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명색이 공포영화 주인공인데도 불구하고 사실 처키는 한편으로는 귀여운 엽기 캐릭터로 인식되기도 했다. 개그 프로그램에 등장해서 웃음을 선사하거나 종종 코믹한 소재로 이용되기도 했던 것. 하지만 처키가 실제 현실 속에 나타난다면 어떨까. 그때도 그저 귀엽다고만 할 수 있을까.
처키를 우상시하거나 혹은 숭배하는 사람들이 실제 처키가 저지르는 것과 비슷한 방법으로 살인을 저지른다면 분명 이야기는 달라질 것이다. 수년 전부터 이미 영국과 호주 등지에서는 이른바 ‘처키 광팬’들이 마치 자신이 처키라도 된 양 살인 사건을 저지르고 있어 적지 않은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지난해 브라질에서는 한 영국 소녀가 토막 살인을 당한 채 강가에 버려진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었다. 브라질에 잠시 놀러 왔던 카라 버크(17)를 무참히 살해한 범인은 브라질 출신의 전 남친이었던 모하메드 달리 산토스(20)였다.
영국에서 불법 체류하던 중 버크를 만났던 산토스는 브라질로 놀러온 버크와 함께 자신의 아파트에서 머물고 있었다. 하지만 산토스의 속셈은 다른 데 있었다. 친구들에게 그는 “버크와 결혼해서 하루 빨리 영국 시민권을 획득할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녔다. 말하자면 버크를 이용해서 시민권을 얻는 것이 버크를 만나는 진짜 목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이런 계획은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어느 날 갑자기 버크가 다른 브라질 남자친구가 생겼다며 헤어지자는 것이었다. 버크에게 이런 말을 듣자 산토스는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게다가 버크가 “네가 마약중독자라는 사실을 네 부모에게 알리겠다”고 하자 결국 그는 이성을 잃고 말았다. 버크가 경찰에 신고를 하겠다며 수화기를 드는 순간 그는 더 이상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는 부엌으로 가서 식칼을 들고 왔고, 결국 버크를 여러 차례 찔러 살해하고 말았다. 시체를 욕실에 버려둔 채 태연하게 친구의 밤샘 파티에서 놀다 들어온 그는 이른 새벽 버크의 시체를 토막 낸 후 몸통은 여행 가방에 팔다리, 머리는 각각 플라스틱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는 절단된 사지를 쌓아 올린 사진을 휴대폰으로 촬영해두는 잔인함도 서슴지 않았다.
그는 다음날 여행 가방은 강가에 버렸고, 다른 신체 부위가 든 가방은 고이아니아 시 외곽에 갖다 버렸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그는 일종의 ‘처키 광팬’이었다. 그의 등에는 처키 문신이 새겨져 있었으며, 체포 당시 그의 휴대폰에는 처키 사진이 여러 장 담겨 있었다 그가 실제 얼마나 영화의 영향을 받았는지는 정확히 알려진 바 없는 상태.
하지만 최근 영국에서는 <더선>이 “분명 이 살인 사건과 처키 사이에는 연관성이 있다”고 뒤늦게 주장하고 나서면서 처키와 범죄사건의 연관성에 대한 논란이 다시 불붙고 있다.
<더선>이 이렇게 주장하는 데에는 사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지난 수년 간 영국에서는 처키에게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살인 사건이 여러 차례 발생했었다. 가장 대표적인 사건으로는 지난 1993년 런던에서 발생했던 ‘제임스 벌거 납치 및 살해 사건’이 있다.
▲ 여친 살해범 산토스 사건 당시 현장검증 모습. | ||
톰슨과 베나블스가 평소 <사탄의 인형> 시리즈를 즐겨 봤고 범죄를 저지르기 직전에도 이 영화를 보았다. 게다가 소년들이 벌거를 고문하고 살해한 방식도 영화와 지나치게 흡사했다. 당시 재판을 담당했던 판사 역시 “소년들의 살해 방법이 영화와 너무 비슷하다”라며 놀라움을 금치 못하기도 했다.
