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가 총선거를 앞두고 고이즈미 칠드런을 위한 응원연설에서 “민주주의 국가니까 가끔은 자민당이 야당이 되는 것도 괜찮다. 단, 지더라도 너무 심하게 지면 곤란한데…”라는 실언을 해 자민당의 빈축을 샀던 일이 있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그의 예측이 정확히 맞아떨어진 셈이 됐다. 일본 국민들은 지난 8월 30일에 열린 총선을 자민당 파멸의 날로 기억하게 됐기 때문이다. 자민당에서는 져도 이렇게까지 질 줄은 몰랐다는 당황스런 표정이 역력했다.
신일본을 이끌어 나갈 인물은 튀어나온 눈이 이티(ET)와 닮았다고 해서 외계인이라는 별명을 얻은 하토야마 유키오다. 그는 명문 정치가 가문의 자제다. 그의 조부인 하토야마 이치로는 자민당을 창당한 전 총리이며, 그의 아버지는 외무상을 지냈다. 게다가 그의 어머니는 세계적인 타이어 브랜드 브리지스톤의 상속녀다. 하토야마가 안전한 길인 자민당을 탈퇴하고 민주당을 선택할 때에도 그의 어머니인 하토야마 야스코의 충고와 재정적 도움이 큰 역할을 했었다. 그의 동생인 하토야마 구니오 역시 자민당 소속의 중의원이다. 보통 정치가가 재력가의 딸과 결혼하는 반면, 어마어마한 재산을 이미 가지고 있는 하토야마 형제는 각각 배우와 모델과 결혼했다. 유키오의 부인 미유키는 일본의 국보급 여성극단인 ‘다카라즈카’ 출신의 배우이고, 구니오의 부인 에밀리는 어린시절 소녀잡지를 장식한 카리스마 있는 모델로 유명하다.
▲ 네 살 연상 유부녀에 한눈에 반해 결혼 “아내는 내 에너지원” | ||
이런 그의 코디네이션은 모두 아내인 하토야마 미유키의 어드바이스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부인의 충고를 그대로 받아들여 보기에도 민망한 하트무늬의 와이셔츠 차림을 하고 태평한 얼굴로 인터뷰를 하고 있는 그의 모습은 자연히 ‘외계인’이라는 그의 별명을 떠올리게 했다.
하토야마 유키오는 애처가로 유명하다. 스탠퍼드에 재학 중이던 하토야마 유키오는 그곳에서 유부녀 미유키와 만나게 된다. 미유키는 미국에 거주중인 일본인과 결혼해 미국으로 건너간 상태였다. 하토야마는 당시 명문가 출신의 촉망받는 엘리트였다. 그런 그가 네 살 연상인 유부녀와 결혼하게 된 이유에 대해 남긴 말은 유명하다. “보통은 미혼여성에게 구혼하지만 나는 모든 미혼자와 기혼자들 중에서 그녀를 선택한 것뿐이다.”
하토야마의 끈질긴 구애로 이뤄진 결혼이다 보니 아내에 대한 그의 사랑은 남다르다. 예를 들어 하토야마 유키오의 홈페이지를 살펴보면 특이하게도 프로필 란에 하토야마 미유키라는 카테고리가 있다. 남들의 눈을 아랑곳 하지 않고 아내가 집필한 서적과 사진을 소개하고 있다.
▲ 하트 무늬 셔츠 입고 당당 인터뷰 '눈길' 알고보니 부인 권고 | ||
하토야마 유키오를 향한 미유키의 애정도 <마이니치신문>과 얼마 전 가졌던 인터뷰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그의 ‘외계인’ 별명에 대해 그녀는 “그는 보통의 사람이다. 애정을 솔직하게 표현한다는 점에서 일본인답지 않아 외계인처럼 보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한 동물이 주인공인 만화영화를 좋아하는 남편의 따뜻한 면을 소개하는 한편 자신이 식사를 차리면 남편은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줬는데 설거지까지는 시킬 수 없다”고 말하며 설거지를 해준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훈훈한 부부애를 자랑하는 ‘외계인’ 정치가가 이끄는 신일본이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지 궁금해진다.
김지혜 해외정보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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