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발생한 전남 신안의 작은 섬마을에서 발생한 70대 할머니 살인 사건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인 가운데 당초 알려진 바와 달리, 앞선 별도의 범행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은 신안군 신의면 한 염전의 모습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연합뉴스
사건이 발생한 곳은 전체 주민이 140여 명에 불과한 전라남도 신안군 신의면의 한 작은 섬마을이다. 지난 8월 18일 조용하던 이 시골 마을이 발칵 뒤집혔다. 이 마을에 혼자 사는 70대 여성 이 아무개 씨(77)가 자택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기 때문. 이날 이 마을의 이장은 이 씨가 며칠째 모습을 보이지 않자 이 씨 집을 찾았다가 시신을 발견했다. 당시 이 씨는 나체 상태로 모포에 몸이 감겨있었고 얼굴에는 모자가 덮인 채 숨져 있었다.
목포경찰서는 면식범 소행이라 판단하고 마을 주민을 상대로 탐문수사를 벌인 결과 이 마을에 사는 A 씨(30)에게 자백을 받아냈다. A 씨는 지적장애 2급으로 이 씨 집에서 6채 떨어진 가까운 곳에 살며 아버지 염전일을 도와온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과 유족 등에 따르면 시신이 발견되기 3일 전인 8월 15일 A 씨는 이 씨 집에 들어가 이 씨를 성폭행 후 살해했다. A 씨는 이 씨를 살해한 뒤 시신을 그대로 방치했다가 담배를 피우고 다시 돌아와 시간(시체강간)까지 하는 등 끔찍한 범행을 저질렀다. 이후 A 씨는 이 씨 몸에 모포를 감싸고 얼굴엔 모자를 덮어둔 채 범행현장을 떠났다.
하지만 <일요신문> 취재 결과 범행 당일 현장에 또 다른 범인이 있던 사실이 드러났다. 지난 12일 광주지방검찰청 목포지청에 따르면 강간 및 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 씨 이외에 또 다른 범인 B 씨(28) 관련 재판도 함께 진행 중이다. B 씨는 현재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원에서 ‘주거침입 및 강간’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B 씨와 A 씨는 같은 마을에 살며 평소에도 자주 어울려 다니는 동네 선후배 관계로 알려졌다. B 씨는 지적장애를 앓고 있는 A 씨와 달리 평범한 20대 남성으로 전해졌다.
B 씨의 존재는 검찰에 송치된 주범 A 씨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이 씨의 아들 박 아무개 씨(51)는 <일요신문>과 만난 자리에서 “9월에 검찰에서 어머니 사건으로 B 씨를 수사한다며 어머니 집에 있는 물품에 대한 압수목록 교부서를 보내와 그의 존재를 알게 됐다”며 “사건을 수사한 경찰에선 B 씨에 대한 이야기를 일체 들은 적이 없어 지금까지 A 씨가 혼자 벌인 일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검찰과 유족 등에 따르면 A 씨는 검찰에 송치된 후 검찰 수사 과정에서 B 씨의 범행 사실을 털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검찰은 B 씨를 곧장 기소했다. 하지만 목포경찰서는 그 이전까지 B 씨의 존재를 알지 못했고 이 사실을 뒤늦게 검찰에 통보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B 씨는 “A 씨와 알고 지낸 사이는 맞지만 A 씨 범행 당시에는 현장에 없었다”며 살인범행 공모 여부에 대해서는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B 씨에게 적용된 혐의는 ‘주거침입 및 강간’으로 이는 A 씨의 공소장에도 드러나 있다. 공소장에 따르면 사건이 발생한 8월 15일 저녁 B 씨가 먼저 피해자 이 씨 집에 들어가 손으로 피해자 목 부위를 잡아 피해자의 반항을 억압한 뒤 이 씨를 성폭행했다. 이후 A 씨는 이 씨가 B 씨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임을 알고 이날 오후 9시 피해자 집에 침입해 이 씨를 성폭행하고 경부압박에 의한 질식으로 사망케 했다.
검찰은 A 씨와 B 씨를 살인 공범으로 볼 순 없다는 입장이다. A 씨와 B 씨를 각기 다른 건으로 기소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공소장에 나타나 있듯이 강간 공모 정황은 있다. B 씨의 강간 이후 이 씨가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를 A 씨가 인지하고 집에 침입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검찰 관계자는 “A 씨가 범행을 저지른 날 시간대는 다르지만 A 씨보다 먼저 B 씨가 이 씨 집에 침입, 성폭행을 한 사실이 밝혀졌다”며 “A 씨 범행 당시에 B 씨가 함께했던 것은 아니지만 서로 잘 아는 사이”라고만 답했다.
