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2호선을 타고 시청역에 도착하기 직전, 안내방송을 들어보셨나요? “이번 역은 시청, 시청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왼쪽입니다. 천안이나 인천 소요산 방면으로 가실 고객은 이번 역에서 1호선으로 갈아타시기 바랍니다.” 많이 익숙한 ‘멘트’입니다. 그런데 ‘이번 역은 시청, 시청역’ 전에 아주 잠깐 들리는 그 ‘멜로디’를 기억하시나요?
바로 가야금 선율이 흐르는 음악입니다. 약 5초 정도 나오지만 서울시민 중에 이 음악을 모르는 이들은 없을 것입니다. 환승역에서 나오는 ‘환승음악’이기 때문이죠. 시종착역 주민들만 들을 수 있는 단골 음악도 있습니다. <일요신문i>가 승객들이 무심코 지나쳤던 ‘숨은’ 음악들을 소개합니다.
서울지하철 2호선. 최준필 기자
서울지하철 1~8호선의 환승음악은 ‘얼씨구야’라는 곡입니다. 작곡가 김백찬 씨가 국악 벨소리용으로 만든 곡으로 2009년부터 지하철에서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2007년 당시 국립국악원의 국악 저변 확대 사업 중에 ‘국악 벨소리’라는 사업이 있었습니다. 이를 위해 10곡 정도를 작곡했는데 ‘얼씨구야’도 이중 하나였다고 합니다.
국립국악원 관계자는 “국악을 일반 국민들의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보급하기 위해 생활 국악 보급 사업의 일환으로 벨소리를 만들었습니다. 당시 서울 지하철 1~4호선에서 먼저 사용 협조 요청을 해서 검토 후에 제공했습니다”고 전했습니다.
얼씨구야 음악 캡처. 국립국악원 유투브 캡처
얼씨구야는 대금, 해금, 피리, 가야금 4가지 악기로 연주된 곡입니다. 얼씨구야를 들으면, 자진모리 장단 덕분에 흥겨운 기분이 납니다.
얼씨구야는 결국 2009년부터 서울지하철 1~4호선의 환승 안내 음악으로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1~4호선은 단순히 뻐꾸기 소리가 반복적으로 들리는 소리를 환승음악으로 사용해왔지만, 2010년 한국방문의 해를 맞아 음악을 바꿨습니다.
얼씨구야는 점차 서울지하철의 대표적인 ‘환승음악’으로 자리잡았습니다. 당시 5~8호선은 비발디의 협주곡 ‘조화의 영감’ 제6번 1악장을 사용했습니다. 바이올린의 아름다운 선율을 느낄 수 있는 조화의 영감은 방송 배경음악으로도 많이 이용된 곡입니다.
하지만 얼씨구야가 곧 5~8호선 환승음악을 차지했습니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얼씨구야의 국악버전을 환승음악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다른 음악은 없습니다”고 밝혔습니다. 시청역, 왕십리역, 홍대입구역 서울의 주요 역들에서 ‘얼씨구야’가 매일 울려 퍼지는 이유입니다.
인천 지하철. 연합뉴스
그렇다면, 인천지하철에는 어떤 음악이 흘러나올까요? 인천지하철은 2012년부터 환승음악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최귀섭 씨가 작곡한 ‘인천교통공사 로고송’이 인천지하철의 환승음악입니다. 신나는 드럼 소리와 함께 “행복을 만나고 사랑이 통하는 세상~”이라는 여성 가수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2012년까지 인천지하철의 환승음악은 ‘소풍가는 길’ 이었습니다. 인천교통공사 관계자는 “소풍가는길 은 대금으로 연주한 음악이었습니다. 소풍가는 길이 좋다고 하는 승객들도 많았지만 2012년부터 로고송으로 바뀌었습니다”고 전했습니다.
인천지하철엔 ‘숨은 일인치’가 있습니다. 2012년부터 종착역에서는 특별한 음악이 흘러나왔습니다. 국제업무지구역(1호선)과 운현역(2호선)에서는 류문 씨가 작곡한 창작 국악곡, ‘휴식’을 들을 수 있습니다.
휴식에는 잔잔한 가야금 소리가 섞여 있습니다. 피곤에 지친 직장인들에게 위로로 줄 수 있는 음악이 말 그대로 ‘휴식’인 셈이지요. 오로지 종착역에서만 들을 수 있습니다.
