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는 정부 예산안 처리에서 잡음을 냈지만, 자신들의 지역구에 SOC 사업 예산을 따냈다. 박은숙 기자
정부 예산안을 심의하고 확정 짓는 국회 예산결산위원회 소속 위원들과 각 당의 정책과 업무를 총괄하는 지도부들은 자신의 치적을 쌓을 지역구 민원 예산 챙기기에 바쁜 모습이었다.
예산안 논의 당시 한국당 정책위의장인 동시에 예결위 위원인 김광림 의원(경북 안동시)은 쪽지예산에 대해서는 부정했다. 하지만 그는 안동대 도시가스 인입 배관설치 등으로 140여억 원의 예산을 배정받았다. 김태년 민주당 정책위의장(경기도 성남시)도 경기도 성남시 경찰서 파출소 신축 예산 등 30억 9500만 원을 증액했다.
예결위 소속 위원들도 지역구 예산 편성에 동참했다. 예결위 국민의당 간사 황주홍 의원(전남)은 보도자료를 통해 “김동철 원내대표(광주 광산구)와 낙후된 호남 발전 예산을 사상 최대 규모로 확보해 빛나는 성과를 이끌어냈다”고 홍보했다. 황 의원은 경전선(광주~순천) 전철화 사업, 전북 동학농민혁명 기념공사 조성사업, 경로당 냉·난방비 및 양곡비 지원 등을 증액시키며 5172억 원을 증액시켰다고 밝혔다.
예결위 한국당 간사 김도읍 의원(부산)도 같은 당 박재호 의원(부산)과 함께 양산도시철도 건설, 마리나 비즈센터 건립, 코리아 드라마 페스티벌 등의 주요 SOC 사업들을 편성해 총 4조 5666억 원을 확보한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당 간사 윤후덕 의원(경기 파주갑) 역시 파주출판단지 세계문화클러스트 육성과 헤이리 예술마을 경관숲 조성 예산 등을 위해 약 15억 원을 편성했다.
최근 호남 지지율 하락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민의당은 지역 예산안 편성을 홍보하고 나섰다. 김동철 원내대표 박주선 장병완 천정배 권은희 최경환 송기석 의원은 함께 보도자료를 내고 “국민의당은 민주당과 한국당 사이에서 적극적인 중재안을 제시·관철시키며 호남 지역 현안 및 예산 확보에 노력했다”고 자평했다.
의원들은 지역별로도 예산안을 골고루 나눠 가졌다. 앞서 전라북도·경상남도·경상북도·충청북도를 지역구로 둔 예결위 의원들은 물론 예결위 소속 강창일 민주당 의원(제주) 또한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건립 사업을 포함한 23개의 사업을 위해 2855억 원을 확보했다.
충남도청은 당진평택항(신평~내항) 진입도로 건설 사업과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사전타당성 등을 비롯한 SOC 사업으로 5조 8104억 원을 확보했다. 충남도청은 예산안 확보에 예결위원장 백재현 민주당 의원(경기 광명시)과 예결위원 어기구 민주당 의원 등이 적극적으로 협조했다고 밝혔다.
정우택 한국당 원내대표도 지역구 예산안을 배정받았다. 정우택 원내대표(충북 청주시)는 일각에서 제기하는 ‘쪽지예산’ 비판에 “제 양심을 걸고 예산 당국과 뒷거래를 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지만, 실제로는 민원성 예산을 챙긴 것으로 확인됐다. 정 원내대표 지역구엔 남일고은~청주상당 일반국도 건설비를 비롯한 민원성 예산으로 총 14억 5000여만 원이 책정됐다.
2018년 정부 예산안은 당초 정부가 보낸 안보다 1조 3000억 원이 더해진 채 지난 12월 6일 국회를 통과했다. 박은숙 기자
지역 예산안 확보를 위해 각 지자체 예산부서는 분주하게 뛰어다녔다. 각 지자체 관계자들은 “정부 예산안이 국회에 제출된 9월 1일부터 우리는 국회에 24시간 상주했다”고 입을 모았다. 도지사 또는 도지사 권한대행과 기획조정실장 등 실무자들은 올해 초부터 국회와 기획재정부에 지속적으로 접촉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예산안 논의가 본격 시작됐던 9월부터는 국회 근처에 숙소를 얻고 그곳에서 합숙하며 국회를 드나들었다. 국회 예결위와 의원회관을 번갈아 다니며 예산 확보를 위해 고군분투했다고 전했다. 대부분의 지자체는 “노력을 많이 한 덕분에 사업이 기대 이상으로 많이 반영됐다”고 흡족해했다.
경북도청은 한국당과 민주당 양쪽에 접촉하는 ‘투트랙’ 전략을 펼친 것으로 전해진다. 경북도청 한 관계자는 “올해 한국당은 여당이 아니라 야당이 됐다. 때문에 여당인 민주당에도 접촉할 필요가 있었는데, 마침 민주당에 ‘TK(대구·경북) 특별위원회’가 있었다. 결국 직원 세 명이 국회로 출장을 가서 TK에 지역구를 둔 한국당 13명과 민주당 22명의 의원들을 접촉하며 서로 노력하고 협조했다”면서 “특히 민주당 TK 특위에서 우리 예산에 대해 열심히 신경 써주고 끝까지 밀어줬다. 그 결과 지난해에 비해 두 배 정도의 성과가 나타났다”고 귀띔했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국회 예결위와 의원실에서 많이 도와줬다. 우리가 의원의 지역 행사에 가서 도와주기도 했고 의원실은 우리를 식구처럼 잘 대해줬다. 한 가족처럼 점심·저녁 식사를 같이했고, 밤늦게 일이 끝나면 포장마차로 가서 간단하게 술 한잔을 하곤 했다”며 “의원실에서 본회의를 생중계로 봤는데, 예산안이 통과되고 의사봉을 두드릴 때 다 같이 일어나 손뼉 쳤다. 다 마무리가 되고 짐을 정리하고 그 새벽에 국회 밖으로 나왔는데 눈이 가득 쌓여 있었다. 정말 뿌듯했다”고 회상했다.
지자체 일부 관계자들은 ‘선심성 사업을 위한 쪽지예산’이라는 비판에 대해 “지역 의원들의 관심 사업인데, 대부분 지역을 위해 필요한 사업이다. 건수가 많은 것도 아니고 도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쪽지 예산이 나쁘다고만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다른 관계자는 “쪽지예산이라는 것은 3~5년 전에만 있었지, 지금은 없어졌다. 사업 당위성을 제기하고 질의를 하고 국회 심의에서 받아들여지면 예산안에 편성되는 것이지 (끼워 넣기란 없다)”고 주장했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