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두산그룹의 유동성 위기는 수년 전부터 제기됐다. 두산그룹은 2014년부터 KFC, 두산동아, 두산DTS 등의 계열사를 매각하며 차입금 규모를 줄여왔다. 그럼에도 또 위기가 닥친 것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상 (주)두산의 지난 11월 14일 발표한 분기보고서를 보면, 올 3분기 기준 두산그룹의 순차입금은 11조 5797억 원 이다. 부채비율은 272.1%다.
두산그룹의 유동성 위기가 내년 상반기 더욱 악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핵심 계열사 중 하나인 두산중공업이 위기에 처하면서 두산그룹의 자금 유동성 확보는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탈원전·탈석탄’이라는 정부 정책 기조 아래 두산중공업의 실적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원자력 사업은 사업규모 축소가 불가피해졌다. 두산중공업만 3분기 기준 순차입금 규모가 5조 원에 달한다. 이에 따른 금융비용 부담도 무거울 수밖에 없다.
두산중공업은 해외 플랜트 시장과 원자력발전소 해체 시장이 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나타낸다. 두산중공업 관계자는 “향후에 신규 원전은 만들지 않기로 했지만 정부가 영국, 체코, 사우디아라비아 등에 원전 수출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고 추후 원전 해체 기회도 남아 있다”며 “풍력에너지 시장에서 국내 최대 실적을 내고 있기 때문에 친환경에너지가 각광받는 요즘 기대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두산중공업이 앞으로 최소 2년간 원자력발전 사업의 충격을 메우는 것은 힘들다고 본다. 해외 원전 사업 수주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공급까지 최소 2년 이상 소요되고 풍력발전도 기기만 공급했지 아직 제대로 사업을 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성기종 미래에셋 연구원은 “내년까지는 잔여물량인 신고리 5, 6호기 사업은 마무리지을 수 있으나 그 이후에는 아직 불투명한 상황”이라며 “원자재 발전소 기자재를 만들던 인력으로 원자력발전소 해체 사업을 하는 건 아직 해본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기술적으로도 당장 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
자금 마련이 시급해진 상황에서 두산중공업이 집은 카드는 또 다시 매각이다. 지난 16일 두산중공업은 두산엔진 매각을 검토하고 있다고 공시했다. 두산중공업이 소유한 두산엔진 지분 42.66%(2965만 주)를 매각해 자금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최근 두산중공업은 매각 주관사를 통해 투자안내서(IM)를 잠재투자자들에게 발송한 것으로 알려진다. 내년 해외 플랜트 수주 상황이 개선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매각 시기는 적절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한 예로 지난 9월 두산엔진의 경쟁사인 STX엔진 매각 입찰에는 10여 곳이 참여한 바 있다.
하지만 두산엔진의 희망 매각가가 지나치게 높게 설정됐다는 말이 나오면서 두산엔진 인수전의 흥행을 장담할 수 없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두산은 두산엔진 지분 희망 매각가를 3000억 원으로 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가총액이 채 3000억 원이 안 되는데 절반도 안 되는 지분을 3000억 원에 매각하겠다는 것은 무리라는 평가다. 다만 두산엔진이 보유하고 있는 두산밥캣 지분(10.55%)이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두산중공업이 두산엔진 지분을 매각하면서 두산엔진이 보유한 두산밥캣 지분도 함께 매각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2011년 이후 실적이 반등하고 있는 두산밥캣은 그룹 내 ‘캐시카우’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지난 7일 두산인프라코어는 두산밥캣 지분 3.91%(400만 주)를 시간외대량매매를 통해 처분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두산밥캣 처분금액은 1348억 원으로 6일 공시할 때 밝혔던 1432억 원에는 못 미치는 금액이다. M&A업계 한 전문가는 “지금까지는 두산인프라코어가 두산밥캣 지분을 매각하더라도 50% 이상의 지분을 들고 있기 때문에 별다른 영향이 없었지만 앞으로는 추가로 매각할 주식이 마땅치 않다”고 말했다.
내년 초 두산밥캣이 포터블파워(Portable Power) 사업부를 매각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두산밥캣의 포터블파워 사업부는 공기압축기, 이동식 조명장비, 이동식 발전기 및 컴팩터를 생산하고 있다 두산그룹 한 관계자는 “포터블파워 사업은 두산밥캣이 운영하는 사업 중 유일한 비건설 사업으로 다른 사업과 시너지효과가 적기 때문에 매각이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금융권에서는 두산그룹에 대한 대출을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기업 대출에는 실적 외에도 앞으로 전망, 신용도 등 매우 다양한 요소들이 고려된다”며 “자금 유동성 위기가 지속된다면 규모를 줄여 연장해준다거나 대출을 더 까다롭게 심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재계와 노동계는 두산이 또 인적 구조조정을 단행할 것인지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두산중공업은 지금으로선 구조조정 계획은 없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두산중공업 관계자는 “사업부야 회사 상황에 따라 축소될 수 있지만 현재 인력 감축 계획은 전혀 없다”고 일축했다.
박혜리 기자 ssssch33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