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세시, 공시생 일기`의 저자 남세진.
[서울=일요신문]주성남 기자= 2016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7, 9급 국가 공무원 지원자 수는 28만8,565명에 달한다. 취업준비생 10명 중 4명이 일반직 공무원을 준비하고 있는 셈이다.
일분일초가 아까운 공시생들이 사는 세상에는 ‘세븐일레븐(7시부터 11시까지 14시간을 1년 동안 공부하면 못 붙을 시험이 없다는 뜻)’이란 희망고문 같은 말이 있지만 현실은 ‘넘사벽’인 말뿐이기도 하다. 그만큼 공시생의 일상은 책상에 딱 붙어 앉아 치러야 하는 자신과의 싸움이지만 그 길고 지루한 싸움 끝에 합격의 영광을 누리는 건 채3%도 안 된다.
`새벽 세시, 공시생 일기`는 그 기약 없는 열차에 몸을 실은 20대 한 공시생의 흔적이자 진솔한 고백이다. 공시생이라면 누구나 겪었을 초조함과 불안한 심리를 포장 없이 담담한 언어로 풀어내는 한편, 노량진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발견한 일상의 면면을 발랄한 감성으로 이야기한다. 길지 않은 이야기 하나하나가 애틋하면서도 정직한 감동을 주는 건 화자 자신이 직접 부대끼고 성찰한 데서 오는 공감이 크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극심한 취업난으로 대한민국의 공무원 준비생이 30만 명에 육박하는 오늘의 시대상을 잘 보여주는 보고서이자 노량진이란 ‘공시섬·고시섬’에 표류 중인 청춘들의 일상을 가식도 포장도 없이 적어 내려간 솔직한 자기소개서이다.
공시생의 일상은 엄청난 경쟁자들 속에서 합격을 위한 길을 찾아 오롯이 혼자서 버텨야 하는 기나긴 싸움이다. 공부에만 집중해도 모자랄 시간, 외로움을 걱정할 순간이 어디 있냐고 할 수 있지만 불안한 미래에 기대를 갖고 홀로 공부에 매진하다 보면 마음이 가장 먼저 지치는 법이다. 그래서 공시생들은 같은 꿈, 같은 고민을 하는 서로를 응원하며 ‘공시생 일기’, ‘공시생 책상’, ‘공시생 필수 아이템’ 등을 정리해 블로그나 SNS 등에서 공유한다.
저자인 남세진은 ‘공시생 기린’이란 닉네임으로 네이버 블로그에 꾸준히 하루치의 기록을 써 내려갔다. 담담하면서 단단한 마음이 느껴지는 일기에 자극도 받고 힘도 얻은 수많은 공시생이 다녀가며 블로그는 위로와 소통의 공간이 됐다.
남세진. 과학자를 꿈꿔 과학영재교육원에 들어갔으나 세상에 똑똑한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만 깨달았다.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대학교에서 미술을 전공했으나 회화 실력은 오히려 줄어든 채 졸업했고 기자가 되기 위해 언론사에 뛰어들었으나 자신이 원하는 삶이 아니란 걸 깨닫고 그만뒀다.
늦은 나이, 애매한 경력, 희미해진 꿈을 갖고 공무원 말고는 답이 없어서, 이거 아니면 진짜 할 게 없어서 공시생이 됐고 노량진으로 갔다. 하루에도 수십 번 도망치고 싶은 기분이 들 때, 매일 걸어도 나만 홀로 뒤처지는 것 같을 때, 어떻게 해야 합격할 수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고민하며 블로그에 공시생 일기를 쓰기 시작했고 `새벽 세시, 공시생 일기`는 고군분투했던 10개월의 흔적을 담은 첫 책이다.
남세진은 현재 경기도의 한 시청에서 일하고 있으며 업무를 똑 부러지게 해내는 공직자, 우리나라 최고의 도시전문가를 꿈꾸고 있다.
