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3일 김선웅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사무총장이 KBO리그 대리인제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요신문] KBO리그 출범 37년 만에 에이전트가 도입된다. KBO는 2017년 제3차 이사회를 열고 2018 시즌부터 선수대리인(에이전트) 제도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 이후 구단과 선수의 본인 대면 계약 원칙을 고수했던 구단은 내년부터 선수를 대리하는 에이전트와 계약 협상 테이블에 마주하게 된다. 그러나 아무나 에이전트가 될 수 없다. KBO는 프로야구선수협회 자격시험을 통과해 공인을 받은 자에게만 정식 에이전트 자격을 부여하기로 했다. 그리고 법인을 포함한 대리인 1명이 보유할 수 있는 인원은 구단 당 3명까지 총 15명 이내로 제한했다. KBO리그 선수대리인 제도의 문제점을 살펴봤다.
12월 22일은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가 주관하는 선수 대리인 자격시험이 예정돼 있다. 응시료는 심사비용 11만 원, 응시비용 44만 원이다. 에이전트가 되려면 자격심사와 자격시험을 모두 통과해야 한다. 자격시험은 모두 4과목을 치르는데 KBO리그 대리인 규정, 표준선수 대리인 계약서, KBO 규약, 협정서(한미,한일,한대만,프로-아마추어), 야구선수 계약서, KBO리그 규정, 기타 규정(상벌위원회 규정, 야구배트공인 규정, 국가대표 운영 규정 등), 국민체육진흥법, 프로스포츠도핑규정, 선수협회가 지정한 법률 상식 등이 포함된다.
각 과목 60점 이상 취득 시 합격이고, 평균 60점이 넘어도 한 과목이 60점 미만이면 탈락이다. 불합격자의 경우 60점 이상을 못 받은 과목만 2년 이내 재시험을 볼 수 있다.
KBO가 내년 시즌부터 선수 대리인 제도를 시행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사실 선수 대리인은 이미 오래전부터 에이전트 또는 매니지먼트의 이름으로 활동했다. 유명 야구선수들 대부분은 에이전트사나 매니지먼트사에 소속돼 있고 이들은 대리인 제도가 시행되기 전부터 구단과의 연봉 또는 FA 협상 때 선수들을 직간접적으로 도왔다. 지난해 모 구단과 FA 계약을 맺은 선수는 구단이 에이전트와 협상을 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처럼 외부에 노출되지 않은 상태에서 선수의 조력자로 활동했던 에이전트들은 오는 22일 선수 대리인 자격시험에 응시해야 한다. 그러나 자격시험 관련 내용이 공개되면서 현재 에이전트로 활동 중인 관계자들은 한마디로 ‘멘붕’에 빠졌다. 일단 ‘시험’이란 단어가 주는 부담과 시험에 통과해야 선수 대리인 자격을 부여받고 시험에서 탈락할 경우 공식 활동이 제한되는 것은 매우 불합리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자격시험 관련해서 에이전트들을 취재하던 중 대부분은 시험의 당위성을 인정하면서도 시행 내용과 과정에 의문을 나타냈다. 모두 익명을 요구했기 때문에 기사에선 이니셜로 대신한다.
“난 시험 안 볼 예정이다. 만약 시험 봤다가 떨어지면 무슨 망신인가. 시험에 합격했다고 해서 선수와의 관계를 공식화하겠다는 것도 어이없다. 선수와 에이전트가 계약서에 사인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활동할 수 있는데 뭐 하러 그런 시험을 보겠나.”
현재 여러 명의 FA 선수를 두고 있는 에이전트 A 씨는 기자에게 자격시험에 응시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나뿐만 아니라 내가 알고 있는 다른 에이전트들도 시험 보지 않겠다고 하더라. 과연 자격시험의 의미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44만 원의 응시료는 도대체 어떻게 산정된 것인가. 만약 내가 시험을 봤는데 60점 미달 받고 떨어진다면 그동안 관리했던 선수들은 다 내보내야 한다는 소린가. 도통 이해가 안 된다.”
A 씨는 “아마도 에이전트 학과에 다니는 학생들이 자격시험을 치르게 될 것”이라면서 “어떤 내용의 문제가 출제되는지도 모르고 시험 공부해야 할 책도 없는 상황에서 시험 날짜만 공고해 놓으면 어떻게 하라는 것이냐”며 흥분된 목소리를 감추지 못했다.
