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파 핵심 박지원 의원이 세대교체론을 고리로 ‘대표 교체’에 군불을 지피면서 파장은 확산일로다. 특히 박 의원은 안 대표의 신구 측근인 김관영·김성식 의원을 세대교체 주자로 거론, 친안(친안철수)계 흔들기에 나섰다. 예산정국에서 바른정당과의 공조는 흔들렸다. 안 대표 복심으로 불린 최명길 전 의원은 선거법 위반으로 ‘직’을 상실했다. 안 대표가 사실상 외통수에 걸린 셈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12월 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민통합포럼 세미나 ‘양당 정책연대의 과제와 발전방안’에 참석하고 있다. 옆은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 박은숙 기자
12월 위기설의 분수령은 친안계와 호남파의 결별이다. 분당 여부가 ‘파국이냐, 봉합이냐’를 가르는 키포인트인 셈이다. 다만 안 대표와 전면전을 벌이는 박 의원이 세대교체론으로 맹공을 가하면서 12월 위기설이 ‘분당에서 대표 교체’로 전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박 의원은 12월 5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두 의원을 거론하며 “당 전면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성식 당 대표·김관영 원내대표론’이다. 안 대표가 취임 100일을 맞아 12월 4일 국회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인물교체·세력교체’를 피력한 지 하루 만에 맞불 작전을 펼친 것이다. 안 대표의 세력교체론이 당내 호남파를 겨냥했다는 말이 흘러나온 직후 통합 반대진영이 대대적인 반격을 펼침에 따라 양측의 내전은 극에 달할 전망이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박 의원 발언에 대해 “호남파가 안 대표를 용도 폐기하겠다는 선언”이라고 잘라 말했다. 바른정당과의 연대·통합을 두고 “저능아들이 하는 것”이라고 직격한 박 의원이 12월 위기설에 발맞춰 의도적으로 ‘분당에서 대표 교체’로 방향을 틀었다는 얘기다. 친안계가 12월 바른정당과의 통합 작업에 마침표 찍으려고 속전속결로 나오자, 이에 제동을 걸고 대표 교체론을 통해 국면전환을 꾀하려는 포석으로 분석된다.
양측 관계자의 속내를 들어보면, 분당보다는 당 사수에 방점이 찍힌다. 친안계나 호남파 다수는 “내년 지방선거에서 당을 지켜내지 못하면, 제3당의 지위조차 흔들린다”는 진단에 동의한다. 안 대표 측 관계자는 “내년 지방선거에 실패하면, 당이 소멸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있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호남파 한 관계자도 “당이 지난 총선에 이어 호남에서 다시 한 번 지지를 받느냐는 당의 존립과 직결된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당위적인 측면에선 양측 모두 ‘당 지킴이’를 자처한다. 그런데도 양측 관계는 일촉즉발 살얼음판이다. ‘당의 주인은 나’라는 의식이 양측 모두에 뿌린 박힌 결과다. 친안계는 창당 주역이자, 지난해 4·13 총선 녹색 돌풍이 안 대표의 인물 소구력에 기인한다고 보지만, 당내 다수파인 호남파는 민주당의 독주를 막으라고 명령한 전국 각지의 호남민심에 있다고 주장한다.
대중성에서 비교우위에 선 친안계나 당원 조직력에서 앞선 호남파가 탈당할 실익이 적은 셈이다. 더구나 최 전 의원의 직 상실로 39석이 된 국민의당 의원 가운데 비례대표는 13석으로 30%에 달한다. 이들은 탈당하면 ‘직’을 상실한다. 어떤 파국을 맞더라고 잔류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남은 선택지는 바른정당과의 빅텐트를 노리는 친안계와 독자적 생존을 모색하는 호남파의 치킨게임이다. 안 대표는 바른정당과의 통합을 통한 제3당 구축에 사활을 걸었다. 통합파가 다수인 당 원외위원장들은 12월 초 세력화에 시동을 걸고 측면 지원에 나섰다. 이들은 전당대회 투표권을 가진 원외위원장 중 80% 안팎이 바른정당과의 통합에 찬성한다고 보고 연말 연초에 속전속결로 통합을 추진할 계획이다. 당 안팎에선 친안계의 ‘연말 전 당원 투표’ 등 온갖 시나리오가 흘러나온다. 안 대표 측근인 이태규 의원이 “내년 초까지 큰 가닥을 잡아야 한다”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보인다.
