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리가 지난해 4월 이혼 승소 판결을 받았다. 앞줄 왼쪽부터 남편, 변호사, 알리, 알리의 아버지. 로이터/뉴시스 | ||
불과 1년 전만 해도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띠며 이렇게 말했던 예멘 소녀 누주드 알리(10)는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정말 소녀의 바람대로 달콤한 인생을 살고 있을까. 불행히도 그렇지는 못한 듯하다. 지난해 아홉 살의 어린 나이에 강제로 시집을 갔다가 이혼하는 데 성공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탔던 ‘세계 최연소 이혼녀’ 알리가 예전과 다를 바 없이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최근 CNN이 보도했다. 이혼을 할 때만 해도 소녀의 용감한 행동에 갈채를 보내는 사람도 많았고, 소녀의 딱한 사정을 알고 도와주려는 후원자들도 많았지만 지금은 사정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이다. 학교에 다니기는커녕 여전히 부모로부터는 나가서 돈을 벌어오라며 구박을 받고 있는가 하면, 이슬람 국가의 전통인 조혼 관습을 어기고 이혼을 한 까닭에 가족과 이웃들로부터는 경멸을 당하고 있다. 차라리 언론에 자신의 이야기가 알려지지 않았으면 좋았겠다고 말하는 소녀의 악몽은 아직 끝나지 않고 있었다.
이혼이 모든 싸움의 끝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시작에 불과했다. 그래서 화가 난다.”
얼마 전 CNN 취재진이 알리의 허름한 집을 방문했을 때 소녀는 화가 난 듯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수줍은 미소를 짓거나 깔깔대며 웃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소녀는 인터뷰 내내 신경질적이고 예민했으며, 짜증이 나는 듯 간간히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알리가 이렇게 불만에 쌓여 있는 것은 당연했다. 부모의 강요에 따라 자신보다 스무 살가량 많은 남자와 결혼했다가 2개월 만에 이혼한 후 한때 여느 유명인사 못지않은 관심을 한 몸에 받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사정이 더 나빠졌기 때문이다. 대외적으로는 ‘용감한 소녀’라며 격려와 칭찬도 받았고, <글래머> 잡지가 선정하는 ‘올해의 여성’으로도 선정됐지만 정작 현실은 변하지 않았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렇게 원하던 학교는 다니지도 못하고 있었다. 사립학교에 등록해 잠깐 다니긴 했지만 얼마 못 가서 그만둬야 했다. 소녀의 어려운 가정 형편상 마음 편히 학교를 다닐 수 없었던 것이 커다란 이유였다. 16남매 중 유일하게 학교를 다녔던 알리의 입장에서는 아무리 ‘유명인사’라고 해도 집에서는 그저 평범한 딸에 불과했던 것이다.
알리의 변호를 맡았던 여성 인권변호사인 샤다 나세르는 부모를 찾아가 아이를 다시 학교에 보내달라며 설득하기도 했다. 나세르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하지만 나의 이런 부탁에도 불구하고 알리의 부모는 ‘알다시피 우리는 아이를 학교에 보낼 교통비도 없고, 또 당장 먹을 것을 살 돈도 없다’며 거절했다”고 말하면서 안타까워했다.
▲ 영웅에서 왕따로… 알리가 잡지 <글래머>에서 ‘올해의 여성’으로 선정되는 모습. | ||
나세르는 오히려 알리가 돈을 못 벌어온다며 가족들로부터 구박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알리의 부모는 “그렇게 유명해졌으면 집에 돈을 가져와야지 않느냐”고 다그치면서 지난해 뉴욕에서 돌아온 알리에게 “달러는 어디 있냐? 100만 달러는 벌어왔어야지!”라며 추궁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모는 알리가 괜히 일만 시끄럽게 벌려 놓았지 실제로 돈을 벌어오지는 못했다며 불만이 가득했다.
게다가 성금으로 모인 2만 달러(약 2400만 원)는 어디로 갔는지 행방이 묘연해졌으며, 부모는 자신들도 모른다며 입을 다물고 있어 의구심을 자아내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면 알리가 행복은커녕 매일 고통 속에서 살고 있으리라고 짐작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알리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방송에 이야기가 나간 후에도 내 삶이 달라진 건 없었다. 모두들 도와주겠다고 했지만 실제로 도와준 사람은 없었다. 차라리 언론에 내 이야기를 알리지 않았으면 좋았을 뻔했다”라며 후회했다.
