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내대표는 지방선거 공천과정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홍 대표 입장에서는 자칫 자신과 ‘각을 세우는’ 원내대표가 등장할 경우, 낭패를 볼 수도 있다. 더욱이 ‘홍 대표가 밀고 있다’는 소문이 나도는 후보까지 존재하는 상황이어서 이 후보가 떨어진다면 홍 대표는 대표로서의 자격 유지가 어려울 수 있다는 목소리도 커지는 분위기다.
홍 대표와 대립했던 친박계 의원들은 이번 원내대표 선거에 사활을 거는 중이다. 향후 유리한 행보를 위해 친박 외에 다른 세력을 규합, ‘적합 인물 고르기’에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이른바 반홍 연대가 결집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와중에서 당내에서는 큰 파열음도 나오고 있다. 원내대표 선거전이 아니라 쟁탈전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박은숙 기자
# 친홍 vs 반홍 구도
당초 새 원내대표 선거에 대한 얘기가 처음 나올 때만 해도 선거구도는 간단했다. 일찌감치 출마 의사를 밝혔던 홍문종 의원이 친박계 지원을 등에 업고 무난한 당선이 예상됐다. 하지만 바른정당 의원들의 대거 복당이 이뤄진 이후 이들의 지원사격에다 홍준표 대표가 직접 민다는 소문까지 업은 김성태 의원이 다크호스로 등장, 원내대표 선거는 양강 대결로 변했다.
그런데 양강 구도 예측도 오래가지 못했다. 이주영 나경원 조경태 한선교 의원 등 당내 다선 의원들 여럿이 출마 의사를 내비치자 선거 구도가 고차 방정식으로 변한 것이다. 상수는 줄어들고 변수가 늘었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친홍 대 반홍의 세력대결로 압축된다. 10월 28일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출마선언을 한 4선 한선교 의원은 이날 홍준표 대표에 대해 ‘맹비난’을 했다. 반홍 깃발 아래 결집하자는 뜻을 내비친 그는 이번 원내대표 선거가 친홍과 반홍의 대결이 될 것임을 분명히 했다.
한 의원은 “대표 출마의 첫 번째 결의는 홍준표 대표 사당화를 막기 위한 것이다. 홍 대표 언사가 도를 넘은 지 오래됐다. ‘바퀴벌레’로 시작해 이제는 ‘암 덩어리’, 나아가 ‘고름’이란 막말까지 나오고 있다. 어제 저녁 식사 도중 텔레비전에 나오는 홍 대표의 ‘고름’이란 말을 듣고 체하고 말아서 더 이상 식사는 할 수가 없었다”며 홍 대표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홍 대표도 즉각 응수했다. 그는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박근혜 사당화 7년 동안 아무런 말도 못하더니만 홍준표 5개월을 사당화 운운하는 사람들을 보니 참으로 가관”이라며 “당이 수렁에 빠질 때는 숨어 있다가 수렁에서 건져내니 이제 나타나 원내대표에 출마하면서 당 대표를 욕하면 의원들로부터 표를 얻을 수 있는가”라고 쏘아붙였다. 이어 그는 “(원내대표 경선은) 탤런트 경연대회가 아니다. (새 원내대표는) 좌파에 맞서 보수우파를 재건하는 데 당 대표를 도와 같이 투쟁해야 할 원내대표”라고 주장했다.
당내 주류라 할 수 있는 대구·경북(TK)의 한 의원은 “쉽게 정리하면 친홍과 반홍의 싸움이다. 홍 대표가 당 운영을 너무 독선적으로 하고 있다. 보수의 상징인 ‘품격’이라는 단어를, 막말을 해대는 홍 대표에게서는 도무지 찾아볼 수 없다. 이런 이유로 반홍 세력이 비홍까지 규합, 큰 세력을 형성 중“이라고 했다.
# 안갯속 지나 깜깜이 판세로
반홍 의원들은 계파색이 옅은 인물을 원내대표 후보로 세워야 한다는 의견이 강한 것으로 전해졌다. 친박 색채가 짙은 인물로는 역공을 당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때문에 최근 주목받는 인물이 한 명 생겼다. 반홍 쪽에 가깝지만 비홍이라 볼 수 있으며 명확하게 친박이라고도 보기 힘든 계파색 옅은 5선의 이주영 의원이다.
홍준표 대표도 이 의원 쪽으로 반홍 세력이 결집했다는 판단을 세운 듯 최근 이 의원에 대해 뜬금없는 ‘공격성 발언’을 내놨다. 홍 대표는 11월 28일 과거 자신의 이름을 개명한 것과 관련해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원내대표 선거를 앞두고 어느 분이 자기가 내 이름을 개명해주었다고 얘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은 처사다. 내 개명 절차에 대해서 하도 헛소문이 많아 해명한다. 청주지검 초임검사 때 청주지법원장을 하시던 윤영오 법원장님이 개명을 하라고 하셨다”며 자신의 개명을 둘러싸고 나오는 말에 대해 명확하게 불쾌감을 나타냈다.