대형 매니지먼트사를 운영하는 에이전트 B 씨도 불만이 많았다.
“에이전트가 왜 야구 배트 공인 규정을 알고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시험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는데 법률 상식 자료가 대리인 자격시험 신청자들에게 배포조차 되지 않았다. 에이전트들은 12월이 가장 바쁘다. 선수 계약 등 비시즌 동안 처리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다. 그 바쁜 시기에 자격시험 공부까지 해야 한다는 건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온다.”
유명 선수들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회사의 C 씨는 대리인 자격시험이 변호사 출신들한테 유리할 것으로 예상했다.
“시험 과목을 보면 변호사들한테 유리한 내용들이 많다. 대략 190명 정도가 시험을 치를 예정이라고 하는데 선수협에서는 100명 정도 무난히 합격할 거라고 말하더라. 난이도를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선수협이 100명 정도의 합격자를 예상한 근거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시험 응시료도 44만 원은 무척 비싸다고 생각한다. 22일 시험일과 응시 장소는 나왔지만 아직 시간도 정확히 공지가 안됐다. 처음 시행하는 일이라 어려움은 많겠지만 시작도 하기 전부터 대리인 제도 시행 관련해서 잡음이 끊이질 않는다.”
메이저리그 에이전트로도 활약 중인 D 씨는 자격시험 응시료에 대해선 오히려 한국이 더 싼 편이라고 말했다. 메이저리그는 시험 응시료만 2500달러(약 270만 원)이고 1년에 회비를 1500달러(약 162만 원)씩 내야 한다는 것.
“얼마 전 선수협이 자격시험 관련해서 대리인들을 모아 놓고 미팅했다고 들었다. 응시 어플리케이션 작성법에 대해 설명했는데 그걸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고 하더라.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시험을 치르겠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메이저리그도 1년에 두 차례 에이전트 시험을 치른다. 시험에 통과해서 자격증을 받은 에이전트는 3년 안에 메이저리그 40인 로스터에 들어가는 선수가 최소한 1명이 소속돼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자격이 박탈된다. 한국에선 시험에 통과한 에이전트들을 향후 어떤 기준으로 관리할 것인지 궁금하다.”
문제는 자격시험에만 있지 않다. 자격시험을 통과해 공인 받은 대리인 1명(법인 포함)이 보유할 수 있는 선수는 총 15명(구단당 3명)으로 제한된다. 이 내용은 시장 현실을 무시한 규제라는 게 에이전트들의 의견이다.
에이전트 C 씨는 이 규제의 부당함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에이전트 계약을 맺을 수 있는 선수는 연봉 1억 원 이상의 선수이다. 그래야 에이전트 수수료 5%가 발생한다. 만약 우리 회사에 15명 선수가 있고, 그들이 연봉 1억 원 이상이라면 회사에서 챙길 수 있는 수수료는 모두 합해도 7500만 원밖에 안 된다. 물론 연봉 1억 원이 넘는 선수들도 있겠지만 그건 예외로 남겨두자. 한 회사가 직원들 월급 주면서 7500만 원 갖고 운영이 된다고 생각하나. 그리고 대형 에이전트사들은 회사당 30~40명의 선수들을 보유하고 있다. 에이전트 제도가 시행되면 15명 외에 나머지 선수들은 다 내보내야 하는 상황이다. 이게 현실성이 있다고 생각하나. 결국 편법이 동원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건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D 씨는 또 다른 고민을 털어 놓았다.
“만약 1억 원 규모의 연봉 협상을 하는 선수가 있다고 하자. 이 선수와 구단 간의 연봉 협상 중 에이전트가 나서서 1억 원의 연봉을 어디까지 올려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에이전트가 개입해서 1억 5000만 원의 몸값 인상을 성사시킬 수는 없다. 잘해야 500만 원 더 올릴 뿐이다. 2억 8000만 원의 연봉을 받는 선수에게 3억 원의 몸값을 이끌어 줄 수는 있지만 금액이 적은 선수한테는 에이전트의 역할이 축소될 수밖에 없다. 특히 한국은 선수와 에이전트가 형, 동생이 되는 등 정 문화로 얽혀 있다. 이런 부분이 비즈니스적인 모델을 구축하는 데 방해 요소가 될 수도 있다고 본다.”