유족들은 마을에 젊은 남성이 별로 없는 데도 경찰이 또 다른 범인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단 사실에 분통을 터뜨렸다. 실제 60여 가구 140여 명이 거주하고 있는 이 마을에서 범죄 용의선상에 올릴 수 있는 20대 이상 남성은 30여 명에 불과하다. 이 씨의 며느리 황 아무개 씨는 “그 작은 섬마을에 젊은 남자는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얼마 안 된다. 어머니가 한 명도 아니고 두 명한테 그런 일을 당했다는 사실도 충격이지만 경찰도 알지 못했다는 게 이해할 수 없다”며 “A 씨가 B 씨에 이어 성폭행하고 마지막에 죽였으니 자기가 한 거라고 말한 거고 경찰은 그 말만 믿고 다른 수사는 안하고 검찰로 넘긴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A 씨가 이 씨에게 범행을 저지르기 전 이 씨 집에 침입해 성폭행한 B 씨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연합뉴스
유족들이 분통을 터뜨리는 이유는 이뿐만이 아니다. 앞서 경찰은 3년 전 ‘병사’로 판단한 40대 여성도 이번에 붙잡힌 피의자에 의해 살해된 사실이 뒤늦게 밝혀 부실 수사 논란이 인 바 있다. 2014년 6월 이 마을에 거주하던 40대 여성 원 아무개 씨(46)는 이 씨와 비슷한 모습으로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시신에서 타인의 채액과 정액 등이 검출됐고 경찰은 의심되는 주민 4명의 유전자를 채취해 비교작업을 벌였지만 끝내 일치하는 사람은 없었다. 당시 A 씨는 용의선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부검을 통해 간경화 등으로 병사한 것 같다는 추정결론을 내리자 경찰은 수사를 종결했고 이 사건은 단순 ‘병사’로 처리됐다.
애초에 경찰이 수사를 잘했으면 이 씨처럼 억울한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는 게 유족들의 주장이다. 황 씨는 “그때와 범행 수법이 똑같다. 그때 그런 일을 저지르고도 걸리지 않으니까 ‘이래도 되나보다’ 하고 똑같은 범죄를 저지른 것”이라며 “3년 전에 잡았으면 어머니는 돌아가시지 않았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실제 공소장에 적시된 내용에 따르면 A 씨는 2014년 원 씨 살해 당시에도 이 씨 살해 과정과 동일하게 성폭행한 후 경부를 압박해 질식사시켰다.
A 씨는 원 씨 사건 이후 2015년 특수절도죄로 기소돼 형을 살다 올해 2월 교도소에서 출소했다. 그리고 출소 6개월 뒤인 8월 이 씨를 3년 전과 똑같은 수법으로 성폭행하고 살해한 것이다. 박 씨는 “당시에라도 A 씨를 용의선상에 올려놓고 DNA 대조했어야 했는데 이미 A 씨가 절도죄로 들어갔을 땐 경찰이 원 씨 사건을 ‘병사’로 처리해버린 뒤라 용의선상에 없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지적에 경찰은 수사 진행과정에서 문제가 있던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목포경찰서 관계자는 “처음 우리가 사건을 수사할 때는 B 씨에 관한 관련 진술이 없었다“며 “B 씨의 존재는 우리도 검찰에게 통보받아 알게 된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일단 당시 A 씨 본인이 자신의 단독 범행이라고 자백을 한 상황이었고 현장검증을 했을 때도 자기가 다 한 걸로 했으니까 A 씨만 송치하게 된 것”이라며 “검찰 조사에서 B 씨의 존재를 털어놓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경찰이 A 씨 주변인물로 알려진 B 씨에 대한 조사조차 하지 않은 점에 대해선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이에 대해 배상훈 서울디지털대학교 경찰학과 교수는 “범인의 진술이 수사에서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범죄자의 말을 100%로 믿어선 안 된다”며 “현장 증거, 주변 탐문 등 기본적인 수사에도 주의를 기울였어야 했는데 이번 사건의 경우는 경찰이 놓친 점이 명확해 보인다”고 말했다.
김상훈 기자 ksangh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