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에로 마라초 | ||
항상 가족이 최우선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던 마라초 전 주지사가 불명예스럽게 사임한 것은 지난 10월 27일이었다. 지난 7월 로마의 한 아파트에서 매춘부와 성매매를 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망신을 당했다. 그는 “끔찍한 실수를 저질렀다”며 자진해서 주지사직을 내놓고 물러났다.
하지만 매매춘이 합법인 이탈리아에서 문제는 그가 ‘돈으로 성을 샀다’는 데 있지 않았다. 이탈리아를 충격에 빠뜨린 것은 매춘부의 정체, 즉 상대가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 전환한 ‘트랜스젠더’였다는 데 있었다.
로마의 트랜스젠더 매춘부들의 단골 고객이었던 것으로 알려진 마라초는 세 딸을 둔 평범한 가장으로 한때 미래의 총리감으로 지목되기도 했던 거물급 정치인이다. 국영방송 RAI의 앵커 출신으로 이탈리아 제1야당인 민주당 소속이자 내년에 있을 지방선거에서 재선이 거의 확실시됐던 인기 있는 정치인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스캔들로 인해 그는 언제 다시 정치인으로 대중 앞에 서게 될지 기약할 수 없는 처량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
마라초의 매춘 스캔들이 언론을 통해 집중 조명을 받은 이유는 상대가 트랜스젠더라는 점 외에도 코카인 복용, 섹스 비디오 협박 등이 버무려진 한 편의 통속소설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의 은밀한 사생활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지난 7월 로마의 아파트를 급습했던 네 명의 기동경찰대 소속의 경찰관들 때문이었다. 당시 마라초는 반라 상태로 브라질 출신의 트랜스젠더 매춘부인 ‘나탈리’와 함께 있었다. 하지만 부패한 관리였던 경찰관들은 그 자리에서 마라초를 상대로 흥정을 하기 시작했다. 당시 현장을 휴대폰으로 촬영했던 경찰관들은 동영상을 언론에 공개하지 않는 대가로 8만 유로(약 1억 3000만 원)를 요구했다. 마라초는 그 자리에서 3만 유로(약 5000만 원)를 수표로 끊어주었으며, 나머지 금액은 추후에 전화 연락을 한 뒤 전달하기로 했다.
하지만 지난 10월 말, 이들 네 명의 경찰관들은 가택무단침입 및 공갈협박 등으로 경찰에 체포되었으며, 현재 모두 법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이 사건에는 사실 미심쩍은 부분이 많다. 특히 네 명의 경찰관들의 행적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한 상태다. 경찰관들이 직접 현장에서 동영상을 촬영했는지, 아니면 현장에 있던 또 다른 트랜스젠더 매춘부가 촬영한 휴대폰 동영상을 경찰관이 강탈한 후 돈을 요구했는지 명확하지 않은 것이다.
처음 스캔들이 불거지자 마라초는 자신의 성매매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그런 동영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정치적 흑색선전의 희생양”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동영상이 있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돈을 지불한 적은 없다”고도 말했다.
그와 함께 있었던 ‘나탈리’는 ‘트랜스젠더 미인대회’에 참가한 경험이 있으며, 그날 밤 단골이었던 마라초로부터 화대 명목으로 5000유로(약 850만 원)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나탈리는 타블로이드지 <노벨라 2000>과의 인터뷰에서 마라초와의 관계에 대해서 자세히 털어놓았다. “마라초와 나는 2001년부터 알고 지냈다. 처음에 그는 내가 여자인 줄 알고 있었다. 그는 다른 고객들과는 달랐다. 처음 5~6번 만났을 때에는 이야기만 나누었고, 섹스를 한 후에는 내게 ‘아름답다’고 말했다.”
