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1억 원 수수’ 의혹에 휘말린 최경환 자유한국당 의원은 “사실이라면 할복 자살을 하겠다”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심리학자는 이에 대해 “잘못에 대한 반성과 인정이 없을 때 나타나는 심리현상”이라고 분석했다. 고성준 기자
최 의원처럼 목숨을 걸었던 정치인은 한둘이 아니다. 이완구 전 총리는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3000만 원을 수수했다는 의혹을 받자 “증거가 나오면 목숨을 내놓겠다”고 말했다. 당시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그 말을 듣고 섬뜩했다”며 “목숨을 운운하는 것은 총리로서 부적절한 발언이고 극단적인 표현으로 국민들을 당혹스럽게 했다”고 지적했다.
19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던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또한 수차례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내걸었다. 홍 대표는 “3 대 1 구도에서 우리가 못 이기면 제주 앞바다에 들어가겠다”, “우파 패배하면 낙동강에 빠져 죽어야 한다”, “한강에 빠져 죽어야 한다”는 등의 표현을 자주 했다.
목숨을 건 발언은 아니지만, 이정현 자유한국당 의원 역시 지키지도 않을 약속을 공언한 바 있다. 이 의원은 국회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안이 통과되기 10여 일 전, “그 사람들(야당 의원들)이 탄핵을 실천하면 뜨거운 장에다가 손을 집어넣겠다”고 약속했다. 논란이 증폭되자 그는 “손에 장을 지지겠다고 한 적 없다”며 “왜 사실이 아닌 보도를 하냐”고 되받아쳤다.
정치인들, 특히 왜 자유한국당 소속 의원들은 이같이 지키지도 않을 발언을 내뱉는 것일까.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자학과 희생을 통한 표현 방식이다. 자기 자신의 존재감과 그 당위성을 증명하지 못해 학대하며 존재감을 부각하는 심리”라고 해석했다.
이정현 자유한국당 의원도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회 탄핵안을 두고 “장을 지지겠다”고 발언했다. 박은숙 기자
황 교수는 “이런 심리는 보통 초등학생이나 유치원생에게 많이 발견되는 동시에 갑질하는 인간들의 전형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반면 수사를 받을 때는 비굴한 모습을 보일 것”이라며 “검찰에 ‘수사를 계속하면 나는 자살할 것’이라는 협박성도 있는데, 이 협박이 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잘못에 대한 반성과 인정은 없고 처벌을 받지 않겠다는 심리가 반영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황 교수는 보수 성향 정치인에게서 이런 모습을 자주 발견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진보 성향의 정치인들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이념, 자기 정당성이 매우 뚜렷하고 자기 자신이 자신의 주장을 위해 존재한다고 합리화를 시키기 때문에 이러한 발언을 잘 하지 않는다”고 했다.
아울러 “보수 성향 정치인들은 자신의 존재와 가치 정당성의 실체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와 같은 발언을 하는 것”이라면서도 “(그들이) 미치지는 않았기 때문에 자살은 하지 않을 것이다. 단지 허세와 허풍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차재원 정치평론가도 “정치는 말을 통해 자기 생각이나 의지를 드러낸다”며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이 닥치면 이를 헤쳐나가기 위해 강하게 말하기도 하는데, 이 말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치인들의 이런 경솔한 발언은 화를 불러오기도 한다. 한국당 전신인 새누리당은 20대 총선을 앞두고 ‘5대 개혁과제’를 제시하며 다섯 개의 법안 발의를 약속했다. 그러면서 “개혁과제를 2017년 5월 31일까지 이행하지 못하면 1년 세비를 국가에 기부 형태로 반납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이들이 약속한 법안들이 5월 말까지도 발의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여론은 들끓었다. 약속 시한이 하루 남은 시점에서 새누리당은 뒤늦게 개혁과제의 정책 법률을 발의했다. 세비반납을 회피하기 위해 다급하게 수습에 나선 것이지만 국민적 비판을 피하기 어려웠다. 지키지도 않을 섣부른 발언으로 되려 역풍을 맞게 된 셈이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