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팬시, 스탠리 호, 안젤라 렁(왼쪽부터). 로이터/뉴시스 | ||
<포브스>에 따르면 지난 2007년 호의 개인 자산은 80억 달러(약 10조 원)에 달했으며, 세계 갑부 명단에 홍콩 5위 및 세계 113위로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지난해에는 카지노 경기 하락으로 주가가 폭락하면서 재산이 10억 달러(약 1조 4000억 원)로 급감했고 이에 따라 갑부 순위도 홍콩 19위, 세계 701로 뚝 떨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당시 호는 <포브스>의 보도에 반박하면서 “카지노 주식이 폭락한 건 사실이지만 내 재산에서 주식이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적다”며 자신은 여전히 건재하다고 주장했다.
그의 이런 주장에 힘을 실어주듯 올 상반기부터 카지노 경기가 다시 살아나자 그의 재산도 원상복귀되기 시작했다. 지난해 가을 금융 위기의 여파로 곤두박질쳤던 카지노 회사들의 주가는 지난 5월 일제히 상승세로 돌아섰으며, 이에 따라 호의 순 자산은 현재 90억 달러(약 11조 원) 이상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재 세계 최대의 카지노 회사로 명성이 자자한 그의 SJM 홀딩스는 ‘그랜드 리스보아 카지노’ 등 마카오 전체 카지노 31개 가운데 19개를 소유하고 있다. 2002년 마카오 카지노 시장이 외국에 개방되기 전까지 40여 년 동안 카지노 사업을 독점해왔던 호는 시장이 개방된 후에도 여전히 마카오 전체 카지노 수익의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을 만큼 저력을 발휘하고 있다. 실제 SJM의 지난해 수익은 무려 140억 달러(약 17조 원)로 업계 최고를 기록했다.
호의 자녀들이 독립적으로 오픈한 카지노까지 합치면 마카오에서 ‘호 패밀리’의 카지노 수익 점유율은 53%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이밖에도 호는 복합기업인 STDM 및 순탁 홀딩스의 회장직을 겸임하고 있다. STDM은 마카오 경제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초대형 규모의 기업으로 금융, 호텔, 부동산 개발, 항공, 항만 등 다방면에 걸친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또한 순탁 홀딩스는 홍콩과 마카오를 오가는 페리와 헬리콥터 서비스를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으며, 호는 마카오 공항의 지분 33%와 에어 마카오의 지분 14%를 보유하고 있는 대주주이기도 하다.
이처럼 자산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보니 그가 세상을 떠날 경우 ‘호 왕국’을 둘러싼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리라는 것은 자명한 일. 게다가 슬하에 자녀가 17명이라면 이야기가 더욱 복잡해질 것이다. 아직까지 호가 후계자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언급한 사례가 없었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궁금증은 더욱 증폭되고 있는 상태다.
▲ SJM 홀딩스의 리스보아 카지노. | ||
안젤라는 현재 SJM의 최고 이사인 동시에 마카오 의회 의원직을 겸하고 있는 정치인이기도 하다. 슬하에 다섯 명의 자녀를 두고 있으며, 호와는 지난 1986년 호의 카지노에서 딜러 겸 댄서로 일하다가 사랑에 빠져 화제가 되었다. 이들의 로맨스는 영화 <라스트 프로포즈>로 만들어져 인기를 얻기도 했다.
두 번째 부인인 루시나 호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인 팬시는 강인한 성격과 타고난 사업가 체질을 바탕으로 호의 후계자로 강력히 지목되고 있다. 미국 산타클라라대학에서 국제경영학 및 마케팅을 전공했던 그녀는 2007년 <포춘>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기업가’ 중 36위에 이름을 올렸을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그녀가 처음부터 카지노 사업에 뛰어들었던 것은 아니었다. 8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그녀는 광고마케팅 회사를 설립해서 운영하고 있었으며, 지난 2004년 뒤늦게 아버지의 카지노 사업에 뛰어들면서 본격적으로 경영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현재 그녀는 STDM 이사로 근무하는 한편 홍콩-마카오 간 페리 운항 및 호텔, 부동산 개발을 담당하고 있는 순탁 홀딩스의 경영이사로 재직 중에 있다. 또한 여동생인 데이지와 함께 순탁 홀딩스의 지분 51%를 보유하고 있는 대주주이기도 하다.
