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KT 소닉붐에 지명된 가드 허훈. 임준선 기자.
[일요신문] 프로농구에 갓 데뷔한 선수가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데뷔전부터 15점 7어시스트를 기록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국가대표에도 발탁돼 아시아 최강으로 꼽히는 중국을 상대로 팀내 최다득점을 올리기도 했다. 프로무대 데뷔 한 만에 화제를 일으킨 주인공은 ‘농구 대통령’ 허재 국가대표팀 감독의 차남 허훈이다. <일요신문>은 1일 오전 소속팀 KT 소닉붐에서 경기준비에 한창인 허훈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 프로 데뷔, 국대 활약…정신없는 한 달
허훈의 ‘화려한 데뷔’는 예정된 수순이었다. 대학 무대 최고 유망주로 평가받던 그는 지난 10월 30일 열린 프로농구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KT에 지명됐다. 구단이 가장 원하는 선수로 공인을 받은 것이다. 1순위 지명 각오로 “KBL 판도를 뒤집겠다”는 말을 남겼다. 그는 당시를 떠올리며 “시즌이 진행 중이었는데 팀 상황이 좋지는 않았다. 팀도 살리고 나 자신도 최고가 되고 싶다는 포부를 남기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가 활약하게 된 KT는 허재 감독이 선수 시절 활약했던 곳이기도 하다. 허 감독은 프로 출범 당시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현 울산 모비스)에 몸담았다. 이에 허훈은 “아버지가 부산에서 뛰셨던 것은 잘 알고 있다”면서 “다만 그땐 워낙 어렸고 부산에서 살지는 않았다. 외가가 부산이라 자주 놀러 왔었기 때문에 친근한 느낌은 있다”고 말했다.
허훈은 “프로에 오니 경기속도가 훨씬 빠르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임준선 기자.
“아직 많은 경기를 뛰지는 못했지만 대학무대와 프로는 확실히 다르더라. 모든 선수가 죽기살기로 달려드는 느낌이다. 경기 속도가 빠르고 외국인 선수의 존재가 큰 차이점이기도 하다.”
허훈이 분전하고 있지만 소속팀 KT는 올 시즌 최하위에 처져 있다. 10월과 11월 각각 1승씩을 올리는 데 그쳤다.
허훈은 팀에 대해 “연패를 끊어내는 게 우선이다. 이제 2라운드 막바지인데 안좋은 흐름을 빨리 끊고 싶다. 나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팀원들과 힘을 합쳐 이겨내도록 하겠다”고 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바쁜 시기에 국가대표팀에도 다녀왔다. 지난해부터 허훈을 발탁하고 있는 허재 감독은 이번 대표팀 명단에도 그를 포함시켰다. 뉴질랜드-중국을 상대로 1승 1패를 기록한 2연전 중 허훈은 특히 중국전에서 돋보이는 활약을 펼쳤다. 23분 51초를 소화하며 16점 4어시스트로 팀 내 최다득점·어시스트를 기록했다.
대표팀은 뉴질랜드전에서 슈터들의 활약으로 3점포가 터지며 승리했다. 하지만 중국전은 이전과 다른 양상이 펼쳐져 어려움을 겪었다. 후반전 본격적으로 투입된 허훈은 활기를 불어넣으며 추격을 이끌었다.
‘에이스’ 김선형이 부상으로 빠진 대표팀에서 ‘슬래셔(돌파로 상대를 휘젓는 선수)’ 역할을 그가 맡았다. 허훈은 “중국이 우리를 잘 분석하고 나와 어려움을 겪은 것 같다. 경기에 투입될 때 감독님이 특별한 말씀은 없으셨다“라며 ”연습 때 하던 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열심히 따라갔지만 경기를 뒤집지는 못해 아쉬웠다”며 중국전을 떠올렸다.
중국과의 경기는 패배했지만 관중들의 일방적 응원 속에서 경기를 치르는 것은 즐거운 경험이었다.
허훈은 “농구를 하면서 그런 분위기는 처음이었다. 대학 정기전에도 많은 관중이 있지만 응원이 반으로 나눠지지 않나. 국내에도 최근 몇 년간 국가대표 경기가 없었다“라며 ”더 좋은 플레이를 보여서 더 많은 관중들이 올 수 있도록 만들어야 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뉴질랜드 경기를 치르고 오는 일정에 나도 형들도 몸이 조금씩 무겁기는 했다. 장거리 비행의 여파가 확실히 존재했다. 경유지가 있어서 더 힘들었다”고 덧붙였다.
