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총리는 1100만 원을 넘어선 비트코인을 언급하며 관계부처의 검토를 지시했다. 하지만 이 총리의 우려를 비웃기라도 하듯, 12월 8일 비트코인은 2400만 원을 돌파했다. 고등학생과 대학생부터 주부까지, 가상화폐 투자 ‘붐’이 불고 있다. 정부는 박차를 가해 규제를 준비하는 모양새다. 사정 당국도 이낙연 총리의 지시에 발맞춰 가상화폐를 둘러싼 각종 범죄 혐의 포착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가상화폐가 재화인지, 화폐인지에 대한 기준조차 명확하지 않아, 수사는커녕 적용 범죄 혐의도 불분명한 게 현실이다. 심지어 가상화폐가 ‘뇌물’로까지 활용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상화폐는 기본적으로 주식 매매와 비슷한 방식이다. 다만 장 시작과 마감이 있는 주식과 달리 주문이 24시간 365일 쉬지 않고 돌아간다. 사진은 9월 서울 여의도에 문을 연 오프라인 거래소 코인원블록스. 연합뉴스
“가상화폐로 돈을 버는 사람들 사이에선 ‘뇌물’로 가상화폐를 주고받는다는 얘기가 나와요. 검사나 수사관, 경찰과 같은 사람들한테 가상화폐를 뇌물로 줘서 문제가 생길 때를 대비하는 ‘관리’를 하고 있다는 거죠.” (검찰 출신 법조인 A 씨)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가상화폐 이야기를 나누던 중 법조인의 입에서 갑자기 나온 말이다. 가상화폐가 뇌물로 쓰이고 있다는 것. 검찰 수사를 받은 적이 있는 거래소·가상화폐 채굴 업계 관계자들에게 직접 들었다는 A 씨, 그가 알려준 내용들은 상당히 구체적이었다.
가장 눈길을 끈 대목은 빗썸·코인원·코빗·업비트 등 국내 주요 가상화폐 거래소에서 일반적으로 거래가 이뤄지는 비트코인이 아니라, 국내에서는 거래가 불가능할 정도로 알려지지 않은 ‘알트코인(비트코인을 제외한 모든 가상화폐를 일컫는 용어)’을 뇌물로 주고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또한 뇌물로 수사를 받을 것에 대비해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가 아니라 해외 거래소에서 주고받고 있다는 게 A 씨의 설명이었다. 실제 아이씨오오픈렛저, 앳즈코인 등 시가 총액이 20억 원 수준에 불과한, 국내에서 거래할 수 없는 코인도 30여 개가 훌쩍 넘는다.
A 씨에 따르면 몇몇 큰손(가상화폐 업계 쪽)들은 “뇌물로 관리하고 있는 검사와 수사관 몇 명은 금방 동원할 수 있다”라며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얘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부풀려진 부분도 있을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 뇌물을 받았는지는 전혀 알 수 없지만, 가상화폐가 뇌물로 쓰일 수 있는 부분은 대비가 필요하다는 방증이 아니겠냐”고 지적했다. 실제 검찰 측도 이 같은 소문이 돌자 뇌물을 받은 검사나 수사관 등이 있는지 확인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실제 가상화폐가 뇌물로 활용된다면 수사가 가능할까. 검찰, 경찰, 국세청 등 ‘자금 흐름’에 관해 수사 및 조사를 하는 기관들의 말은 하나같이 “수사가 쉽지 않다”였다. 특히 A 씨의 얘기처럼 미국이나 일본, 혹은 그 외 제3의 국가에 설립된 가상화폐 거래소에서 뇌물을 주고받을 경우 수사가 ‘불가능에 가깝다, 완벽한 뇌물이 될 수 있다’는 게 중론이었다.
국세청 관계자는 “국내 거래소에서 뇌물로 특정 화폐를 받아도 누군가의 진술이 없으면 흐름을 전혀 살펴볼 수가 없는 게 가상화폐인데, 만에 하나 해외 거래소를 통해서 가상화폐를 주고받았다면 사실상 추적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가상화폐를 해외 거래소에서 처분한 뒤 국내의 본인 계좌로 이를 입금한 기록이 있다고 해도, 이에 대한 뇌물 제공자 측의 진술 등이 없으면 ‘수상한 낌새’를 찾아낼 수조차 없다는 게 그의 설명. 그는 “‘현금화’ 과정에서 해외에 페이퍼 컴퍼니를 만든다거나, 제3자를 거칠 경우 잡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고 우려를 표했다.
국내 거래소를 통해서 가상화폐를 뇌물로 받았다고 하더라도, 수사가 쉽지 않다. 가상화폐 거래소에서 돈을 찾거나 거래를 한 기록들을 확보할 수 있기는 한데, 수사를 하려면 통상의 계좌 추적과 같은 내사로는 알아낼 수가 없다. 누군가의 ‘진술’을 통해, 뇌물 수수자의 PC나 스마트폰 등의 거래 내역을 봐야 한다.