대전역. 연합뉴스
이제, 아래 쪽으로 좀 더 내려가겠습니다. 대전 지하철은 1호선 단선이기 때문에 환승음악은 없습니다. 하지만 다양한 음악을 들을 수 있습니다. 대전역에서 KTX를 타러 나간 승객은 ‘대전브루스’를 듣게 됩니다.
출발역에서는 모차르트의 터키행진곡이 들립니다. 터키행진곡은 모차르트의 소나타 20곡 중 가장 유명한 곡으로 모차르트의 정열과 아름다운 감정이 담겨 있는 곡이죠. 대전지하철 반석역 승객들은 가야금으로 변주한 터키행진곡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오스트리아 작곡가 모짜르트(좌)와 황병기 가야금 명인
종착역에서는 황병기 명인의 가야금 연주곡 ‘춘설-평화롭게’가 나옵니다. ‘춘설- 평화롭게’는 황병기 명인이 지난 2001년 7월 발매한 가야금 연주곡입니다. 눈이 오는 이른 봄의 아름다운 마을풍경을 그린 곡입니다. 황병기 거장은 널리 알려진 한국 가야금 산조의 명인입니다.
부산 지하철의 환승음악은 ‘생활 속에 우리국악 8집’에 수록된 바이날로그의 곡입니다. 1호선 동래역(환승역)에서는 바이날로그의 곡이 7초 정도 흐른 뒤 “이번 역은 동래, 동래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미남이나 반송방면으로 가실 고객께서는 이번 역에서 4호선으로 갈아타시기 바랍니다”라는 안내방송이 나옵니다.
부산교통공사 관계자는 “원래 환승음악이 호선별로 달랐습니다. 하지만 2012년부터 바뀌었어요. 매년 안내방송 설문조사를 하는데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12월 중에 바이날로그로 통일했습니다”고 전했습니다.
부산 지하철 노선도. 네이버 캡처
특히 부산지하철에서는 이색적인 음악을 들을 수 있습니다. 부산 교통공사는 홈페이지에 ‘안내방송’이라는 코너를 따로 만들 정도로 음악에 애정을 쏟고 있습니다. 광안역과 해운대역에서는 갈매기 소리가 배경음으로 나옵니다. 시청역에서는 경쾌한 멜로디가 담긴 ‘부산찬가’를 들을 수 있습니다.
다대포해수욕장역에서 지하철이 처음 출발할 때는 세시봉의 가수 윤형주 씨가 부른 “편안해서 좋아, 빨라서 좋아, 정확해서 좋아, 알뜰해서 좋아”라는 가사와 함께 포크송이 나옵니다. 1호선 다대포해수욕장역(종착역)에서는 물결치는 파도와 갈매기 소리와 동시에 “이번 역은, 이 열차의 마지막 역~”이라는 안내방송이 들립니다.
4호선 구간에선 아주 특별한 음악을 들을 수 있습니다. 지하철 안에서 영화 <접속> OST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사라 본의 ‘러버스 콘체르토(A Lover‘s Concerto)’가 흘러나오기 때문입니다. 영화 ‘접속’에서 전도연과 한석규는 PC통신을 이용해 소통합니다. 이 때 나오는 음악이 ‘러버스 콘체르토’였습니다.
차이코프스키. 연합뉴스
그렇다면, 광주지하철에서는 어떤 음악을 들을 수 있을까요? 광주지하철은 1호선 단선이기 때문에 환승음악이 없습니다. 하지만 광주지하철 녹동역에서 열차가 처음 출발할 때 “오늘도 광주 도시철도를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안내방송과 함께 퓨전국악 ‘돈돌날이’가 나옵니다.
안내방송이 끝나면, 또 다른 음악을 만날 수 있습니다. 지하철의 행선지를 고지하는 방송이 나온 직후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협주곡 제 3 악장을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소 난해할 수 있지만 우리에게도 꽤 친숙한 음악입니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
전철남-지하철은 우리 생활에 있어서 가장 친숙한 교통수단입니다. 시민들의 발이지요. 하지만 친숙한만큼 각종 사고와 사건, 민원들이 끊이지 않기도 합니다. <일요신문i>는 자칭 지하철 덕후 기자의 발을 빌어 그동안 궁금했던 지하철의 모든 것을 낱낱히 풀어드립니다. ’전철남‘의 연재는 계속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