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락쿠마 곰(릴렉스 곰. 위사진)과 카피바라씨 | ||
일본에서 쏟아지는 수많은 캐릭터들 중 비즈니스에서 성공하는 캐릭터는 사실 극히 일부다. 뚜렷한 목적 없이 만들어진 캐릭터는 금세 버려진다. 일본을 비롯해 해외에서 활약 중인 캐릭터들은 출생일과 출생지, 좋아하는 음식과 좋아하는 말, 싫어하는 것 등이 자세히 정해져 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인간과 다름없다. 그리고 그렇게 정해진 캐릭터의 성격을 바탕으로 타깃 층을 공략해 엄청난 규모의 시장을 형성한다. 1조 6000억 엔(20조 1000억 원) 규모인 일본의 캐릭터 비즈니스. 그렇다면 그 속에서 성공하는 캐릭터의 패턴은 어떤 것일까.
첫 번째로 항상 ‘뭔가 부족’하다는 것. 일본의 한 경제연구소에서 발간한 ‘캐릭터 비즈니스 백서 2009년 판’의 가장 인기 있는 캐릭터 순위에서 4위를 차지한 리락쿠마(릴렉스 곰)의 경우가 그렇다. 1위는 디즈니랜드 캐릭터, 2위는 산리오(키티), 3위는 피너츠(스누피), 5위는 도라에몽, 6위는 건담 등의 순이었다.
2003년 데뷔한 이래 7년간 장수하고 있는 리락쿠마는 자회사와 라이선스 상품을 포함해 1000억 엔(1조 3000억 원) 규모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공식사이트 회원 수만 45만 명, 라이선스를 계약한 업체는 120곳에 달한다.
리락쿠마는 보통의 캐릭터들과 달리 20~30대 성인 남녀를 타깃으로 한 상품들을 출시하고 있다. 리락쿠마를 테마로 한 골프 클럽 헤드커버나 체지방계 등의 상품을 보면 선호층이 성인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또한 도요타자동차의 ‘비츠’ 광고에 3년 연속으로 출연하는 등 그 인기는 식을 줄 모르고 있다. 리락쿠마의 가장 큰 매력은 ‘뭔가 부족한 듯’보이는 단순한 디자인과, 캐릭터에서 느껴지는 여유로움이다. 탈을 쓰고 있는 곰을 모티브로 스트레스 속에서 살아가는 일본인들에게 ‘정신적 치유’에 대한 욕구를 잘 반영한 캐릭터라는 평을 받고 있다.
또 다른 예인 광고회사 (주)덴츠가 개발한 마메시바(콩 시바)는 캐릭터 광고의 주인공으로 유명하다. 캐릭터로 제품을 홍보하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 자체를 홍보하기 위한 광고라는 점 외에도 13회까지 연속 제작되고 있다는 점이 놀랍다. 광고에서는 순수한 목소리의 마메시바가 ‘그거 알아? 캥거루 배에 달려있는 주머니 속은 엄청 고약한 냄새가 난대’라는 식의 재미있으면서도 상식이 될 만한 정보를 알려준다. 데뷔 1년이 조금 지난 현재 그림책은 30만 부가 팔렸으며 마메시바를 테마로 한 상품 가짓수는 500점이 넘는다.
이외에도 쥐처럼 생긴 설치류인 카피바라를 모티브로 한 카피바라 씨는 자체 제작 상품이 850종이 넘으며 85억 엔(약 1110억 원) 이상의 시장 규모를 자랑한다.
두 번째 패턴은 ‘시대성을 반영한’ 캐릭터가 성공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앞서 소개한 리락쿠마도 데뷔 해인 2003년에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하지만 경기불황과 그로 인한 극심한 경쟁 등 시대가 변화하면서 조금씩 팬을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다. 지쳐있는 성인들에게 어깨를 다독이며 ‘조금쯤 쉬어가도 괜찮아’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캐릭터의 멘트나 행동 덕분이었다.
한편 친환경 정신이 중요시되는 시대에 맞춰 최근에 등장한 것이 바로 에코 캐릭터다. 재활용률 100%의 박스를 소재로 한 하코이누(상자 개)는 환경청에서 실시하는 에코 프로젝트의 이미지 캐릭터로 채용되기도 했다. 각 기업에서도 자사의 에코 이미지를 홍보하기 위한 에코 캐릭터 만들기가 한창이다.
한편에서는 어렵게 캐릭터를 창출해내지 않고 유명인을 캐릭터화함으로써 쉽게 인지도를 높이는 방법을 이용하기도 한다. 미야자키현의 히가시고쿠바루 히데오 지사(52)는 당선 전까지 코미디언이었던 자신의 인기를 이용해 지역에서 생산되는 상품을 홍보했다. 그의 일러스트가 들어간 지역상품은 출시 즉시 완매될 정도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지금까지 귀여운 캐릭터로 활용 가능한 사업이라면 문구나 장난감, 어패럴 쪽이 강세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 시장이 조금씩 넓어지고 있는 추세다. 가장 큰 변화는 자치단체나 관공서의 캐릭터 응용이 활발해졌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나라현의 천도 1300년 축제 기념 공식 마스코트인 센토 군, 만토 군과 나무 군의 성공이다. 처음 센토 군이 선정되자 나라현의 마스코트를 나라현 주민이 아닌 외부의 디자이너에게 발주했다는 비난이 들끓었다. 결국 당국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캐릭터 공모전을 펼치기에 이르렀고 그때 당첨된 만토 군과 사원단체에서 불상을 연상해 만든 나무 군이 발표되면서 한 축제에 3가지 캐릭터가 등장, 서로 경쟁하게 됐던 것이다. 하지만 도리어 이 작은 소란을 통해 얻은 홍보효과는 엔화로 ‘억 단위’에 이른다고 관계자는 전했다.
그 외에도 모에 캐릭터(순정적인 미소녀 캐릭터)로 홍보에 나선 사찰과 미소년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일본 철도 광고도 있다. 고정된 이미지의 자치단체나 관공서를 대신해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직접 전달해주는 캐릭터들이 적극 활용되고 있는 좋은 사례다.
현재 일본 캐릭터산업에서 무엇보다 중요시되고 있는 것은 제작이 아닌 육성에 있다. 장수하는 캐릭터들을 살펴보면 시대에 맞춰 진화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이스바 가리가리군은 1981년 등장한 이래 수십 번의 변화과정을 겪었다. 그뿐 아니라 가리가리군의 캐릭터 사업 전개를 위해 지난 2006년에는 회사 내에 가리가리 프로덕션을 설립해 다른 업종과의 콜라보레이션(협력)을 용이하게 했다. 그 결과 2008년도에는 2억 5500만 개의 아이스바가 팔려나갔다.
캐릭터산업은 당장의 이익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겐 쓴맛만 남기게 될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캐릭터를 자식처럼 키워낸다면 우리나라에서도 다양한 ‘대박’ 캐릭터들을 만나게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김지혜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