마약이나 총기 등 불법적인 상품의 거래 수단으로 가상화폐를 주고받았을 경우도 수사가 어렵기는 매한가지다. 보통의 인터넷 시스템으로는 수사가 불가능하기 때문. 다크넷(Dark net: 접속에 허가가 필요하거나 특정 소프트웨어로만 접속할 수 있는 별도의 네트워크 시스템)으로만 수사가 가능한 데, 워낙 보안에 취약해서 경찰과 검찰 등에 각각 1대씩만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과정이 복잡하기 때문에 수사가 오래 걸리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법조계는 오히려 가상화폐에 대한 명확한 ‘법적 정의’가 없는 것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가상화폐 관련 ICO(새로운 가상화폐를 개발하면 이를 분배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자금을 끌어모으는 크라우드펀딩방식)를 빙자한 사기 등 다양한 범죄들이 나오고 있어 우리도 주목하고 있다”면서도 “가상화폐 개발 명목 등으로 투자금을 받고 실제 사업에 활용하지 않으면 단순 사기로 처벌하면 되지만, 실제 가상화폐를 활용한 뇌물과 같은 복잡한 범죄가 발생하면 ‘재화’인지 ‘화폐’인지 정의에 따라 혐의가 달라질 수 있어 쉽게 수사를 착수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수사에 앞서 ‘어떤 혐의’를 적용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정부는 가상화폐가 ‘화폐도, 재화도 아니다’라고 판단했지만, 이 같은 판단이 오히려 범죄자들을 돕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실제로 지난 9월, 법원은 가상화폐 ’비트코인‘에 대해 몰수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가상화폐 정의에 대한 판단은 유보했지만, 법원도 “큰 틀에서의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말에 힘을 실은 것으로 보인다.
수원지법 형사9단독 반정모 판사는 불법 음란물 사이트를 운영한 혐의로 구속된 안 아무개 씨(33)에 대해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하면서도, 검찰이 ‘범행의 대가’로 받았다고 주장한 216 비트코인(재판 당시 10억 원어치)에 대해 “실제로 전부가 다 범행의 대가인지 불분명하고, 현금과 달리 물리적 실체가 없는 전자화된 파일의 형태”라며 몰수가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비트코인을 지켜내는 데 성공한 안 씨가 감옥에서 재판 후 3달을 지낸 사이에 가격이 4배(43억 원 상당) 넘게 뛰었다.
가상화폐에 대한 법적 처벌 근거가 불분명한 가운데, 가상화폐라는 단어가 ‘잘못된 표현’이라고 지적하는 목소리도 개진된다. 언론에서 주로 언급하는 ‘가상화폐’라는 단어가 본질을 제대로 설명하는 단어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가상화폐를 채굴하는 업체 관계자는 “영어로는 ‘crypto currency’인데, 가상화폐가 아니라 암호화 화폐라고 해석하는 게 정확하다”며 “‘실체가 없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언론에서 마음대로 가상이라는 단어를 붙여, 가상화폐라고 부르고 투기의 장으로만 비판하다보니 암호화 화폐의 본질적인 ‘가치’가 제대로 알려지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고 우려했다.
서환한 기자 bright@ilyo.co.kr
미국·일본 ‘적극 활용’ VS 중국·러시아 ‘거래 금지’ 한국 정부가 가상화폐 거래를 규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가운데, 해외의 경우는 어떨까. 미국, 일본 등은 주로 거래 자체를 규제하기보다 거래 과정에서 발생하는 투자 소비자에 대한 보호와 세금 부과 등에 방점을 찍고 있다. 반면 중국처럼 아예 거래 자체를 ‘불법’으로 규정한 곳도 있다. 가상화폐에 가장 적극적인 곳은 일본이다. 일본은 가상화폐를 활용한 거래를 허용하고, 결제수단으로 받아들였다. 거래소도 공식 허가했다. 자금결제법 개정안을 통해 11개의 가상화폐 취급업자들을 금융청에 등록시켜 관리하고 있다. 이를 통해 거래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득 부분에 대해서는 ‘세금’을 물리겠다는 입장이다. 일본은 2020년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가상화폐 유통 영역에서 앞서가겠다는 의지가 상당하다. 일본 금융권은 도쿄 올림픽이 개최되는 2020년까지 가상화폐 ‘J코인(가칭)’을 발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을 정도다. 미국은 가상화폐를 화폐로 보기보다는 일반적인 ‘상품’으로 본다. 이런 해석을 바탕으로 선물 거래도 허가했다.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는 가상화폐 관련 파생 금융상품 규제방침을 마련했는데, 비트코인 상품은 오는 18일 시카고옵션거래소(CBOE)에 출시된다. 미국은 가상화폐를 화폐가 아니라 상품으로 보기 때문에 재산에 매기는 소득세를 물려 세금을 거둔다는 계획이다. 스위스도 가상화폐 도입에 긍정적이다. 별도의 인허가 없이 가상화폐 업무를 할 수 있는데, 다만 스위스 금융당국은 가상화폐를 다루는 업자들이 자금세탁방지법을 준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중국과 러시아 등은 원천적으로 정부가 직접 나서서 가상화폐 거래를 금지하고 통제를 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 9월 ‘가상화폐 거래 전면 중지’를 결정했는데, 이 때문에 비트코인 등의 가격이 급락하기도 했다. 중국은 인민은행을 통해 정부 차원의 전자화폐를 만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에서도 비트코인 거래는 불가하다. 푸틴 대통령도 가상화폐가 사기와 돈세탁으로 활용된다는 점을 지적하며 가상화폐 거래 당사자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규정했다. 이밖에 인도와 베트남 등도 거래소 설립을 불허하고 가상화폐 거래를 정부 차원에서 규제하고 있다. [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