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에서 기법은 생각을 담아내는 도구다. 우리가 예술가의 작품을 변별하는 것은 기법 때문이다. 예술 작품을 기억하게 되는 것도 기법에 의해서다. 특히 회화에서 기법은 작가의 정체성을 이해하는 지름길이다.
최근 우리 미술계에서는 자신만의 기법 개발로 새로운 회화 언어에 도전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기존 재료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탈출구로도 보인다. 이 흐름에서 눈에 띄는 것은 신세대 작가의 톡톡 튀는 아이디어다.
이번 전시에서는 김건일, 김현희, 원지영, 김보영, 하정현, 고은주가 이런 경향을 보여주는 작가로 분류할 수 있다.
김건일 Career of Emotion: 162x112cm 캔버스에 유화 2015, 김현희 sound of the wave: 80x53cm 장지에 채색 후 커팅 2017, 원지영 아빠의 정원 그리고 여름2: 116.8x91cm 종이에 연필 2016(왼쪽부터).
김건일은 전통 유화의 재료적 특성에서 자신만의 기법을 개발해 주목받고 있다. 물감을 칠하고 벗겨내는 방식으로 숲이나 물에 비친 이미지를 그린다. 지워서 그리는 역설적 기법으로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의 새로운 차원의 회화를 보여준다. 김현희는 칼로 오려내는 기법으로 이미지를 만든다. 파도나 바람의 흐름 같은 움직이는 이미지를 찾아가는 작업이다.
연필화의 새로운 표현력을 탐구하는 원지영 역시 지워서 그리는 기법이다. 식물의 섬세한 생명의 모습을 연필의 세밀한 묘사와 지우개의 흔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하정현은 판화 기법을 응용해 자신의 회화 언어를 찾아가는 작가다. 낙서처럼 보이는 이미지를 중첩시켜 무위적 유희성을 표현한다.
고은주 생명의 시론_사막장미시리즈5: 65x79cm 견본채색 2013, 김보영 달을 담다Ⅰ: 145x145cm 한지에 천연염색, 백토 2014, 하정현 draw without drawing 79: 50x65cm acrylic color, oil bar, oil pastel, conte and pencil on canvas 2016(왼쪽부터).
김보영과 고은주는 우리나라의 전통 공예와 서예 기법에서 자신의 기법을 추출하는 작가다. 김보영은 전통 방식의 염색 기법을 활용해 한국화의 새로운 표현 영역에 도전하는 작업을 보여준다. 염색한 한지를 바느질하듯 이어 붙여 현대 감각의 달항아리를 만들어낸다.
서예의 탁본 기법을 응용하는 고은주는 한국의 고급스런 미감을 담아내는 작업이다. 탁본 기법의 오묘한 표현법에서 환상적 아름다움이 우러나오는 회화다.
전준엽 화가
비즈한국 아트에디터인 전준엽은 개인전 33회를 비롯해 국내외에서 400여 회의 전시회를 열었다. <학원>, <일요신문>, <문화일보> 기자와 성곡미술관 학예실장을 역임했다. <화가의 숨은 그림 읽기> 등 저서 4권을 출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