팬시가 카지노 업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4년 호가 미국의 3대 카지노 회사인 MGM 미라지와 추진했던 합작 카지노 설립의 협상 대표로 팬시를 지명하면서부터였다. 당시 호의 이런 결정을 두고 업계에서는 호가 마카오 카지노의 경영권을 팬시에게 넘기기로 한 것 아니냐는 소문이 돌기도 했었다.
지난 2007년 문을 연 ‘MGM 그랜드 마카오’는 MGM 미라지와 50 대 50의 비율로 합작 투자한 카지노 호텔로서 공사비만 12억 5000만 달러(약 15조 원)가 소요됐을 정도로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현재 팬시는 이곳의 경영이사를 맡고 있으며, 처음으로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 독자적으로 카지노를 운영하게 됐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사정이 이러니 안젤라와 팬시 사이가 썩 좋지 않으리라는 것은 짐작이 가고도 남는 것이 사실. 나이 차이도 불과 세 살밖에 나지 않는 데다 둘 다 카지노 사업에 대한 욕심과 승부욕이 강한 것도 둘 사이의 갈등을 더욱 심화시켰다.
하지만 최근에는 둘 사이에 화해 무드가 조성되고 있다는 소문도 불거졌다. 이런 소문을 입증하듯 얼마 전 호가 병원에 입원하자 팬시와 안젤라는 함께 나란히 병원을 찾았으며, 이런 둘의 모습을 본 홍콩 언론들은 일제히 둘이 화해한 것 아니냐는 추측성 기사를 쏟아냈다. 한편 호 가족들 내부에서는 앞으로도 안젤라는 현재 맡고 있는 SJM 이사직을, 그리고 팬시는 STDM의 이사직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서로 합의를 본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말하자면 서로 각자의 경영권을 침범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 둘째 부인의 딸 팬시 호가 미국 3대 카지노 회사 MGM 미라지와 50대 50의 비율로 합작 투자한 카지노호텔 MGM 그랜드 마카오, 위는 그의 남동생 로렌스 호. | ||
9세 때 캐나다로 유학을 떠난 후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홍콩으로 돌아오지 않았던 그는 2002년 마카오 시장이 외국 자본에 개방되자 홍콩으로 돌아와서 아버지의 사업을 이어받기 시작했다.
홍콩에서는 일반적으로 장남이 가업을 물려받는 것이 전통인 만큼 후계자로는 사실 로렌스가 가장 유력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의 나이가 아직 30대 초반으로 어리다는 데 있다. 사업가로서의 경험이 풍부하지 않다는 점 때문에 주주들이 그를 회장직에 앉히길 꺼려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사업 스타일도 아버지 호와는 많이 다른 편이다. 누나인 팬시가 가족과 명예 등을 중요시하는 아버지의 스타일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다면, 로렌스는 해외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해외유학파인 만큼 가족 기업이라는 생각보다는 전략적인 투자은행 전문가 스타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가족 외에 후계자로 거론되고 있는 인물로는 호의 오른팔로 불리는 암브로스 소가 있다. 오랜 세월 호와 동고동락했던 그는 현재 SJM의 최고경영자로 일하고 있으며, 한때 중국인민대표대회의 중국국가위원회 의원으로 지내면서 호의 카지노 사업에 정치적인 힘을 보태주기도 했다.
하지만 호의 건강이 생각보다 빨리 호전되고 있자 일부에서는 후계자 논쟁을 하는 것은 어쩌면 시기상조일지도 모른다며 조심스러워하고 있는 한편, 다른 한쪽에서는 이미 가족들 사이에서는 언제 닥칠지 모를 일에 대비한 물밑 작전이 치열하게 시작됐다고 점치고 있다.
카지노 관계자들은 안 그래도 중국 정부의 비자 규제로 위축된 마카오의 카지노 시장이 ‘호 패밀리’의 급작스런 지각 변동으로 행여 타격을 입진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