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기지 않지만 한 국회의원의 하소연이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7월 14일 “추가 정치자금이 필요하다”며 이 같은 글과 함께 돈을 구걸(?)하는 영상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박 의원은 영상에서 정치후원금 사용처와 용도, 세액공제·소득공제 제도 등을 밝히며 후원을 호소했다. 박 의원은 영상을 올린 지 40시간 만에 2960여 명의 후원자로부터 후원금 한도액인 3억 원에 가까운 돈을 모았다(후원금 한도는 1억 5000만 원이지만 선거가 있는 해는 3억 원으로 늘어난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페이스북에 후원을 호소하는 영상을 올려 40시간 만에 3억 원에 가까운 돈을 모았다. 영상 캡처
국회의원들의 이러한 직접적인 후원금 독려는 예전에 찾아볼 수 없었던 장면이다. “보기 민망하다” “노골적인 돈 얘기 때문에 불편하다”며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있긴 하지만 “신선하다” “솔직해서 보기 좋다”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과거 음성적으로 이뤄지던 후원회 등을 떠올려봤을 때도 SNS 등을 통한 공개적인 모금 활동은 긍정적 측면이 크다는 분석이다.
그 사례도 다양하다. 금태섭 민주당 의원은 박주민 의원을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출연시켜 후원금 모금에 나섰다. 영상에서 박 의원은 “(금태섭 의원) 의원실을 둘러보니 정말 아무것도 없다”며 “금 의원이 손가락만 빨고 있다”면서 후원을 호소했다.
노회찬 정의당 의원은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 “후원금이 부족하면 휘발유를 넣지 못해 뉴스공장에도 나오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우회적으로 후원금 모금을 부탁한 셈이다. 노 의원실 관계자는 “당시 발언이 효과가 있었다. 지금은 후원금이 한도액에 다다라 더 이상 후원받지 않는다”고 귀띔했다. 표창원 민주당 의원은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표창원의원실 후원금 바닥 임박’이란 56초 길이의 익살스러운 영상을 올려 모금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 서울시당 공식 팟캐스트인 ‘서당캐’에서도 후원금 모금 이야기가 종종 오간다. 중앙선관위가 발표한 ‘2017년 상반기 국회의원 후원금 모금액 추이’에서 하위 10위권 안에 든 박정 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경기도당 소속이지만 추후 모금활동의 일환으로 의원님의 서당캐 출연이 가능한지 알아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당캐 진행자인 김영호 의원실 관계자는 “박주민 의원 영상을 본보기로 삼고 있다. 모금활동의 긍정적인 취지만을 살린 여러 가지 콘텐츠를 고민 중”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김영호 의원은 후원금이 부족한 의원들을 위해 이른바 ‘거지특집’ 팟캐스트 방송을 따로 구상 중이다.
반면, 후원금 모금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의원들도 있어 눈길을 끈다. 신상진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역구의 어려운 상황과 기존 후원자들을 고려해 따로 후원금 독려를 따로 하지 않는다고 했다. 신 의원실 관계자는 “의원님은 물론 저희 보좌관·비서 명함 뒤에도 후원금 계좌를 기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재력가로 알려진 김세연 바른정당 의원실 관계자는 “의원님 자체가 재산이 있기에 굳이 모금 활동을 벌이지 않는다”고 했다.
6월 정치자금법 개정으로 중앙당 후원금 제도가 부활함에 따라 정당도 개별 국회의원 못지않게 정치후원금 모금 독려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11월 27일 중앙당후원회인 ‘더치페이(더불어민주당 치얼 업 페이)’ 홍보동영상을 선보였다. 추미애 대표와 김경수·김정우·한정애·홍익표 의원 등이 출연했다. 정진술 더불어민주당 후원회 사무국장은 “소액다수의 후원방식을 꾀해 보다 많은 국민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고 정치후원이 재미있다라는 걸 느끼게 하고 싶었다”고 했다. 정 국장은 “이는 모임이나 행사개최 등으로 후원을 도모하던 과거와 대비되는 지점”이라고 덧붙였다.
정의당도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던 미국의 ‘baby shakk song’을 패러디한 정치후원회 홍보영상을 11월 30일 공개했다. 이 영상엔 이정미 대표, 노회찬 원내대표, 심상정 전 대표의 이른바 ‘손뼉치기’ 율동이 담겨져 있어 화제를 모았다. 오일석 정의당 후원회 차장은 “11월 마지막 주에 기획CF도 찍는다. 국민들에게 정당을 홍보하고 후원금 모금을 독려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바른정당은 후원금 모금 활동과 관련한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없다고 밝혔다.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은 후원회를 개설하지 않은 상태다.
전문가들은 정치인들이 보다 솔직해졌다고 평가한다. 김봉석 성균관대학교 사회학과 초빙교수는 “후원금 모금 활동이 과거에 비해 직선적이고 진솔한 방식으로 변화해가는 추세”라며 “이는 지역구를 넘어서 대중적 인지도를 획득하려는 국회의원들의 변화된 행보 중 하나”라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이 같은 후원금 독려는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의원만이 행할 수 있는 선택지”라며 “잘 알려지지 않은 국회의원은 쉽게 단행할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성진 인턴기자 ls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