프로 데뷔 이전 대학 무대 우승, 화려한 데뷔 등 탄탄대로를 걷고 있는 듯 보이지만 그에게 찬사만이 쏟아지는 것은 아니다. 좋은 기록을 남긴 지난 중국전에서도 수비 등 부분적으로는 아쉽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그는 이에 대해 “나도 인지하고 있고 새겨들어야 할 부분이다. 그렇다고 자만해서도 안되지만 주변 지적에 휘말리고 싶지는 않다.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끼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발전해 나가도록 노력해야 한다”면서 “현재는 몸상태를 끌어올리는 것이 급하다”고 말했다.
# 허재-허웅-허훈 농구가족 3부자
농구 대통령의 아들로 자라온 허훈은 어릴 때부터 많은 주목을 받아왔다. 꼬마 시절부터 아버지와 함께 찍힌 사진이 언론 지면을 장식하기도 했고 농구선수의 길로 접어들며 더욱 관심을 받았다. 프로 무대에 데뷔한 아들에게 아버지 허재 감독은 어떤 조언을 남겼을까.
“어릴 때부터 농구를 시작했기 때문에 프로에 데뷔했다고 해서 특별한 말씀을 하시진 않았다. 프로 이전부터 그러셨다. 작년부터는 만나고 있는 대표팀에서는 보통 감독과 선수 사이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런 모습이 자연스럽고 그래야 하는 게 맞다.”
대한민국 평범한 가정이 그렇듯 허씨 3부자도 무뚝뚝한 아버지와 아들 관계다. 이들은 지난해 MBC 예능프로그램 <마이리틀텔레비전>에 출연해 무뚝뚝한 표정과 말투로 시청자들을 웃음 짓게 했다. 형제 관계도 마찬가지다. 그는 형 허웅에 대해 “어릴 때는 형과 놀다 뾰족한 곳에 부딪혀 얼굴에 상처가 날 정도로 함께 장난치기를 좋아했다. 커서는 무뚝뚝한 성격 탓에 대화가 많지는 않다(웃음). 최근에도 ‘다치지 말고 잘해라’ 정도가 전부였다”고 전했다. 실제 그의 눈가에는 어릴 때 생긴 상처가 희미하게 남아있었다.
허훈은 탄탄한 몸의 비결을 “아버지가 좋은 몸을 물려주셨다”고 이야기했다. 임준선 기자
허훈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자산으로 ‘몸’을 꼽았다. 그는 프로 첫 발을 내딛은 새내기 답지 않게 탄탄한 근육을 자랑한다. 허재 감독도 선수시절 남다른 근육으로 유명했다. 그는 “좋은 몸을 물려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학교 다닐 때부터 웨이트를 꾸준히 했는데 남들보다 웨이트 효과가 잘 나타나는 체질인 것 같다”며 웃었다.
어머니에 대한 감사함도 잊지 않았다. 어머니 이미수 씨는 두 아들을 모두 국가대표 농구선수로 키워냈다. 허훈은 “어릴 때부터 어머니께서 뒷바라지 많이 해주셨다. 매일 간식이나 홍삼을 챙겨주셨고 과일주스도 직접 갈아주셨다”며 “이제는 성인 무대에서 뛰기에 내가 알아서 할 일이다. 그래도 어머니는 여전히 경기장에는 계속 오신다. 이제는 아들 경기 보러 오시는 게 낙인 것 같다”고 말했다.
허훈은 ‘허재 아들’로 많은 관심 속에서 자라왔다. 현재도 그의 활약에 많은 시선이 쏠려있다. 하지만 프로 데뷔전을 치른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만 22세 새내기 선수다. 앞으로 오랜 시간 지속될 선수생활에서 그의 목표는 무엇일까.
“멈추지 않고 성장하는 선수가 되고 싶다. 많은 분들이 좋게 봐주시고 있지만 아직 부족한 부분, 보완해야 할 부분도 많다. 끊임없이 조금씩 발전하다보면 팀도 우승하고 개인적으로도 좋은 일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