당 관계자 말을 종합하면, 안 대표 측은 내년 지방선거에서 기초자치단체장 및 기초의원에서 전국적 기반을 마련하는 게 1차 목표다. 광역자치단체장 선거 등과는 달리, 기초선거는 중대선거구제로, 2∼3등까지 당선자를 배출할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등 거대 양당이 대권의 급행열차가 많은 광역자치단체장에 당력을 쏟아붓는 사이, 바닥민심의 진원지인 기초선거에서 녹색 바람의 열풍을 재연하겠다는 셈법이다.
민심의 기초바닥을 다진 뒤 안 대표 주도의 인재 영입이 성공한다면, 광역선거에서도 승부를 걸어볼 만하다. 이 경우 차기 대선을 위해 탈환이 절실한 수도권에서도 입지를 다지는 발판을 마련할 수도 있다. 이에 따라 안 대표는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인재 영입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 것으로 보인다.
개헌을 비롯해 선거구제 개편 등의 메가톤급 변수도 안 대표 측은 불리할 게 없다는 입장이다. 민주당과의 공조에 속도가 붙으면, 개헌파는 ‘반 한국당’ 깃발 아래 모인다. 호남파가 우려하는 한국당과의 연대 및 신 3당 합당에 대한 비판 여론을 불식할 수 있다. 거대 양당이 개헌 등에 소극적 행보로 일관한다면, ‘민주당 vs 한국당 vs 통합정당’의 3당 체제로 굳어질 수 있다고 본다. 지방선거판이 ‘민주당 vs 반 민주당’ 구도로 재편된다고 해도 야 3당의 수도권 연대는 살아있는 카드다.
그러나 각 시나리오가 안 대표에게 유리할지는 미지수다. 일단 바른정당과의 통합부터 난제다. 옛 친안계로 분류되는 한 의원은 “바른정당은 생각도 없는데 안 대표가 목매는 상황이 아니냐”라며 “당 대표 출마 때 만류했는데도 나갔다. 그때부터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호남 중진은 ‘반 안철수’ 깃발로 모였다. 통합반대파인 ‘평화개혁연대’는 원내교섭단체 규모 이상의 세를 규합하는 데 사력을 다하고 있다. 안 대표 측의 연말께 전 당원 투표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호남파 내부에선 안 대표 등 현 지도부의 전면 교체 및 비상대책위원회 구성 등 초강수가 유력한 카드로 떠오른 상황이다.
박 의원이 ‘김성식·김관영’ 의원을 띄우며 범안철수계 갈라치기에 나선 것도 이런 맥락으로 보인다. 호남파 중진 의원은 “안 대표로는 안 되는 게 현실 아니냐”라며 “통합 시기도 내용도 명분도 없는 아마추어 리더십으로 당 신뢰를 추락시켰다”라고 힐난했다. ‘평화개혁연대’를 주도하는 정동영 의원은 앞서 안 대표를 향해 “재벌 오너같이 정치를 한다”고 비판한 바 있다.
안 대표의 정치적 입지는 12월 6일 국회에서 열린 ‘평화개혁연대’가 주최한 ‘국민의당 정체성 확립을 위한 평화개혁세력의 진로와 과제’ 토론회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안 대표는 반대편의 목소리를 듣고자 참석,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 매진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당원 등 참석자들은 일제히 야유를 보냈다.
천정배 의원도 “안 대표가 반개혁·반민심의 적폐연대를 꾀한다”라고 비판했다. 안 대표는 토론회 후 기자들과 만나 당내 반발에 대해 “선동하는 사람은 있기 마련”이라며 마이웨이를 선언했다. 이에 대해 박 의원은 “그렇게 받아들이면 지도자가 아니다”라고 힐난했다. 양측의 갈등이 수습 국면으로 가기는커녕 한층 증폭하고 있는 셈이다.
