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홍 대표가 자주 쓰고, 또 가장 좋아하는 말이라고 얘기하는 ‘개가 짖어도 기차는 간다’라는 말의 원조는 YS다. 오랜 세월 동안 정통 야당 당수로 활약하며 김대중(DJ)과 함께 카리스마형 정치인으로서 우리 정치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YS의 리더십. 홍 대표는 이를 본받고 싶어 하는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홍 대표는 YS처럼 거침없는 언행, 즉 쾌도난마형 당 운영을 통해 자유한국당을 장악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홍준표 사당화를 막아야 한다”며 당내에 이른바 ‘반홍(反洪) 세력’이 결집 중이다. 홍 대표가 YS식 카리스마를 통해 당 장악력을 높일 수 있을까. 아니면 반홍 세력에 밀려 당의 주도권을 내줄 것인가. 정치권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박은숙 기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경선에 나왔다가 단일화(한선교)를 이뤄낸 이주영 조경태 한선교 의원이 냈던 출사표에는 ‘반홍 연대’의 필요성이 담겨 있었다. 홍준표 대표 전횡을 막아야 한다는 것으로 당내에서 이에 동조하는 의원들이 결코 적지 않은 숫자라는 게 반홍 연대를 들고 나온 의원들의 한목소리였다.
12월 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있었던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경선 후보 단일화를 위한 토론회에서는 ‘반홍의 불씨’를 큰불로 키워내려는 시도가 잔뜩 묻어났다. 이주영 조경태 한선교 의원은 이날 토론회에서 홍준표 대표를 겨냥, “당의 사당화를 막겠다”라고 입을 모았다. 홍 대표가 독선적으로 당 운영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었다.
단일 후보가 된 한선교 의원은 “당의 최고 지도자가 상대 계파에 바퀴벌레, 암덩어리라고 하고, 정말 세상에서 제일 더러운 물질인 고름이라는 말이 당 대표 입에서 나오는 순간 저녁밥을 더는 먹을 수 없었다”며 홍 대표를 직접 겨냥했다.
후보 단일화에 성공한 이른바 ‘당내 중립지대’는 결선투표에만 오르기만 한다면 ‘비박(비박근혜)’ ‘비홍(비홍준표)’ 진영 지지를 끌어 모은 뒤 반홍 세력을 형성, 원내대표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들은 당내에 뚜렷한 계파 색채를 지니지 않은 중립성향 의원들이 70∼80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이들이 홍 대표에 대해 상당 부분 부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대구경북에 지역구를 둔 자유한국당 한 의원은 “홍 대표가 대표가 된 것은 대안이 없다는 이유였는데 결국 홍 대표가 최선도 아니고, 심지어 차선도 아니었다는 의미”라며 “당의 지지율이 제자리걸음 상태에 빠져들고 예산 국회 이후 비판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홍 대표에 대한 피로감이 커져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귀띔했다.
사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태 이후 자유한국당은 기댈 곳이 없었다. 선거의 여왕이었던 박 전 대통령이 저리도 허무하게 무너질 줄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아무도 몰랐다. 결국 장미 대선을 위해 급조된 대통령 후보, 급히 만들어진 당 대표가 홍준표 전 경남도지사였고 자유한국당은 다른 선택을 할 묘책이 없었다.
홍 대표가 당을 이끌고 있지만 “당이 잘된 게 뭐 있느냐”는 목소리가 최근 나오기 시작했다. 끝없이 터져 나온 홍 대표의 막말 논란도 지역구에 갈 때마다 의원들을 괴롭히는 소재였다. 이런 식으로 가서 내년 지방선거를 치를 수 있느냐는 걱정도 적잖은 의원들이 한다. 자신의 선거구 수족이라 할 수 있는 지자체장·지방의원들의 생존을 담보할 수 없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는 얘기다.
