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은 2012년 7월 17일 제1회 영재 입단대회를 통해 한날한시에 입단했다. 당시 신민준 14세, 신진서 13세. ‘한국바둑의 미래’라 불리던 이들은 바둑팬들의 기대대로 잘 성장해줘서 어느덧 한국바둑을 이끄는 중추세력 중 한 물결이 됐다.
신민준 6단이 농심신라면배에서 6연승 달성에 성공했다.
신진서는 아직 세계 타이틀은 없지만 8단에 한국랭킹 2위에 자리매김했고, 6단 신민준은 11월 현재 한국랭킹 12위에 랭크돼 있다.
현재 이들에 대한 평가는 어떨까. 기가(棋街)에서는 신진서의 경우 기량은 이미 초일류급에 올라섰다고 본다. 아마도 세계바둑 톱10을 꼽는다면 충분히 들어가지 않을까. 특히 신진서의 전투력은 이미 동 나이대의 이세돌을 넘어선다고 보고 있다. 다만 이창호처럼 느긋하고 신중한 맛은 없어 결정적인 장면에서 경솔한 실수가 자주 등장하는 것이 아쉽다.
신민준은 얼마 전 벌어진 제19회 농심신라면배에서의 활약으로 설명할 수 있다. 지난 11월 28일 부산 동래에 위치한 호텔농심에서 열린 제19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 2차전. 한국의 첫 주자로 나선 신민준 6단이 6연승 달성을 거뒀다.
신민준은 지난 9월 중국 선양에서 열린 1차전에서 4연승을 거둔 데 이어 부산에서 속개된 2차전에서도 중국 천야오예와 일본 야마시타 게이고를 연파해 도합 6연승을 이뤄냈다. 신민준은 다음 날 내친김에 대회 타이 기록인 7연승에 도전했지만 중국의 네 번째 주자 당이페이에 막혀 뜻을 이루지 못했다.
신민준의 연승기록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미 그 자체로 기량이 일정 궤도에 올라섰음을 알 수 있다. 이야마 유타 없는 일본은 그렇다 쳐도 1차전에서 신민준이 승리를 거둔 판팅위 9단, 쉬자위안 4단, 저우루이양 9단은 중국을 대표하는 정상급 기사들이다. 특히 5국에서 승리를 거둔 천야오예는 ‘한국기사 킬러’로 불릴 정도로 까다로운 상대였는데 초반에 일찌감치 승세를 구축했다.
1도
[1도]를 보자. 신민준(백)-천아오예의 대국. ▲의 붙임은 왼쪽 흑 석점 강화를 위한 상용의 붙임. 그런데 여기서 역습에 나선 백1의 안쪽 젖힘이 강렬했다. 백3은 유리한 축머리를 믿은 수. 다음 타개수단이 마땅치 않은 천야오예는 흑4·6으로 실리를 벌며 버텼지만 백7~11로 묵직하게 눌러가는 수법이 신민준 류. 흑이 답답해졌다.
2도
[2도] 수순이 좀더 흐른 상황. 하변에서 패싸움이 벌어졌으나 사활이 걸린 흑은 2로 머리를 내미는 정도. 그러자 신민준은 백3으로 기분 좋게 흑 석점을 따낸 다음 7로 붙여 좌하 백의 삶을 확인해둔다. “이래서는 무조건 이겼다고 봤다”는 신민준 6단의 국후 감상이 있었다.
3도
[3도] 신민준(흑)-당이페이. 실리는 백이 많지만 중앙 백이 엷어 흑이 우세한 국면. 흑은 중앙 백을 적절히 공략해 약간의 대가만 얻어내면 무난히 골인할 수 있는 장면이다. 흑1 다음 3으로 우측 백 넉점을 잡아두었으면 흑 승은 확실했다는 게 안형준 4단의 의견. 흑A가 선수여서 아무 뒷맛도 없다.
4도
[4도] 실전. 백1에 흑2가 패착. 이 수로 흑9나 A였으면 여전히 흑이 좋았다. 흑2는 추위를 탄 수. 좌변 흑이 갑자기 위험해보였을까. 백3을 선수로 당하고 7을 당해서는 흑의 리드가 사라졌다. 최후의 큰 곳 13을 백에게 빼앗겨서는 졸지에 역전. 신민준의 7연승이 좌절되는 장면이다.
비록 연승행진은 좌절됐지만 신민준이 박정환이나 신진서만큼 팬들에게 사랑받을 여지는 충분하다. 농심신라면배 연승행진에서 보듯 국내무대보다 국제전에 강한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신민준의 국내랭킹은 12위에 불과하지만 중국 일류 기사들을 상대로 주눅 드는 법이 없다. 현 세계랭킹 1위라는 커제를 상대로도 통산 2승 3패를 기록하고 있는데 마지막 5국은 반집패여서 아쉬움이 남는다.
아무튼 ‘18세 선봉’ 신민준의 활약으로 한국은 농심신라면배에서 현재까지 6승2패로 2승3패의 중국과 4패의 일본에 크게 앞선다. 남은 기사는 한국 3명, 중국 2명, 일본 1명이다.
안형준 4단은 “당이페이가 연승을 거뒀지만 3차전 첫 상대가 일본의 에이스 이야마 유타여서 전망이 밝지 않다. 그렇다면 중국은 커제, 일본은 이야마만 남는 셈인데 한국은 1~3위 박정환, 신진서, 김지석이 대기하고 있어 그 어느 때보다 한국의 우승 확률이 높다”고 내다봤다.
중국 당이페이와 일본 이야마 유타가 맞붙는 3차전은 2018년 2월 26일부터 중국 상하이에서 속개된다.
한·중·일의 대표 5명씩 팀을 이뤄 연승전으로 겨루는 ‘바둑삼국지’ 농심신라면배는 우승국이 5억 원의 상금을 전부 차지한다. 2위와 3위에겐 대국료만 주어질 뿐 상금이 없다. 이 밖에 개인 3연승 시 1000만 원의 연승상금을 획득하며 그 후 1승 추가시마다 1000만 원씩 더해진다. 그동안 한국이 11회, 중국 6회, 일본이 1회 우승을 차지했다.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