▲공시생 일기는 국내에서 처음 보는 주제의 책이다. 책을 쓰게 된 배경은?
수백 개의 공부 비법보다 더 필요한 건 마음의 위로였는데 그런 말을 들려주는 책이 없었다. 그래서 매일 밤 일기를 썼다. 글로 마음 속 불안을 내뱉고 나니 또 하루를 살아갈 용기가 났다. 그렇게 견뎠다. 공시생의 수가 30만 명이라는 이야기를 기사로 접했는데 그들도 나와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겠구나 싶었다. 두려움 안에서 성실하게 견디는 사람이 혼자는 아니다, 막막함과 씨름하며 버티는 사람이 혼자는 아니라고 위로해주고 싶었다.
▲공무원의 꿈을 이룬 지금, 공시생 시절을 되돌아보면?
지금 생각해봐도 참 힘들었다. 모든 공시생이 그렇듯 울고, 우울해 하고, 쓰러지고, 좌절했다. 행복한 일은 하나도 없는 것만 같고 막막하기만 했다. 보장 없는 미래를 바라보는 게 불안하니까. 합격을 하기 전까지는 계속 그랬던 것 같다. 그래도 매일 되뇌고 다짐했다. 합격만 하면 다 해결 될 거라고. 작은 목표 하나를 이루면 나 자신에게 보상을 해주며 겨우겨우 견뎠다. 마시고 싶은 커피를 즐긴다던가, 보고 싶은 프로그램을 본다던가. 그 정도의 작은 보상이었지만 그땐 큰 행복이었다.
▲전국의 공시생과 함께 나누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자존감이 낮아질 때는 남들과 자신을 비교할 때인 것 같다. 합격자들은 이 책을 봤다더라, 12시간 공부했다더라, 그들과 비교하는 거다. 겨우 한걸음 내딛기도 버거운 우리에겐 그런 비교는 전혀 도움이 되질 않는다. 대부분 그러한 비교에 무너진다. 합격수기를 일부로 보지 않았고, 합격자들의 말을 신경 쓰지 않는 척 했다. 묵묵히 내가 정해놓은 것들을 해내는 데 온 신경을 쏟았다. 내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절대 12시간 공부하지 않았다고, 그 책을 보지 않았다고 해서 떨어지지는 않는다는 거다. 공부는 본인만의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너무 많은 이야기에 흔들리지 말았으면 한다.
▲예비 공시생에게 전하고픈 말이 있다면?
초등학생 딸과 사진을 찍는 아버지의 모습, 아들을 안은 남편과 어머니까지 함께 단상 위로 올라가는 모습. 2017년 2월 6일 임용식에서 본 장면이다. 코끝이 찡했다. 시험을 준비하면서 나 역시도 참 많이 힘들었지만 그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상상조차 되질 않았다. 그래도 세상에 공정하고 공평한 공무원 시험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 시험은 누구나 도전할 수 있으니까. 어떤 상황이든 어떤 환경이든지 말이다. 만약 어떠한 조건 때문에 도전을 할지 말지 고민하고 있다면, 그걸 이겨내신 분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다.
▲앞으로의 계획은?
공부할 때는이 생활만 끝나면 모든 게 해결되는 줄 알았다. 근데 막상 임용이 되니까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해졌다. 나의 디자인 지식과 앞으로 쌓을건축⋅도시 분야 경력을 어떻게 조화시켜야할 지 고민했다. 그렇게 내린 결론이 도시전문가이다. 공공디자인에 대한 관심은 점점 더 커져가고 있지만 정부와 지자체에 그러한 일을 전문으로 하는 분은 적다. 특히 건축⋅도시 분야에 경력이 있는 분은 더욱 그렇다. 그러니 엄청난 예산을 쓰고도 시민들의 공감을 얻어낼 수 없는 것이다. 값비싼 작품이나 이름난 작가의 건물 하나를 세우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시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도시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록 공시생은 끝났지만 그 꿈은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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