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 이유없이 길을 가던 40대 보험설계사를 집단 폭행한 16세 청소년 (위부터) 마이크 B, 이반 Z, 벤지 D | ||
라팅엔에서 보험설계사로 일하고 있던 볼프강 O(46)는 뮌헨으로 출장을 왔던 그날 밤의 일을 아직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악몽과도 같았던 그 사건은 지난 6월 30일 밤 11시 30분경 벌어졌다.
당시 그는 뮌헨 지사의 직원들과 함께 저녁을 먹은 후 홀로 인적이 드문 밤길을 따라 호텔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길을 걷고 있는데 갑자기 눈앞이 번쩍하는가 싶더니 뒤통수에 극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는 바닥에 힘없이 쓰러졌고 다시 일어설 틈도 없이 이어지는 발길질과 주먹질로 얼굴 전체가 피투성이가 됐다.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저항 같은 것은 꿈도 꾸지 못했다. 그렇게 서너 명의 남성들에 둘러싸여 집단 폭행을 당했던 그는 이내 곧 의식을 잃고 말았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현재 볼프강의 상태는 매우 심각하다. 광대뼈와 턱은 골절되었으며 안와골절(눈을 둘러싼 뼈)로 한쪽 눈은 실명되었다. 피투성이로 완전히 함몰된 얼굴은 앞으로 여러 차례에 걸친 수술을 받아야 하지만 원래의 상태로 돌아오는 것은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얼굴이 함몰되어 말을 못하고 있는 그는 앞으로 평생 얼굴이 일그러진 채 살아야 할 처지에 놓였다.
그를 이렇게 죽기 직전까지 두들겨 팬 잔인한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놀랍게도 범인들은 스위스에서 졸업여행을 온 10대 청소년들이었다. 목격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인근 유스호스텔에서 경찰에 의해 체포된 이들은 마이크 B(16), 벤지 D(16), 이반 Z(16) 등 세 명의 학생들이었다. 취리히 인근의 퀴스나흐트 출신인 이들은 현재 살인미수죄로 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하지만 범죄 사실보다 더 놀라웠던 것은 이들의 태도에 있었다. 체포 당시 태연하게 유스호스텔에 앉아 TV를 보고 있었던 이들에게서 죄책감 같은 것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자신들의 행동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듯했으며, 왜 사람들을 폭행했냐는 질문에도 “그저 재미 삼아 그랬다. 사람들을 발길질하거나 때리고 싶었다”라고 뻔뻔스럽게 대답했다.
▲ (왼쪽)스벤 P , 크리스티안 W | ||
이들의 범죄 행각은 유스호스텔로 돌아와서도 계속됐다. 당시 복도에서 마주친 불가리아 출신의 한 남자 대학생을 눈에 거슬린다며 집단으로 폭행한 것이다. 현재 이 피해자는 얼굴과 목이 심하게 부풀어 올라 병원 치료를 받고 있다.
현재 독일에서는 이처럼 권총이나 칼 등의 무기 없이 주먹질과 발길질로 무차별 폭행을 가하는 일명 ‘무기 없는 살인’ 행위가 급증하고 있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2년 전 뮌헨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벌어진 폭력 사건도 비슷한 양상을 띤 청소년 범죄였다. 19세 청년 두 명이 가구업자인 미하엘 R의 얼굴을 아무 이유 없이 두들겨 팼던 것이다. 이때의 폭행으로 미하엘은 위턱이 심하게 골절됐으며, 한동안 음식물도 씹지 못한 채 유동식으로 버텨야 했다. 2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두통에 시달리고 있는가 하면 칫솔질을 하는 것도 여전히 고통스럽기만 하다.
또한 지난 5월 초에는 노이루핀에 사는 스벤 P(19)와 크리스티안 W(19)라는 이름의 청년들이 한 중년 남성(55)의 머리와 얼굴을 짓밟아서 결국 목숨을 잃게 한 사건도 벌어졌다. 스벤은 이 남성의 얼굴 형태가 없어질 때까지 계속해서 발로 밟거나 주먹으로 때렸으며,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크리스티안에게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나 보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그는 살인죄로 징역 10년을 선고받은 상태다.
이밖에도 머리와 얼굴을 집중적으로 구타해서 사망에 이르게 하는 이런 잔혹한 범죄는 여러 건 더 있었다. 프랑켄베르크에서 바닥에 쓰러져 있던 20대 청년의 머리 위로 뛰어 내리는 잔인한 범행을 저질렀던 파트릭 C(19)는 징역 11년형에 처해졌다. 당시 그는 호기심으로 지켜보고 있던 두 명의 여학생에게 “제대로 보여 주겠다”며 호기를 부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달리 이웃집 여성을 아무 이유 없이 폭행한 후 살해한 사건도 있었다. 비베라흐에 거주하던 플로림 S(15)의 취미는 스쿠터 타기였다. 스쿠터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그는 스쿠터를 관리하거나 꾸미는 데 적지 않은 돈을 썼고 결국 주변 친구들에게 돈을 빌리기 시작했던 그는 이내 빚더미에 앉고 말았다.
