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비 와인스틴
올해 폭발했지만, 하비 와인스틴에 대한 소문이 돌기 시작한 건 꽤 오래 되었다. 그가 성 범죄를 저지르기 시작한 건 1970년대 말. 하지만 악행이 절정에 오르기 시작한 건, 그가 할리우드에서 파워맨으로 통하기 시작한 1990년대였다. 이후 ‘캐스팅 카우치’(casting couch), 즉 배우가 역할을 얻기 위해 실력자와 성 관계를 맺는 관행에 대한 이야기가 암암리에 돌았고 직간접적인 폭로도 있었다.
1998년에 <데이비드 레터맨 쇼>에 출연한 기네스 팰트로는 “와인스틴은 배우에게 상당한 능력을 발휘하도록 강요한다”고 말했는데, 여기엔 성적 관계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었다. 이탈리아의 호러 거장인 다리오 아르젠토의 딸로 배우이자 감독인 아시아 아르젠토는 자신이 주연과 감독을 맡은 <스칼렛 디바>(1999)에, 와인스틴이 자신을 강간했던 장면을 재현했지만 당시엔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다.
2005년 코트니 러브는 한 인터뷰에서 젊은 여배우들에게 이렇게 조언했다. “만약 하비 와인스틴이 포시즌 호텔에서 열리는 개인 파티에 당신을 초대한다면, 가지 마라.”
2012년 미드 <30 락>에서 제나라는 여성 캐릭터는 이렇게 말한다. “난 쇼 비즈니스 세계에서 밀려나는 건 두렵지 않아. 와인스틴의 섹스 제안을 세 번 이상 거절했거든.”
2013년 오스카 시상식 진행자인 세스 맥팔레인은 여우조연상 후보들에게 이런 멘트를 날리기도 했다. “여러분 축하합니다! 이제 더 이상 와인스틴에게 친한 척을 안 해도 되겠군요.” 하지만 이 모든 말이 그저 농담인 줄 알았다. 2017년 10월 전까지는 말이다.
아시아 아르젠토
좀 더 일찍 밝혀질 수도 있었다. 2015년 이탈리아 모델인 암브라 구티에레즈에게 부적절한 터치를 했던 와인스틴은 고소를 당했지만, 증거 및 범행 의도가 불명확하다는 이유로 기소되지 않았던 것. 언론에서도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하지만 2017년 10월 5일 <뉴욕타임스>에서 지난 30년 동안 하비 와인스틴이 배우, 어시스턴트, 피고용인들과 성 범죄 건으로 8번의 법적 합의를 했다는 기사를 터트렸다. 10월 10일엔 <뉴요커>에 와인스틴이 13명에게 성폭력을 가했고 3명을 강간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이후 줄잡아 90명의 여배우, 모델, 회사 직원 등이 증언했고 그 리더 격인 아시아 아르젠토는 11월에 긴 리스트를 발표했다. 와인스틴의 수법은 뻔했다. 캐스팅에 대해 이야기하자며 젊은 여성을 호텔 방이나 사무실로 부른 후 강제로 성행위를 한 것. 앤젤리나 졸리, 에바 그린, 대릴 한나, 애슐리 저드, 기네스 팰트로, 케이트 베킨세일 등 유명 여배우들이 동참하며 와인스틴이 자신들에게 한 짓을 폭로했다.
강간당한 사실을 고통스럽게 떠올린 사람도 13명이나 되었다. 아르젠토는 22살 되던 1997년, 프랑스 칸의 한 호텔 방에 기억을 떠올리고 싶지 않은 초대를 받았다. 로즈 맥고완은 프로덕션 대표에게 와인스틴에게 당한 사실을 털어놓았지만 무시당했고, 오히려 작품에서 하차해야 했다.
기네스 팰트로
애너벨라 시오라의 아파트엔 우격다짐으로 들어와 술을 마시고 성폭력을 행사했다. 과거 회사 직원이었던 호프 엑시너 다모르는 뉴욕 출장 때 동행했다가 일을 당했는데, 1970년대 말의 일이었다. 와인스틴의 범죄 행각이 약 40년 전부터 시작되었음을 알려주는 증언이었다. 마케팅 컨설턴트인 루시아 에반스는 배우 지망생 시절인 2004년, 클럽에서 와인스틴을 우연히 만났다. 다음 영화에 캐스팅을 시켜 줄 수 있다는 얘기에 와인스틴의 사무실을 찾아갔지만, 업계 거물이 원하는 건 오럴 섹스였다.
수많은 사람들의 폭로 앞에서 와인스틴은 “과거 그 분들에게 고통을 준 사실을 인정한다. 진심으로 사과한다”며, 문제 해결을 위해 일을 그만두고 정신과 치료를 받겠다고 했지만, 여론은 구속이었다. 그의 변호사인 리사 블룸은 “나이 든 공룡이 새로운 삶의 길을 익히고 있다”며 와인스틴을 두둔했다가 결국 사임했다. 그리고 대변인의 성명서가 있었다. 합의 없는 섹스는 전혀 없었고, 성적 제안을 거부한 여성에 대해 그 어떤 보복도 없었다는 변명이 요지였다. 이에 거센 비난을 받았다. 그리고 불길은 번져 ‘와인스틴 효과’라는 현상이 나타날 정도였다. 이 이야기는 다음 주에 이어진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