알리의 말대로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후원금도 끊겼고 모두들 언제 그랬냐는 듯 더 이상 알리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밖에도 문제는 또 있었다. 알리처럼 감수성이 예민한 열 살배기 소녀에게 주위의 따가운 시선은 다른 무엇보다도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방송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가 알려지자 가족들과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했던 것이다. 알리가 이혼 후 집으로 돌아오자 마을 주민들 사이에서는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았으며, 알리가 없는 곳에서는 늘 뒷담화가 끊이지 않았다.
문제는 대부분의 예멘 사람들 사이에서는 열 살 소녀가 나이 많은 남자에게 시집을 가는 것은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는 데 있었다. 너무 당연한 걸 가지고 왜 그리 호들갑이었냐는 식인 데다가 심지어 이혼까지 하다니 마을 주민들에게는 소녀의 당돌함이 위협적이고 건방지게 느껴졌던 것이다. 서방세계에서 알리의 용기를 칭찬해주고 이혼을 축하해줄 때 고향에서는 알리의 반항적인 태도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알리의 아버지와 오빠들, 그리고 삼촌들을 비롯한 남자들은 알리의 이혼 사실이 전파를 타고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을 불쾌해하고 있었다. 예멘을 비롯한 이슬람 국가에서 여성의 이혼이란 심한 경우 가족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이유로 가족들로부터 살해를 당할 수도 있을 만큼 위험한 일이기 때문이다.
예멘의 경우 조혼 관습은 뿌리 깊은 것으로 ‘옥스팜 인터내셔널’의 조사에 따르면 50% 이상의 예멘 여성들이 18세 이전에 강제 결혼을 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변두리 지역에 거주하는 소녀들의 경우에는 더 심각해서 7~10세 사이에 초등학교를 중퇴하고 시집을 가는 소녀들이 50% 이상에 달한다. 이런 경우 대부분의 소녀들은 자신들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아버지뻘 되는 남자와 결혼을 한다.
최근까지만 해도 예멘에서 법적으로 결혼이 가능한 최소 연령은 15세였다. 하지만 부득이한 경우에는 부모가 15세 미만의 자녀도 결혼시킬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15세가 되기도 전에 일찌감치 시집을 가는 소녀들도 많았다. 하지만 알리의 이혼이 전 세계에 알려지면서 조혼 관습에 대한 비난에 휩싸였던 예멘 의회는 지난 2월 어렵사리 관련법을 개정했다. 결혼 가능한 연령을 남녀 모두 15세에서 17세로 높이는 법을 통과시킨 것이다. 만일 이를 어길 경우에는 1년의 징역형이나 최고 500달러(약 75만 원)의 벌금형에 처해지도록 했다.
▲ 이혼 뒤 누추한 집에 앉아 있는 알리의 모습. | ||
이밖에도 불안한 치안과 가족의 명예 때문에 어린 딸들을 하는 수 없이 빨리 시집보내는 경우도 많다. 하루가 멀다 하고 어린 소녀들이 길거리에서 납치를 당하거나 강간을 당하기 때문에 차라리 빨리 결혼을 시키면 이런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겠나 하는 것이다. 실제 알리의 언니들 가운데 한 명은 강간을 당했고, 또 다른 한 명은 납치를 당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결혼이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는 어린 소녀들에게 조혼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법. 결혼 후 사정이 나아지기는커녕 남편에게 학대를 당하거나 성폭행까지 당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2개월 남짓했던 결혼생활을 가리켜 ‘악몽’이라고 부르는 알리 역시 오토바이 택시 기사를 하던 30대 남편의 끝없는 성폭행과 구타를 이기지 못하고 탈출하다시피 했으며, 결국 이혼까지 하지 않았던가.
비록 그토록 원했던 이혼은 했지만 알리는 지금 행복하지 않다고 말한다. 과연 소녀를 위한 최선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CNN은 어린 소녀에게 언론의 지나친 관심은 오히려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 차라리 소녀를 홀로 내버려 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으로선 하루 빨리 소녀가 다시 학교에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최선이라고도 덧붙였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교육’이기 때문이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