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대방로에 위치한 민중당 당사에서 김재연 민중당 대변인이 <일요신문>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최준필 기자
― 2012년 청년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다. 의원직을 상실했을 때 심정은.
“당시만 해도 국회 안에서 청년비례대표 역할을 부여 받은 사람이 없었다. 국회에 들어오기 전부터 등록금 관련 문제, 대학 교육 개혁 문제 등 청년과 관련된 사회정치 운동을 13년 정도 했었다. 국회에서 전면적으로 결과물까지 볼 수 있는 상황으로 나아갈 수 있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뜻한 바를 이루지 못했다. 하고 싶었던 것들을 대부분 하지 못한 상태에서 의원직까지 상실한 상태가 믿어지지 않았고 죄송스러운 마음도 많았다.”
─ 통진당 해산이 잘못됐다고 보는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당을 해산 시키는 게 옳은 일인가. 통진당은 소외된 계층인 노동자·농민을 대변하는 정당이다. 당연히 부자들한테 세금 많이 매기고 노동자들 임금 올려주자는 주장을 했던 것이다. 그 주장이 북한의 사회주의하고 유사하다는 이유로 해산 시킨다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중국이나 북한처럼 일당체제 나라가 아니지 않나.”
─ (가부를 떠나 통진당 해산에 단초를 제공했던) 이석기 전 의원은 ‘내란선동죄’로 유죄 판결을 받지 않았나.
“내란음모죄는 무죄가 나오고 내란선동죄가 유죄가 나왔다. 국민 상식으로 봐도 말이 안 된다. 이석기 전 의원은 60분짜리 강연을 한 게 다였다. 전쟁을 하자는 것도 아니었고 칼을 든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평화에 대해서 얘기했을 뿐이었다. 그런 것들이 정권의 맘에 들지 않아 종북으로 몰아간 것이다. 법원은 RO(Revolutionary Organization·지하혁명조직)도 없고 내란 음모도 없다고 판결을 내렸다. 당시 사회를 봤던 경기도당위원장도 5년형을 받고 광주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사회를 본 시간이 다 합쳐도 10분이 채 안 될텐데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 민중당이 이석기 전 의원 석방 시위를 주도하고 있다. 이 전 의원을 석방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당에서 공식적으로 이석기 전 의원의 석방 시위를 주관한 적은 없다. 통진당 해산이라는 결론을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미쳤던 게 이석기 전 의원의 내란 음모 사건이다. 처음부터 내란 음모 사건은 교묘하게 기획된 정치 공작이라고 판단했었다. 국정원과 검찰에서 공개한 수사 자료가 말도 안 되는 것들이 많았다. 강연 녹취록에선 오류가 1000군 데 이상 발견되기도 했다. 당시 국정원은 ‘댓글 사건’으로 존폐 기로에 섰었고 정권이 흔들리는 상황을 이 건으로 무마하려고 했었던 것이다. 이 전 의원은 대표적인 박근혜 정권의 정치 희생양이라고 생각한다. 희생자들은 지금 나와도 늦다고 생각한다.”
지난 2014년 2월 13일 이석기 전 의원의 결심공판 당시 김미희 전 의원(좌)과 함께 선 김재연 전 의원의 모습(우). 김 전 의원은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석기 전 의원의 석방을 적극 주장했다.
“고 김영한 민정수석 업무 일지에 보면 통진당 관련 메모들이 60여 군데 등장한다. 그만큼 청와대에서도 통진당 문제가 고민거리였을 것이다. 현재 국회의원 지위 확인 소송을 하고 있다. 1심에선 헌재에서 내려진 결정에 대해서 행정법원에서 다룰 수 없다는 결과를 받았다. 2심에서는 헌재 결정에 대해서도 법원이 다룰 수 있다는 판결이 나왔다.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고 본다. 모두 박근혜 정권 때 나왔던 판결이었다. 대법원 선고를 기다리고 있는데 시간이 걸릴지 모르겠지만 박근혜 정권의 반민주성이 투영된 결과를 바로 잡고 싶다.”
─ 근황이 궁금하다.