사정이 급해지자 그가 생각해낸 것은 도둑질이었다. 마침 이웃에 사는 다니엘라 K(26)라는 미혼모 여성이 LCD TV를 새로 구입했다는 소식을 접한 그는 TV를 훔쳐 목돈을 마련하기로 작정했다. 평소 가깝게 지냈던 친구인 마틴과 함께 며칠 동안 범행 계획을 짰던 그는 지난 4월 마침내 범행을 실천에 옮겼다. 마틴과 함께 복면을 쓰고 몰래 이웃집 베란다 창문을 통해 집안으로 숨어 들어간 그는 준비해간 쇠파이프로 무장까지 한 상태였다.
집안에서 다니엘라와 마주친 그는 주저하는 기색 없이 쇠파이프로 그녀를 내리쳤으며, 다니엘라는 미처 저항할 틈도 없이 그대로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는 접착테이프로 다니엘라의 팔과 다리를 묶었으며 입에는 재갈을 물렸다. 옆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마틴은 뒤늦게 ‘너무 심하다’는 생각에 밖으로 나왔고, 홀로 남은 플로림은 조용하고 침착하게 쇠파이프로 일을 마무리 지었다. 시체를 지하실에 버리고 태연하게 집을 나섰던 그는 당초 계획과는 달리 TV는 훔치지 않은 채 그대로 두었다.
▲ 이웃집 여성을 폭행 살해한 플로림S가 사건 장소에 파놓은 구덩이 | ||
곧 경찰에 의해 체포됐던 플로림은 뉘우치는 기색은커녕 오히려 또박또박 사건 전말에 대해서 설명을 해서 주변 사람들을 경악하게 했다. 왜 그랬냐는 질문에 “아무 이유도 없다”고 말했으며, 처음 생각과 달리 물건을 훔칠 생각도 사라졌고 이웃에 대한 증오나 원망 같은 것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상한 것은 다니엘라 집 베란다 아래에 있는 정원에 왜 구덩이를 파놓았느냐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그는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고 있어 궁금증만 증폭되고 있는 상태다. 일부에서는 혹시 시체를 묻으려 했던 것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지만 정확히 확인된 바는 없다.
그렇다면 독일에서는 왜 이와 같은 청소년들의 묻지마 범죄가 늘고 있는 걸까. 이들은 어떻게 살인을 저지르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채 잔인하고 냉정할 수 있는 걸까. 이에 대해 다양한 방면에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갓난아기 혹은 유년 시절 겪는 심리적, 정신적인 영향이 크다고 말한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특히 어려서 어떤 경험을 했느냐가 가장 중요한데 부모의 폭력이나 욕설, 무관심이 아이들을 폭력적인 성향으로 이끄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아헨의 티모 플로엣 아동정신과 및 뇌 연구가는 “이런 부정적인 경험은 어린 아이들의 뇌에 일종의 흔적을 남긴다. 이런 흔적들이 계속 쌓이면 세월이 지날수록 더욱 깊어지고 결국 지울 수 없게 된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만들어낸 산 속의 오솔길과 같은 이치라는 것이다.
맞벌이나 결손가정이 늘어나면서 바빠진 부모들이 집에서 아이들을 돌볼 시간이 줄어들자 자연히 자녀들과 감정을 교환하는 일이 적어졌다는 것도 문제다. 자신의 감정에 스스로 어떻게 대응할지 모르게 된 아이들은 타인에 대한 ‘동정심’이란 감정을 느끼지 못하게 되고 결국 냉정하고 무뚝뚝한 아이로 자라게 된다는 것이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갓난아기 때부터 부모와 감정 교환을 많이 하는 것, 이를테면 아이가 화를 내거나 웃으면 부모가 이에 알맞은 반응을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한편 이렇게 감정적으로 동정심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은 육체적으로도 냉정하다는 연구결과도 있었다. 피실험자들에게 피를 흘리는 사고 피해자, 고통스러워하는 어린이, 상처 입은 고양이 등의 사진을 보여주고 뇌를 비롯한 심장 박동수, 피부 저항력 등을 측정한 결과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이 사진을 본 폭력적인 성향의 청소년들의 뇌에서는 거의 아무런 반응도 일어나지 않았을뿐더러 심장박동에도 변화가 거의 없었다.
이처럼 공포심이나 불안감과 같은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은 보통 강력한 흥분을 원하며, 마약과 같은 성분의 약물을 통해서만 ‘감정’의 변화를 느낀다. 이들이 폭력적인 성향을 보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청소년들의 묻지마 범죄가 급증하자 현재 독일인들 사이에서는 밤거리를 조심하고 일찍 귀가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언제 어디서 갑자기 비명횡사 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독일 전역이 공포에 떨고 있는 가운데 독일 당국 역시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