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10억 명 이상이 본 것으로 추정되는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XP’ 바탕화면 ‘Bliss’. 사진=찰스 오리어 제공
푸른 들판과 파란 하늘이 인상적인 ‘Bliss’는 내셔널지오그래픽 사진작가 찰스 오리어가 21년 전인 1996년 1월 찍은 사진이다. 일 때문이 아니었다. 당시 내셔널지오그래픽 매거진 소속 작가로 캘리포니아 나파밸리(Napa Valley)에 살고 있던 오리어는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여자친구를 만나러 가는 중이었다.
그러던 중 나파밸리 소노마 고속도로를 지나다가 그림 같은 장면이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오리어는 곧장 차를 세우고 자신의 필름 카메라에 그 풍광을 담아냈다. 오리어는 “사진에는 파란 하늘에 구름이 보이지만 처음 촬영할 때는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날씨였다”고 회상했다.
# 우연히 찍은 ‘Bliss’ 전 세계 10억 명 본 유명사진 되기까지
그로부터 5년 뒤인 2001년 이 사진은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XP’ 배경화면에 채택됐다. 윈도우XP의 기본 바탕화면으로 쓰이면서 업계에선 10억 명 이상이 이 사진을 봤을 것이라 추측한다. 전 세계 윈도우XP 이용자 규모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당시 마이크로소프트는 선정 이유로 “고객에게 제공하려고 하는 체험(자유와 가능성, 조용함, 따뜻함)을 이 사진이 예시해주고 있었다“고 밝혔다.
오리어는 그의 사진이 선정된 배경에 대해 “코비스(Corbis) 덕분”이라고 밝혔다. 코비스는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가 1989년 세운 사진판권업체(현재는 ‘게티 이미지(getty images)’에 인수)다. 지난 1971년부터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일해온 오리어는 코비스에서도 작업을 병행해 왔다. 코비스가 그의 에이전시인 셈이다. 이후 마이크로소프트가 관계사인 코비스를 통해 그의 사진을 바탕화면으로 선정하게 됐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오리어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엔지니어들이 윈도우XP를 준비할 때인 1997~1998년 즈음 그들이 ‘코비스’ 아카이브에 있는 내 사진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오리어는 이 사진의 성공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그는 “(이렇게 유명해질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윈도우XP의 계속된 성공 덕분에 10억 명 이상이 Bliss를 보게 된 것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보니 자연스레 저작권에도 많은 관심이 가는 게 사실이다. 실제로 마이크로소프트가 이 사진의 사용권을 얻기 위해 오리어에게 지급한 액수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어마어마한 액수’라는 설명이 뒤따른다. 오리어는 이에 대해 “아마 사람들이 저작권에 대해 관심이 많을 텐데 그 저작권은 현재 코비스와 게티 이미지에 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찰스 오리어
‘Bliss’의 성공 이후 오리어는 출판 작가의 길도 걸었다. 그는 “1996년 이후 겸업으로 와인과 나파밸리에 관한 책들을 쓰며 지냈다. 현재까지 11권의 책을 냈다”고 말했다. 오리어가 지낸 나파밸리는 미국에서도 유명한 대규모 와인 생산지로 300곳 이상의 대규모 와이너리(Winery·포도주를 만드는 양조장)가 있는 곳이다. 그는 “‘코비스’가 내게 전 세계 와인 농장을 1년 동안 사진작업을 할 수 있게 기회를 줬다”며 “나파밸리를 비롯해 전 세계 다른 지역의 와인 농장을 사진으로 담는 게 정말 아름다웠다”고 말했다.
지난 1971년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사진작가 생활을 시작한 오리어는 그야말로 ‘베테랑’ 사진작가다. 그가 지금까지 사진 작업을 위해 방문한 나라만 25개국에 이른다. 그는 “비록 한국은 방문한 적이 없지만 일본, 홍콩, 인도 등 아시아 국가를 비롯해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들을 카메라에 담아왔다”고 전했다.
기억에 남는 장소도 많다. 오리어는 그 가운데 러시아를 제일로 꼽았다. 그는 “어느 국가를 가든 그곳 사람들의 가치관이나 친절함의 정도에는 차이가 있었다. 내게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러시아에 있을 때 방문한 여러 시골 마을들이다. 그곳 사람들은 비록 가난한 편이었지만 무척이나 친절했다”고 덧붙였다.
# 2017년판 ‘Bliss’는 어떤 모습?
그런 오리어가 최근 새 프로젝트 ‘New Angles of America’를 공개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1996년과 같은 자연 풍경이지만 Bliss보다 현대적으로 해석한 작품들로 독일 항공사 ‘루프트한자’와 협업했다. 북미의 3대 절경을 카메라 앵글에 담았다. 콜로라도주 ‘머룬 벨즈’와 유타주 ‘피카부 협곡’, 애리조나주의 ‘화이트 포켓’이 이에 해당한다. 오리어는 “이 장소들은 에이전시가 선택했는데 아마 그곳의 아름다움과 접근성 때문일 것이다. 처음엔 국립공원을 중심으로 선정하려 했지만 연방정부에서 상업 목적으로 사진작업을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아 위 장소들을 선정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오리어가 최근 공개한 새 프로젝트 ‘New Angels of America’. 왼쪽부터 콜로라도의 ‘마룬벨즈’, 유타주의 ‘피카부 협곡’, 애리조나의 ‘화이트포켓’. 사진=루프트한자 제공
눈에 띄는 점은 이번 작품은 Bliss와 달리 PC용이 아닌 스마트폰 바탕화면용으로 제작됐다는 것이다. 오리어는 이에 대해 “요즘 스마트폰이 PC보다 더 유용하게 쓰이지 않나. 더 많은 사람이 스마트폰을 통해 관계를 맺고 뉴스, 스포츠 등을 접한다. 퀄리티(Quality)도 뛰어나다. 이 때문에 스마트폰에 최적화된 세로 사이즈의 사진들이 많이 선호되는데 이번 작업도 그에 맞춰 제작됐다”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도 밝혔다. 현재 그는 40년 동안 살았던 나파밸리를 떠나 캘리포니아 북부의 블루릿지 마운틴 부근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다. 그는 “앞으로 작품 계획은 따로 없다”며 “사진작가로 일을 한 지 55년이 됐다. 내 시간에 대해선 매우 까다로운 사람인데 이제는 오로지 내가 만족하고 즐거운 일들만 찾아서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아마 여기에서 음악이나 미술을 하며 살지 않을까. 물론 이곳 사람들에 대한 사진도 계속 찍을 것”이라고 전했다.
오리어는 그가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던 나파밸리에 대한 애정도 잊지 않았다. 지난 10월 나파밸리 일대에서 발생한 산불로 인해 수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물론 이 지역에 몰려있는 와이너리도 타격을 받았다. 이와 관련 오리어는 “지금 그곳에 살진 않지만, Bliss를 찍은 장소가 불에 타지 않았다는 소식을 접해 다행이었다”고 말했다.
김상훈 기자 ksangh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