오래전부터 이주영 의원이 홍 대표에게 개명을 권유한 것으로 정치권에서는 알려져 있었다. 홍 대표가 청주지검 초임검사 시절 청주지법 형사단독판사로 근무하던 이 의원이 ‘홍판표였던 홍 대표의 이름을 준표로 개명할 것을 권유했다’는 내용이었다. 평소 다른 의원에 대한 공격성 발언을 거의 하지 않는 이 의원도 이례적으로 자신을 부정적으로 언급한 홍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 의원은 11월 29일 페이스북을 통해 최근 홍준표 대표와의 사이에서 논란이 된 개명 문제에 대해 “나하고 진실공방이라도 벌이자는 것인가. 개인적인 내용을 공개적으로 밝히면서 나를 거짓말쟁이로 만들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는가”라며 따졌다. 이어 그는 “원내대표 경선에 자기 사람을 심기 위한 견제용인가. 대표의 이런 가벼운 처신이 당의 품격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라며 발끈했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이 의원이 친박 의원 등 반홍 세력을 규합해 원내대표로 나서려는 뜻을 굳힌 것으로 받아들인다.
홍 대표 측은 이번 원내대표 선거전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시도를 극도로 경계한다. 친홍 대 반홍의 구도로 선거전이 진행된다면 홍 대표에게 유리한 대목이 하나도 없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홍 대표가 “야당 체질이다. 투쟁력이 있다”고 여러 차례 칭찬한 김성태 의원이 원내대표 선거에서 패한다면 홍 대표는 치유불가의 내상을 입을 수 있다.
홍 대표 측은 친홍 대 반홍의 선거 구도가 없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는 동시에 자유한국당을 이 지경으로 만든 친박 청산의 기회가 바로 이번 원내대표 경선이라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친홍 대 반홍이 아니라 친박 청산을 위해 비박이 결집해야 한다는 얘기다.
홍 대표 측근인 강효상 의원은 “그동안 당이 키워온 중진 의원들이 원내대표 당선을 위해 당내 다수인 친박계의 표를 구걸하는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참으로 참담한 일이다. 원내대표를 유지하려는 친박·진박들의 부추김에 부화뇌동하며 눈앞 이익에만 급급한 일부 후보들과, 지난 4·13 총선 때 대통령을 등에 업고 총선을 망쳐놓고도 아무런 반성 없이 아직도 당권을 유지하려는 진박의 결탁에 분노를 느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강 의원은 “도대체 당내에 ‘친홍파’가 어디 있는가. 지금 홍 대표 주위에는 공식적인 당직자뿐이다. 자유한국당에서 수십 명의 의원을 거느린 계파는 친박이 유일하다”며 친홍의 존재를 전면 부인하면서 친박의 계파주의를 비판했다.
홍 대표 측은 친홍 대 반홍 구도는 없다는 인식을 제대로 심어준 상황에서 선거를 치른다면 최근 크게 늘어난 비박이 김성태 의원에게 표를 줘 승산이 충분히 있다는 분석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복당파인 김 의원에 대한 시선이 아직 따뜻하지 않다는 측면에서 비박이 김 의원에게로 결집한다는 논리가 맞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안갯속에다 ‘깜깜이 선거’가 됐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단일화 여부 최대 변수
여러 명의 후보가 나올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단일화 여부도 하나의 변수가 될 것이란 분석이 있다. 현재 친박도, 친홍도 아닌 ‘독립국’으로 거론되는 후보 중 한선교 의원은 단일화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반면, 이주영 나경원 조경태 의원이 단일화에 적극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나 의원은 12월 1일 오전 이주영 조경태 의원과 회동한 뒤 불출마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들 독립국 후보들 간 단일화가 이뤄진다면 의외의 결과도 예상된다. 독립국 후보가 결선투표까지 올라간 뒤 당내 신 패권주의라며 친홍을 비판하고, 당의 몰락을 가져온 근본 원인으로 친박을 지목한다면 승산이 있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독립국 후보가 친박 등 특정 계파의 응원을 얻지 않는 한 일사불란한 표 결집이 어려울 것이라는 얘기도 적지 않다.
자유한국당 한 현역의원은 “지금 후보로 거론되는 사람이 너무 많아 누군가 양보를 얻어내기 위한 설득 시간이 물리적으로 부족할 것이다. 단일화는 쉽지 않다”며 “친홍 반홍 구도는 일단 이번 선거의 바닥 구조를 형성한 것 같고 여기에 덧붙여 러닝메이트인 정책위의장 후보가 누구냐, 또 투표하는 날 얼마나 현장 표심을 휘어잡느냐 등이 마지막 변수가 될 것”이라고 했다. 마지막까지 대접전이 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더욱이 이번 선거에서 각 후보들로부터 정책위 의장을 해달라는 요구를 받고 있는 의원들의 고사가 많아 선거판의 가시거리를 더욱 짧게 만들고 있다. 한 전직 의원은 “내가 현역의원일 때도 그랬지만 우리나라 정당은 보스가 찍는 대로 표를 몰아줬다. 자유한국당도 마찬가지고, 지금 여당도 그랬다. 과거 원내대표 경선에서 모든 의원들이 보스가 얘기한 후보를 찍기 위해 마음을 정하고 투표장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박근혜 전 대통령이 몰락한 지금, 자유한국당에 이제 보스가 없다. 이번 선거에서는 투표 당일 날 마음을 정하지 못한 의원들의 표심을 휘어잡을 현장 목소리를 제대로 내는 후보가 당선의 기쁨을 누릴 것”이라고 예측했다.
최경철 매일신문 서울 정경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