자유한국당 한 현역 의원은 “홍 대표 막말에 대해 지역구 유권자들이 비판을 많이 한다. 그때마다 솔직히 변명할 소재가 많지 않다. 문재인 정부 실정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는 해명도 이제 잘 먹히지 않는다. 막말로 끝나면 괜찮은데 막말이 결국 자유한국당에 대한 유권자들에 대한 신뢰 결여로 이어진다”고 털어놨다.
원내대표 후보군이었다가 경선에 참여하지 않은 나경원 의원은 홍 대표의 막말 논란과 관련, 최근 페이스북을 통해 “홍 대표는 선거 초반부터 겁박과 막말로 줄 세우기에 여념이 없다. 보수의 혁신, 변화의 가장 큰 걸림돌은 홍 대표의 막말이다. 보수의 품격을 떨어뜨리고 국민을 등돌리게 하는 막말을 더 이상 인내하기 어렵다”며 강력 비판했다.
그러나 홍 대표는 자신의 ‘스타일’을 고칠 생각이 없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반홍 세력’을 키우고 당내 불협화음을 또다시 만들어내는 빌미를 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홍준표 대표는 12월 5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토론회에서 “지금 한국당이 품격을 논할 때인가. 한국 보수정당에서 가장 품격 있던 분은 이회창 총재, 품격으로 가장 논란이 됐던 분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논란만 될 뿐, (품격으로) 사람을 재단하는 가치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할 일 없는 분들의 말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말을 신봉한다. ‘개가 짖어도 기차는 간다’”고 했다.
“‘암’이나 ‘고름덩어리’는 특정 계파를 겨냥해 한 말 아닌가”라는 질문에는 “암덩어리가 맞다. 암덩어리를 뭐라고 표현하는 게 좋겠나. 누가 나보고 암덩어리라고 하면 받아들이겠다. 품격 있게 어떻게 하나. ‘암덩어리님’이라고 하면 되겠나(웃음)”라고 대답했다. “언어표현을 바꿀 생각은 없나”라는 직설적 질문에는 “사람이 죽을 때가 됐을 때 본질을 숨긴다. 나는 아직 죽을 때가 되지 않았다”며 언어 표현만큼은 ‘마이 웨이’를 하겠다는 뜻을 재확인시켜줬다.
반홍 세력이 나타나고 있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지만 홍 대표는 당 장악력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는 관훈토론회에서 “이 당은 2011년도 때처럼 나를 쫓아낼 명분이 없다. 책임당원의 74% 지지를 받아 당 대표에 당선됐다. 인적청산, 조직혁신을 거친 뒤 연말에는 신보수주의를 선언하면서 정책혁신을 하겠다”고 말했다. 당을 이미 확실히 장악했으며 장기비전을 세울 만큼 ‘롱런’할 것이라는 의지도 내보인 셈이다.
그런데 홍 대표 의지와는 달리 자유한국당 성적표는 신통치 않다. 문재인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이 70%대에서 좀처럼 내려가지 않는 가운데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 지지율은 20%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CBS> 의뢰로 12월 4일 발표한 각 당 지지율 조사결과를 보면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은 52.0%를 기록하며 1위였고, 자유한국당 지지율은 17.6%에 머물렀다. 다음은 한 전직 국회의원 말이다.
“홍준표 대표는 장점이 많은 사람이다. 국회의원에다 도지사까지 했으니 경험도 엄청나게 쌓았다. 자유한국당이 이를 잘 활용해야 한다. 홍 대표도 YS를 존경한다면 그의 돌파력만 본받을 것이 아니라 남의 말을 들을 줄 알고 널리 인재를 구했던 YS의 정치 기술도 배우면 좋겠다. 국가도 그러하지만 정당도 마찬가지인데 지금의 추세는 협치와 타협이다. 홍 대표가 옛날 보스 정치를 흉내 내면 안 되고 당내 집단지성을 활용한 협치와 타협을 통해 답답하더라도 느린 정치를 할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반홍 세력을 품고 극복할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
최경철 매일신문 서울 정경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