▲ 지난 8년간 마라초 전 주지사를 상대했다고 주장한 브라질 출신 트랜스젠더 나탈리. 아래쪽은 “그와 정사장면 담은 동영상을 갖고 있다”고 폭로한 트랜스젠더 매춘부 브렌다. 이후 브렌다는 자신의 아파트서 불에 탄 시체로 발견돼 타살의혹이 일고 있다. | ||
스캔들이 터지자 뒤늦게 자신 역시 마라초의 고객이었다고 주장하고 나선 트랜스젠더 매춘부도 있었다. 브라질 출신의 ‘브렌다’는 한 인터뷰에서 “마라초 외에도 트랜스젠더 매춘부들의 단골인 정치인들은 많다”고 폭로했다. 마라초와 두 차례 만났다고 말하는 그는 자신 역시 마라초의 정사를 담은 휴대폰 동영상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으며, 이 동영상은 다른 동료 매춘부 한 명과 마라초와 함께 마약 섹스 파티에 참석했다가 촬영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너무 방심했던 걸까. 지난 11월 20일 브렌다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불에 탄 시체로 발견됐다. 현재 로마 경찰은 그가 타살됐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 중에 있으며, 주변 사람들 역시 그가 살해당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사람들은 당시 현장에서 발견된 브렌다의 것으로 추정되는 노트북 컴퓨터가 싱크대에 버려진 채 물에 잠겨 있었던 점은 이 사건에 뭔가 냄새가 나는 구석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누군가 혹시 컴퓨터에 저장된 파일을 삭제하기 위해서 저지른 짓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또한 브렌다가 사망하기 12일 전에 길거리에서 괴한에 의해 공격을 당한 후 휴대폰을 도난당했던 점, 사망하기 하루 전 동료들에게 “협박을 받고 있다. 무섭다. 자살이라도 하고 싶다”며 하소연했던 점도 그가 살해당했을 가능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브렌다가 휴대폰 속에 저장된 동영상 때문에 살해당했다고 믿는 로마의 트랜스젠더 매춘부들은 “우리 모두는 지금 위험에 처해 있다. 우리를 보호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으며, 몇몇은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고향인 브라질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연관된 것으로 추정되는 또 다른 사건도 뒤늦게 언론의 조명을 받고 있다. 지난 9월 약물과다복용으로 사망했던 마약상인 지안구에리노 카파소의 죽음이 마라초 스캔들과 연관이 있다는 의혹이 불거진 것이다. 트랜스젠더 매춘부들에게 마약을 판매했던 그는 당시 “나도 마라초의 섹스 동영상을 갖고 있다. 마라초가 트랜스젠더 매춘부들과 마약을 하거나 관계를 맺는 장면들이 들어 있다. 이밖에도 로마 시민의 반 이상을 협박할 수 있는 증거들을 갖고 있다”라고 떠벌리고 다녔다. 그는 이 동영상을 언론에 팔려고 했지만 언론사와 접촉하기 하루 전날 돌연 사망했다.
카파소의 아버지는 “아들은 살해당한 게 분명하다. 돌려받은 소지품 가운데 휴대폰이 없었다”고 말했다. 또한 아들이 죽기 전 “아버지, 두려워요. 방에 있는 물건들의 위치가 바뀌어 있어요. 누군가 몰래 호텔방에 들어온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마라초 스캔들의 배후에 정치적인 입김이 작용한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가장 먼저 집권여당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포르차 이탈리아’당을 지목하고 있다. 스캔들이 언론을 통해 터진 날이 공교롭게도 민주당의 새로운 당수를 뽑는 예비선거 하루 전날이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처음 스캔들을 보도한 언론사가 베를루스코니의 형제가 소유한 신문사였다는 점은 이런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스캔들이 터지자 이탈리아의 전 언론사들은 민주당의 선거보다 트랜스젠더 매춘부에 대해 집중적으로 보도하기 시작했으며, 결국 민주당의 선거는 원색적인 보도에 묻혀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했다. 지난해 우파 여당에게 패한 후 리더 부재와 내부 분열로 계속해서 혼란에 빠져 있던 민주당으로선 허탈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베를루스코니 총리에게도 이번 스캔들은 호재나 다름없다. 마라초 스캔들이 터지기 직전까지 6개월 동안 콜걸 스캔들로 비난을 받고 있던 그는 “적어도 나는 ‘진짜 여자들’과 한다”는 말로 비아냥거렸는가 하면, 도덕적으로 깨끗하다고 주장하던 좌파 정당 역시 별 수 없다며 마음껏 비웃고 있다. 또한 마라초의 동영상을 비밀리에 입수해서 본 것으로 알려진 베를루스코니는 마라초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내가 소유한 언론사를 통해서는 절대로 동영상이 유출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호의적인 제스처를 취하는 시늉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탈리아 여성단체로부터 ‘악질’로 평가받는 베를루스코니가 과연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는 의문인 것이 사실. 여성을 비하하는 말로 악명이 높은 베를루스코니는 최근 한 60대 여성 정치인과의 TV 토론회에서 “당신은 머리보다 얼굴이 더 나은 것 같다(결국 둘 다 형편없다는 뜻)”라는 발언으로 다시 한 번 여성들의 집중포화를 받았으며, 현재 인터넷에는 베를루스코니의 사퇴를 촉구하는 탄원서에 서명한 사람들이 10만 명이 넘고 있다.
한편 이탈리아에서 트랜스젠더 매춘부 스캔들이 터진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처음 트랜스젠더와 매춘을 한 사실이 들통났던 유명인은 지난 2005년 트랜스젠더 매춘부와 함께 있다가 코카인 과다복용으로 응급실에 실려갔던 피아트 자동차 왕국의 후계자인 라포 엘칸이었다. 그리고 2007년에는 로마노 프로디 전 총리의 대변인이었던 실비오 시르카나가 로마 외곽에서 트랜스젠더로 추정되는 매춘부와 만나는 모습이 파파라치 카메라에 포착되어 구설에 올랐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