“2016년 봄엔 민중연합당 후보로 국회의원 출마를 했었고 겨울부터는 경기도 의정부시에 <인생서점>이라는 동네 책방을 운영하고 있다.”
―통진당이 해산된 뒤 출판업에 종사한다는 근황도 있다.
“2016년 봄에 이른바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 사고’가 발생했다. 전 국민적인 관심을 갖는 상황에서 뭐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시민들의 포스트잇 편지와 추모현장의 사진들을 모아 기록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출판사를 알아봐도 돈이 안 되다보니 쉽지 않아서 독립 출판을 했다. 그렇게 나온 책이 <나는, 또한 당신입니다>다. 다들 내가 만든 책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나도 엉뚱하게 취지가 뒤섞여 버릴 수 있으니, 알려지는 걸 원치 않았다. 많이 팔았지만 적자다. 하하.”
― 지난해 아프리카TV 방송도 화제였다.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청년들과 소통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청년들을 만나기 의외로 힘들었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 후보가 TV토론회에서 나보고 ‘국가관이 의심스럽다’고 얘기할 정도로 유명했는데 대학생들은 대부분 저를 모르더라. 그만큼 정치에 무관심했고 정치 혐오가 심했다. 배지를 땠으니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보자 생각하다가 2015년 8월부터 6개 월 간 아프리카 TV 에서 <서른 즈음에>를 방송했다. 생각보다 어렵더라.”
― 민중당 얘기를 하고 싶다. 민중당을 소개해 달라.
“지금은 정치 문법 자체가 바뀌었다. 과거엔 서울대 운동권 출신이 진보정당의 주류였다면 이제는 ‘내가 더 정치를 잘 할 수 있다’는 분들이 많아졌다. 촛불 집회만 봐도 정치인들이 무대에 못 서고 아기 엄마나 청소년들이 무대에 올라서 소신 발언을 하지 않았나. 민중당의 얼굴은 소외된 계급계층인 노동자 농민 청년들이다. 내년 지방선거에도 마트 노동자, 학교 급식실 노동자, 20대 아르바이트 청년 등이 출마를 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 옛 통진당 인사들이 대거 합류해 ‘도로 통진당’이란 비판이 나온다. 어떻게 생각하나.
“나는 어떤 정당에도 가입할 수 없고 대한민국 안에서 정치 참여나 당원이 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지지 말아야 하는가. 이를 되묻고 싶다. 법원에서 그런 판결을 내진 않았다. 통진당 해산으로 인해 날개가 꺾이긴 했지만 내가 추구하던 정치 방향이나 소신까지 꺾이진 않았다. 그걸 실현할 수 있는 정당이 있다면 그 곳에서 활동하는 게 당연한 일이다.”
─ 최근에 논평에서 ‘국정원 간판만 바꿔 다는 꼼수’라고 지적했다. ‘통진당 시즌2’ 논란과 비슷한 맥락 아닌가.
“국정원 개혁에 대해선 민변, 참여연대 등 인권 단체에서도 비슷한 입장을 갖고 있었다. 굳이 제가 하니까 통진당과 연결시키고 있다. 앞으로 나는 ‘국정원’ ‘미국’ ‘통일’에 대해선 말도 꺼내면 안 되는 것인가. 응당 해야 될 얘기였다. 시골 가서 조용하게 살지 않는 이상 계속 나올 얘기라고 생각한다.”
─ 이런 논란들을 예상하지 않았나.
“입당 하는 게 맞는지 고민하던 시기가 있었다. 엄청난 ‘종북몰이’ 속에서 내가 그 당에 가면 당에서 좋아할까란 고민을 했다. 다행히 민중당에선 어떤 사람도 배제하지 않고 받아드리겠다고 해서 입당하게 됐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말처럼 처음부터 색깔이 그렇게 비춰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 민중당의 지향점은 무엇인가.
“민중당은 대한민국 정치의 중심 주체가 달라져야 한다고 본다. 민중에게 정치 공간을 열어주는 게 당의 지향점이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바위가 노란 계란 물로 스미고 많은 사람들이 계란을 던지다 보면 바위가 깨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직접 정치가 어떻게 구현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게 1차 목표다.”
김경민 기자 mercur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