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면 학교 측은 이번 투표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듯 결과 발표 2일 뒤인 13일 김창수 총장의 연임을 발표했다. 재단 측과 교수들의 갈등이 파국을 맞은 셈이다. 교수들은 “내부에서는 두산재단의 ‘재벌갑질’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며 이런 상황이 두산그룹이 중앙대를 인수한 10년 전부터 이어져 왔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 2008년 두산그룹은 1200억 원을 출연해 중앙대를 인수했다. 박용성 중앙대 전 이사장이 취임했고 ‘두산맨’들이 투입됐다. 대대적인 학교 건물 건설이 시작되면서 초기에는 중앙대 내부에서도 호의적인 의견이 많았다. 워낙 구 재단의 지원이 부족해 재정난에 시달려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좋은 감정은 오래가지 못했다. 두산 재단 측의 투자가 생각보다 미미했기 때문이다. 재단이 들어서면서 대대적인 건설이 시작돼 2400억 원 이상의 돈이 투입됐지만 두산 재단의 투자는 1200억 원선에서 그쳤다. 이에 대해 교수협의회는 ‘중앙대 건축은 모두 수의계약으로 두산건설이 맡았는데 현재 이사장인 박용현 두산건설 회장은 중앙대 이사장을 맡았고 박태원 두산건설 부회장은 박 이사장의 장남이다. 이처럼 중앙대 건축을 도맡은 두산건설이 중앙대 법인과 특수관계임에도, 건축가액 결정과 건축 시공사 선정 과정을 중앙대 구성원들이 투명하게 감시할 수가 없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동작구 흑석동 중앙대학교 정문. 박정훈 기자
즉 건축비만 2400억 원 이상 들었는데 투자는 1200억 원선에 그쳤고, 공사비는 모두 두산건설이 도맡았다는 주장이다. 지난 9월 6일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중앙대학교는 전국 154개 사립대학교 중에서 부채 총액이 696억 원으로 2위를 기록했다. 이 가운데 다수는 대형 건물 신축에서 발생한 부채다. 교수협의회는 자세한 건축비 내역을 공개하길 원하지만 제대로 공개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박용성 전 이사장의 횡포도 큰 문제였다. 대학 구조조정을 지나치게 일방적으로 진행했다는 비판이 많았다. 지난 2015년 결국 이를 반대하는 교수들이 비대위를 꾸리자 박 전 이사장은 “그들(비대위)이 제 목을 쳐달라고 목을 길게 뺐는데 안 쳐주면 예의가 아니다”라며 “가장 피가 많이 나고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내가 쳐줄 것”이라고 했다. 이런 발언들이 문제가 되면서 결국 박 전 이사장은 사퇴하지만 문제는 끝이 나지 않았다.
박 전 이사장이 폭언을 퍼부어 모욕죄로 기소돼 처벌까지 받고 사퇴했지만 크게 달라진 바 없다는 게 교수들의 전언이다. 교수협의회는 “총장단과 학교본부가 법인을 견제하기는커녕, 법인이 부여한 힘을 키우는 데만 관심을 쏟고 있다. 대표자회의를 일방적으로 불인정한 것, 중요 행정의결 과정에 교수대표를 참관인으로라도 포함시키라는 교협의 요구를 일관되게 무시하는 것이 이를 웅변적으로 보여준다”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가장 큰 문제는 국제 대학 평가 기관에 조작한 자료를 제출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지난 6월 영국의 대학평가 기관인 QS(Quacquarelli Symonds)는 2017년 세계 대학 순위에서 중앙대를 표시하지 않았다. QS는 졸업생 평판도 설문 부문에서 외부 기업체 인사 담당자가 작성해야 하는 설문을 중앙대 교직원이 다수 작성해 제출해 ‘조작’을 시도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중앙대 교수협의회 측은 “어떤 비판에도 귀막고 눈가린 법인의 폐해가 가장 두드러진 사건이 QS평가 조작 사태였다. 법인과 학교본부는 이 조작 사건을 담당자의 사소한 실수로 덮는 데 급급하였는데, 교수협의회가 누차 강조했듯이 이는 내실은 갖추지 않은 채 외형적 평가지표의 수치 맞추기에 올인하도록 압박을 가해온 법인의 왜곡된 태도가 낳은 대형 참사였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교수협의회 측은 법인과 총장 등 이번 사건과 관계된 인사가 사퇴하는 등의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앙대 교수와 재단과의 관계가 파탄을 만든 결정적 계기가 QS사태다. 하지만 그 이전부터 갈등을 심화시킨 것은 중앙대 재단이 교수들을 정년보장과 연구년으로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최근 A 교수 사건이 가장 대표적 사건이다.
교수협의회 관계자는 “정년보장을 받기 전 교수들은 일정 기간마다 재임용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중앙대에서는 논문 10편 이상 작성이라는 인사 규정 외에도 재임용시 20편을 쓰라는 권고사항을 집어 넣어 사인을 하라고 한다. 사인 안하겠다고 하면 재임용을 안해준다. 이렇게 정년보장이라는 목줄로 교수를 잡고 있는 셈이다”라고 귀띔했다.
A 교수의 경우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인사규정 이외에 국제논문을 게재하지 못할 경우 자진사임한다는 서약서를 작성했고, 인사규정까지는 채웠지만 권고사항인 국제논문 게재를 달성하지 못했고 면직처분을 받아야 했다. A 교수는 이에 불복해 교육부에 교원 소청 심사를 제기하여 승소했다. 지난 4일 교수협의회는 ‘재임용과 정년보장 제도가 교수 지배의 도구가 될 수 없게 되었음을 알려드린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교수협의회는 국제논문 조건까지 학교 측이 무리하게 적용해 해당 교수를 면직처분한 것은 보편성을 근간으로 하는 인사관리 원칙에서 벗어난 전형적인 갑질 횡포에 해당된다고 보고 있다.
13일 총장 연임을 발표한 중앙대학교의 입장은 다르다. 먼저 QS 조작 혹은 은폐 사건과 관련해 총장은 이미 책임지는 자세를 보였다고 말했다. 중앙대학교 관계자는 “QS 사건으로 인해 부총장 등이 물러나고 담당 직원도 징계를 받았으며 학교 커뮤니티 등에 사죄문을 올리고 사과의 뜻도 수차례 밝혔다”며 “불신임 이틀 뒤 발표된 총장 연임은 이사회 일정이 공교롭게 미리 13일로 정해져 있었을 뿐 다른 의도는 없다”고 밝혔다. 다만 앞으로 교수협의회와의 갈등을 어떻게 풀어나갈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방효원 중앙대 교수협의회 회장은 “연임 발표는 불신임 투표는 관심도 없다는 뜻으로 대학의 가장 중요한 구성원인 교수를 완전히 무시하는 처사다. 교수들은 월급만 받고 학생만 가르치라는 뜻으로밖에 볼 수 없다. 앞으로 논의를 통해 어떻게 할 것인지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가 바라는 바는 간단하다. 학생을 포함해 중앙대 구성원 가운데 발전을 바라지 않는 구성원이 어디 있겠냐. 구성원들이 뭘 원하는지 듣고 소통하고 협력하면서 서로를 이해해주면 못할 게 뭐 있겠냐. ‘내가 주인이니까 내 말 들으라’는 두산의 태도는 잘못됐다”고 덧붙였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