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7 회담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졸고 있는 나카가와 전 재무상. | ||
노무현, 김대중 전 대통령들의 서거에 이어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의 갑작스런 죽음과 배우 장진영의 위암 투병 중 별세, <사랑과 영혼>의 영원한 로맨틱 가이 패트릭 스웨이지의 췌장암으로 인한 죽음 등 올 들어 국내외 유명인들의 사망 소식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일본에서도 유명인들의 잇따른 사망 소식으로 국민들이 충격에 휩싸여 있다. 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짱구는 못말려>의 작가 우스이 요시토와 전 재무상 나카가와 쇼이치다.
우스이는 지난 9월 19일 아라후네산에서 변사체로 발견됐다. 그는 9월 11일 등산을 하기 위해 사이타마현의 집을 나서면서 “저녁에는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우스이의 부인은 하루가 지나도 남편이 귀가하지 않자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다.
8일 뒤 결국 그는 단풍으로 빨갛게 물든 아라후네산의 낭떠러지 아래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발견 당시 사체는 1210m 높이에서 낙하한 충격으로 뼈가 부서져 있었고, 얼굴도 심하게 망가져 신원을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였다고 한다.
우스이는 <짱구는 못말려>를 연재하면서 일본뿐 아니라 한국과 중국 등지에서도 큰 인기를 얻어왔다. 한 편의 만화로 총 19편의 극장판이 제작되는 등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일본의 국민 만화가였던 우스이의 죽음을 두고 세계의 팬들이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는 까닭이다. 그런 가운데 한편에서는 그의 죽음이 사고사가 아닌 자살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라후네산은 등산길이 잘 정비되어 있으며, 평소 낙하사고가 비교적 적게 일어난다는 점이 그 첫 번째 이유다. 또한 산 입구까지 우스이를 태워줬다는 택시 운전기사의 증언도 의문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택시 운전사는 “우스이는 반팔 티셔츠 차림에 검정 바지를 입고 있었다. 등산을 하러 가는 모습으로는 보이지 않았다”며 “언제 하산할지 묻자 ‘아직 정하지 않았다’고 머뭇거리며 대답했다”고 전했다.
한편 20년째 연재 중인 <짱구는 못말려>는 단행본만 무려 5000만 부 이상 팔렸는데, 최근 들어 판매가 다소 감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짱구는 못말려>를 출간했던 후타바샤 출판사의 한 관계자는 “우스이 씨는 최근 부진한 판매고로 괴로워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정말 자살을 결심하고 아라후네산에 올랐던 것일까. 그의 사체 주변에서 발견된 디지털 카메라에는 아라후네산의 아름다운 모습이 기록되어 있었다고 한다. 사건을 조사했던 한 경찰관은 “마지막 한 장은 도모이와라고 불리는 절벽에서 밑을 내려다 본 듯한 사진이 찍혀 있었다. 그 사진을 찍은 직후 발이 미끄러지면서 실족사 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작품의 이미지를 깨뜨리지 않기 위해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극도로 꺼릴 만큼 완벽주의자였던 그는 이웃주민들과의 관계를 위해서도 노력했다고 한다. 한 주민은 “우스이는 트레이닝복의 소박한 차림을 하고 강아지와 산책하거나 주민들과 함께 쓰레기 줍기 운동에 참가했다”며 “유명작가답지 않은 겸손했다”고 추억했다.
▲ <짱구는 못말려> 작가 우스이 | ||
‘짱구 만화가’ 우스이의 죽음에 일본에서는 국민뿐만 아니라 연예인들까지 앞 다퉈 애도의 뜻을 표하며 슬퍼하고 있다. 이에 반해 자민당의 나카가와 쇼이치 전 재무상의 사망소식을 대하는 국민들의 반응은 조금 다르다.
그는 10월 4일 오전 8시 15분께 도쿄 세타가야구의 자택 2층에 있는 침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체에는 특별한 외상은 없었지만 침대 위에 토한 흔적이 있었다고 한다. 경찰 조사국은 사인이 순환기관의 지병으로 인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조사를 계속하고 있다. 조사 관계자는 “유서가 없는 것으로 보아 자살은 아닐 것이라 추측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그의 죽음 직후부터 자살설에 대한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떠돌고 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일본의 자살 사이트에 올라온 익명의 글 때문이다. 글은 나카가와가 사망하기 하루 전인 3일 오전 10시께 쓰인 것으로 보인다. “내일 결심한 것을 행동에 옮기겠습니다. 정부에서 보도관제하지 않는 이상 언론에서도 크게 다루겠지요. 감사했습니다. 여러분, 안녕히. 마지막까지 폐를 끼칩니다. 합장”의 내용이다. 네티즌들은 ‘정부’와 ‘보도관제’ 등의 단어를 보아 나카가와가 쓴 유서일 것이라 추측하고 있다.
또 한 가지 이유는 그의 부친인 나카가와 이치로의 사망 이력 때문이다. 나카가와 이치로는 농무상을 지낸 유력 정치인이었지만 1982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낙선한 후 이듬해인 1983년 1월 삿포로 호텔의 샤워실에서 수면제를 복용해 자살했다. 마찬가지로 아들 나카가와 역시 지난 8월 총선거에서 낙선한 후 절망해 수면제를 복용하고 자살한 것이 아니냐 하는 것이다.
올해 2월 로마에서 열렸던 G7 정상회담에서 그는 만취 상태로 기자회견에 임해 전 세계적으로 비난을 산 바 있다. 그는 당시 컨디션이 좋지 않아 감기약을 복용한 상태에서 술을 조금 마셨다고 해명했지만 결국 지난 8월 총선거에서 낙선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측근들의 말에 따르면 낙선 후 그는 불면증을 호소하며 수면제를 복용해 왔다고 한다. 사체가 발견된 그의 침실에서도 수면제로 보이는 알약들이 놓여 있었다.
그의 죽음을 접한 일본국민들의 반응은 두 가지다. 유튜브에 올라온 나카가와 관련 동영상에는 “고인의 명복을 빈다”, “일본을 위해 애써주었다”는 등 애도의 글과 함께 “영원히 떠난 술주정뱅이”, “그는 일본의 수치였다” 등 비난의 글도 볼 수 있다. 한편 자민당 내에서는 “지난 총선거에서 자민당이 승리했다면 차기 총리가 됐을 인물이었다”, “정이 깊은 사람이었다” 등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김지혜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