이들의 운명 데드라인은 연말연초다. 이 시기에 친안계의 전 당원투표를 통한 중도보수통합과 호남파의 대표 교체를 위한 비대위 구성이 정면충돌할 것으로 보인다. 캐스팅보트는 호남 초선이다. 김경진 김광수 김종회 박주현 윤영일 이용주 이용호 장정숙 정인화 최경환 의원 등 10명에 달한다. 그간 친안계와 호남파의 자중을 촉구한 이들이 파국 국면에서 어느 쪽에 서느냐에 따라 양측의 세력구도가 뒤바뀔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전직 의원은 “20대 총선 전 야권발 정계개편 당시 친문(친문재인)계 인사들이 돌아가면서 탈당을 만류했지만, 비문(비문재인) 호남파는 당을 박차고 나갔다”라며 “이번에도 그럴 가능성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바른정당과의 통합은 안갯속이다. 연대·통합의 시너지도 물음표다.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는 친안계보다 빅텐트에 적극적이지 않다. 예산안 엇박자로 정책연대도 불투명하다. 안 대표는 전 당원투표를 제안했던 복심 최명길 전 의원의 직 상실로 오른팔까지 잃었다. 안 대표가 총체적 난국에 빠졌다.
윤지상 언론인
‘중도보수통합’ 가능할까? ‘지지도 20%’가 성패 분수령 “20%의 유권자를 잡아라.” 중도보수통합의 성패를 가르는 분수령은 ‘지지도 20%’ 달성 여부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의 시너지효과도 이 변곡점에서 결정된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여론조사 지표를 눈여겨보라”며 “여러 부분이 ‘키워드 20’에 걸친다”고 밝혔다. 대표적으로는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층의 차이 ▲무당층 비율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합당을 전제로 한 지지도 등이다. 문 대통령을 지지하지만, 민주당을 비토하는 ‘이중 그룹’은 정부 출범 직후부터 꾸준히 나타난 현상이다.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이 12월1일 발표한 11월 5주차(11월 28~30일 전국 성인 남녀 1010명 대상 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 조사 결과에 따르면 문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는 75%였다. 대통령 지지도 조사에서 의견 유보층은 8%에 그쳤다. 부정평가 비율은 17%였다. 민주당 지지도는 47%로 조사됐다. 문 대통령의 지지층보다 28%포인트 낮은 수치다. 문 대통령을 지지하는 유권자 3명 가운데 1명은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는 셈이다. 같은 기간 정당 지지도 조사에서 나타난 무당층은 22%에 달했다. 대통령 지지도 조사의 유보층(8%)보다 약 3배 많은 수치다. 대통령과 정당 지지도 조사에서 이견을 보인 계층 중 다수가 무당층으로 이동한 결과로 보인다. 국민의당 싱크탱크인 <국민정책연구원>이 11월 18∼19일 이틀간 전국 성인 남녀 1050명을 대상으로 바른정당과의 통합을 전제로 한 지지도 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0%포인트)에서 통합정당은 19.2%를 얻었다. 이는 양당 합산 지지도(11.8%) 대비 7.4%포인트 높다. 통합정당 지지도는 자유한국당(11.7%)을 따돌렸다. 민주당 지지도는 47.5%로, 다당제에서 한 지지도(49%)와 엇비슷했다. 두 여론조사 결과의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안철수·유승민 대표의 통합 행보는 점차 속도를 내고 있다. 안 대표와 유 대표는 12월 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양당 의원모임인 <국민통합포럼> 세미나에 나란히 참석했다. 안 대표가 “다당제는 한국 정치의 발전이자 시대의 흐름”이라고 말하자, 유 대표는 “우리가 정책적으로 추구하는 공통분모가 굉장히 많다”고 화답했다. 그러나 새해 예산안 처리를 놓고 국민의당이 더불어민주당과 연대 전선을 형성한 반면, 바른정당은 정부 예산안 처리에 반대하면서 첫발부터 삐걱했다. 두 대표의 험로를 예고한 대목이다. [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