지난 11월 25일 고려대 미디어관에서는 2017 한국야구학회 가을 학술대회가 열렸다. 야구의 중요한 현안들이 주요 소재들로 다뤄졌는데 프로야구 에이전트 제도 관련 토론이 펼쳐져 관심을 모았다. 토론의 패널로 참석한 염경엽 SK 와이번스 단장은 에이전트 제도에 대해 “부족한 상황에서 시작되는 제도라 지금으로선 10%의 선수들만 누릴 수 있는 제도”라면서 “에이전트 제도는 구단과의 대립이 아닌 동행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수대리인 제도는 첫 시행이란 점에서 계속 문제점들이 불거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에이전트 제도에 미온적인 태도를 취했던 구단이 결국 선수대리인 제도를 받아들였다는 점은 중요한 변화이다. 선수대리인들이 연봉 협상뿐만 아니라 선수들 관리에도 적극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선수대리인 제도가 선수의 이권과 프로야구 산업을 키울 수 있는 순기능으로 전환하기 위해선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강민호·손아섭·민병헌 총 258억 계약 뒤엔 한 사람이…비공인 에이전트 세계 뒷얘기 프로야구에서 선수대리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들은 대략 몇 명 정도 될까. 선수협이 그 숫자를 파악하려고 하지만 등록되지 않은 회사들도 상당하기 때문에 정확한 숫자를 산출하기엔 어려움이 뒤따를 것이다. 에이전트 시행을 앞둔 프로야구계에 나도는 뒷얘기들을 중 흥미로운 내용을 소개한다. #사례 1 KBO가 내년 시즌부터 선수대리인 제도를 시행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미 야구계에는 수십 명의 비공인 에이전트들이 활동하고 있다. 그중 한 사람은 기자가 에이전트들과 인터뷰할 때마다 거론된 인물이다. 한 에이전트는 “그분이야말로 프로야구 역대 FA 선수 계약을 제일 많이 하지 않았느냐”면서 “선수와 계약서도 작성하지 않고 형, 동생으로 지내며 선수들이 알아서 수수료를 떼 주는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대형 스포츠매니지먼트사가 여럿 있지만 그의 FA 계약 사례는 따라갈 자가 없다는 게 한 에이전트의 설명이다. 실제로 올 시즌 롯데에서 삼성으로 옮긴 강민호(4년 80억 원), 롯데와 재계약한 손아섭(4년 98억 원), 두산에서 롯데와 계약한 민병헌(4년 80억 원) 등이 그의 소속 선수들이다. 258억 원이란 대형 계약을 맺은 3명의 FA 선수들을 모두 한 에이전트가 담당하다 보니 야구계에선 뒷말이 무성할 수밖에 없다. #사례 2 서로 소속 회사가 다른 에이전트 2명은 원래 사이가 좋았다. 호형호제 했을 정도의 친분을 유지했다. 그러나 에이전트 시행 제도를 앞두고 서로 상대방 회사에 소속된 선수들을 빼돌리기 하면서 사이가 멀어졌다. 상대 회사의 선수 중 FA 계약을 앞둔 유명 선수가 있다면 어떻게 해서든 만남을 갖고 그 선수를 자신의 회사로 데려왔다. 선수를 내준 회사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자신의 선수를 빼간 회사의 선수들 중 수익률이 높을 것으로 보이는 선수에게 접근, 최고의 지원과 혜택을 약속하고 데려왔다. 선수는 구단으로부터 돈을 더 많이 받아 내거나 자신에게 좋은 혜택을 약속하는 에이전트에게 마음이 갈 수밖에 없다. 물론 회사와 계약한 계약서는 존재하지만 선수가 파기하면 그만일 뿐. 선수들이 철새처럼 소속 회사를 옮기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례 3 몇 년 전부터 스포츠 매니지먼트사들은 프로야구 선수 출신들을 임원으로 영입하기 시작했다. 야구만 했던 이들을 매니지먼트사로 영입한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바로 그들을 내세워 현역 선수들을 영입하는 데 도움을 받고자 하기 때문이다. 실제 롯데에서 은퇴한 임재철은 은퇴 후 갤럭시아SM 국장을 맡아 제2의 인생을 시작했고, KIA 타이거즈 2군 타격코치를 했던 조경환은 몬티스스포츠 본부장을 맡고 있다. 임재철 국장은 넥센 이정후, 두산 유희관 등 굵직굵직한 선수들 영입에 성공했다. [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