소년들은 벌거를 처키라고 여기는 듯했으며, 심지어 마치 진짜 처키를 죽이는 것처럼 행동하기도 했다. 사건의 전말은 다음과 같다. 대형 쇼핑몰에서 벌거를 납치하는 데 성공한 톰슨과 베나블스는 그 길로 인근 공터로 향했다. 인적이 드문 곳에 다다르자 소년들은 벌거를 인정사정없이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벽돌이나 돌을 사용하기도 했으며, 그것도 성에 차지 않았는지 쇠막대기로 때리기도 했다. 그리고는 숨을 거둔 벌거의 시체를 근처 철로에 눕혀 놓고 시체가 튕겨 나가지 않도록 머리 부분에는 벽돌을 올려놓았다. 단순한 사고로 위장하기 위해서였다. 마지막으로 두 소년은 벌거의 얼굴에 파란색 페인트를 뿌렸다. 벌거의 두 동강난 시체는 이틀 후 발견되었고, 소년들은 목격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곧 체포되었다.
우선 영화와 가장 눈에 띄게 유사했던 점은 벌거의 얼굴에 뿌려져 있던 파란색 페인트였다. 영화 속에서 처키는 어린이들이 전쟁놀이를 할 때 사용하는 물감총에 맞아 얼굴이 파란색 페인트로 범벅이 된다. 또한 처키가 영화 속에서 주인공 소년에 의해 숲 속으로 유인을 당해 처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것도 소년들이 벌거를 납치한 것과 흡사하다.
처키의 얼굴이 낫과 같은 도구로 심하게 긁혀서 엉망진창이 된 것처럼 소년들은 벌거의 얼굴을 쇠막대기를 사용해 흠집을 냈으며, 영화 속의 마지막 장면이 철로 근처에서 벌어진 것처럼 벌거의 시체를 철로 위에 버려두기도 했다. 또한 처키가 대형 회전날개에 빨려 들어가 박살이 나는 것과 비슷하게 벌거 역시 달리는 기차에 의해 사지가 절단이 나고 말았다.
▲ (왼쪽부터)세살배기 유아를 납치 살해한 11세 소년 로버트 톰슨과 존 베나블스. 96년 호주서 주민 35명 총으로 쏴 죽인 마틴 브라이언트. | ||
한편 이보다 앞선 1992년 말 맨체스터에서 벌어졌던 살인 사건 역시 처키를 숭배하는 한 미치광이의 소행으로 밝혀져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수잔느 캐퍼(16)를 살해한 다섯 명의 무리들 가운데 주동자였던 버나데트 맥닐리(24)는 평소 친구들 사이에서 처키의 열렬한 팬으로 알려져 있었다. 범죄에 가담했던 진 포웰은 법정에서 “처키는 바로 버니(버나데트)였다.
나도 그 영화를 봤는데 너무 똑같았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맥닐리는 납치한 캐퍼의 온몸을 끈으로 묶고 눈을 가린 채 집게로 이빨을 뽑는 등 잔혹한 고문을 가했다. 그리고는 캐퍼의 팔뚝에 마약이 든 주사를 강제로 놓으면서는 “나는 처키야. 처키는 노는 걸 좋아해”라는 영화 속 대사를 읊기도 했다. 고문하는 내내 집안에는 시끄러운 노래가 반복적으로 흘러 나왔으며, 가사 내용은 “나는 처키. 나랑 같이 놀래?” 등 처키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결국 캐퍼를 산 채로 집에 남겨둔 채 집을 태워버렸던 그는 현재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한편 지난 1996년 호주 태즈매니아에서 35명을 총으로 쏴 죽인 마틴 브라이언트(28)도 처키 영화를 즐겨봤던 정신분열증 환자였다. 평소 그는 <사탄의 인형>을 좋아했으며, 주변 사람들에게도 이 영화를 보면 힘이 솟고 기분이 좋아진다고 말하곤 했었다. 그의 전 여친은 “그는 처키를 사랑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탄의 인형>을 좋아하는 일부 영화 팬들은 “도대체 처키와 이런 살인사건들이 무슨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다. 문제는 영화가 아니라 어려서부터 비뚤게 자랄 수밖에 없었던 불우한 가정환경에 있다.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은 처키 영화를 보기 전부터 이미 반사회적인 행동을 일삼거나 폭력적인 성향을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고 지적했다. 또한 18세 이상 관람가인 영화를 버젓이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부모들에게 더 큰 책임이 있다고도 말했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