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로라하는 여배우들의 도전
영화 <건축학개론>을 통해 ‘국민 첫사랑’이라는 이미지를 얻어 각종 CF를 섭렵한 가수 겸 배우 수지. 그는 몇몇 드라마와 영화가 실패하며 주춤하더니 SBS 드라마 <당신이 잠든 사이에>를 만나 다시금 꽃을 피웠다.
이 드라마 속에서 수지는 여기자 남홍주 역을 맡았다. 평소에는 알이 큰 안경과 질끈 묶은 머리스타일 때문에 백수로 보기 십상이지만, 일단 취재에 들어가면 단단한 논리와 똑부러지는 말투로 무장한 사회부 기자다. 그는 예지몽을 꾸는 능력을 가졌는데 각종 사건사고를 꿈을 통해 미리 본 후 이를 막기 위해 앞장서는 당찬 캐릭터다. 수지는 이 작품을 통해 기존의 청순가련한 이미지를 벗고 새로운 옷을 갈아입는 데 성공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사진=‘투깝스’ 홈페이지
동갑내기이자 걸그룹 출신이라는 공통점을 안고 있는 수지와 친분을 이어온 혜리는 <투깝스>를 시작하며 수지의 조언을 얻기도 했다. 그는 “수지와 드라마가 방송되기 전에 이야기를 나누다가 ‘너도 기자야?’라고 되물었다. 수지한테 물어봐서 도움을 얻은 점도 많다”며 “비교가 되는 게 걱정되기도 하지만 내게 자극이 됐던 것 같다”고 말했다.
두 사람에 앞서 기자 역을 맡았던 배우로는 박신혜를 꼽을 수 있다. <당신이 잠든 사이에>를 집필한 박혜련 작가는 전작인 <피노키오>에서도 여기자를 여주인공으로 내세우며 박신혜에게 타이틀롤을 맡겼다. 게다가 거짓말을 하면 딸꾹질을 하게 되는 ‘피노키오 증후군’이라는 가상의 병을 접목시켜 옳은 말만 하고, 진실만을 보도해야 하는 사회부 기자 최인하의 캐릭터를 구축했다.
내로라하는 외모와 인지도를 갖춘 여배우들의 도전은 여기자에 대한 인식 변화에도 영향을 끼치는 모양새다. 기존의 경직되고 답답할 것 같다는 ‘기자’의 이미지 대신 세련되고 정의로운 이미지를 앞세운 덕분이다. 실제로 카메라 앞에 서야 하는 방송 기자들 중에서는 남다른 외모로 주목받는 이들이 적지 않다. 기자를 외모로 판단할 수는 없지만 외모를 통해 호감을 느끼는 대중의 정서상 기자의 외모 역시 평가 대상 항목에 포함될 수밖에 없다.
여기자를 연기한 박신혜, 혜리 등은 촬영을 앞두고 현직으로 활동 중인 여기자들을 만나 리포팅 방법을 배우고 현장의 분위기를 전해 듣기도 했다. 혜리는 “기자는 딱딱하고 지적일 것 같고 가까이 하기 어려울 것 같은 편견이 있었다”면서도 “그런데 내가 만난 기자는 굉장히 캐주얼하시고 ‘언니’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꾸미는 것도 좋아하더라. 내가 그동안 생각한 것과는 다르게 표현해도 되겠구나 싶었다”고 덧붙였다.
# 달라진 시대상을 반영하는 여풍당당
얼마 전까지만 해도 드라마 속에서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역할은 남자 배우들의 몫이었다. 의사, 검사, 판사, 형사, 기자 등 소위 말하는 ‘전문직’이라 불리는 직업군 종사자 중에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은 사회적 요인도 이를 거들었다. 하지만 여성들의 전문직 진출이 늘어나면서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도 이를 반영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여성 형사반장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미세스캅>과 성범죄를 전담하는 부서의 여성 검사를 내세운 <마녀의 법정> 등이 대표적이다.
드라마는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다. 유행을 선도하기도 하고, 반영하기도 한다. 최근 몇 년 사이 굵직한 사회적 이슈를 거치며 기자의 소명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상승했고, 몇몇 언론사는 치우친 관점을 투영한 보도 때문에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정의로운 언론에 대한 갈증이 커졌고, 이런 대중적 관심을 읽은 제작자들은 드라마 속 여기자 캐릭터를 통해 대리만족을 안기기 시작했다.
사진=‘당신이 잠든 사이에’ 홈페이지
과거 드라마에도 여기자 캐릭터도 종종 발견된다. <모래시계>의 이승연, <바람은 불어도>의 유호정, <리멤버>의 손태영 등이다. 하지만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주요 캐릭터라기보다는 주변인 성격이 강했고, 직업이 기자일 뿐 기자의 삶을 깊숙이 들여다보는 시도는 다소 부족했다.
반면 손예진이 주연을 맡았던 드라마 <스포트라이트>를 시작으로 여기자들을 새롭게 조명하려는 작품이 늘었다. 배우 김주혁의 유작인 tvN <아르곤>에서도 배우 천우희가 중요 인물로 등장했다.
한 중견 드라마 제작사 대표는 “요즘 드라마는 인물 간의 감정싸움보다는 굵직한 사회적 사건을 파헤쳐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사건을 쉽게 접하고 파헤쳐갈 수 있다는 측면에서 기자는 매력적인 캐릭터”라며 “특히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상승하고 능동적인 여성 캐릭터를 배치하려는 경향이 거세지며 여기자들이 드라마 중심인물로 대두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