했던 지하철의 모든 것을 낱낱히 풀어드립니다. ‘전철남’의 연재는 계속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