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9 대선 전 탈당설이 돌았던 박 의원은 안희정 캠프에 합류, 의원멘토단장을 맡았다. 이들이 여의도의 ‘신 남매’로 불리던 것도 이때부터다. 야당은 물론, 여당에서도 ‘포스트 문재인’은 전무하다. ‘안희정·박영선’ 연대설을 주목하는 이유다.
안희정 지사와 박영선 의원의 연대설이 주목받고 있다. 박은숙 기자
“정치적 공간 확보를 위한 장기적인 프로젝트다.” ‘안희정·박영선’ 연대설을 접한 한 분석가의 말이다. 둘은 50대(안희정 52·박영선 57)다. 서울 4선(박영선)과 충남지사 재선(안희정)의 결합이다. 원조 친노(친노무현)와 비노(비노무현)의 만남이다. 친문(친문재인)과는 결이 다른 비문(비문재인)이란 교집합을 형성한다. 구도로는 ‘비문’, 세대로는 ‘50대’, 지역으로는 ‘서울+충청’을 아우르는 연대인 셈이다.
여의도 문법으로만 해석하면 구도와 지역에선 ‘중도플랫폼’ 구축, 세대에선 50대 기수론 등 ‘세대교체론’이 가능하다. 이 둘이 만나면, ‘세력·시대교체론’의 물꼬를 틀 수 있다. 비문과 중도플랫폼, 50대 기수론 등은 최대 ‘트리플 선거’가 예정된 내년 6월 정국의 판을 뒤흔드는 핵심 변수다. 내년 지방선거를 통해 당권 및 차기 대권 고지 선점을 위한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는 얘기다.
‘안희정·박영선’ 연대설은 인물 구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세 결집이다. 정부여당의 최대 주주는 친문계다. 청와대도 당 주류도 친문 일색이다. 자기 세력의 구축이 없는 ‘원조 친노’의 개인플레이로는 한계가 있다는 게 당 안팎의 평가다. 안 지사는 민주당 대선 경선 과정에서 충청 대망론을 넘어 ‘신드롬’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념적 좌표를 ‘중도 실용’으로 옮기면서 핵심 지지층 결집 싸움인 당내 경선에서 무릎을 꿇었다. 민주당 한 보좌관은 “안 지사의 과제는 단순히 친문을 반대하는 이들의 대표가 아닌, 안희정의 가치를 신뢰하고 지지 세력을 구축하느냐에 달렸다”고 말했다.
안 지사가 대선 이후에도 친문과 결을 달리하며 자기 정치에 시동을 건 까닭도 이와 무관치 않다. 대표적인 게 11월 28일 성북구청장 초청 강연이다. 안 지사는 “현재 보면 (대통령 지지자들은) 이견 자체를 싫어하는 것처럼 보인다”라며 “그런 지지 운동으로는 정부를 못 지킨다”라고 쓴소리를 던졌다. 이후 안 지사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친문 지지자들에게 “당신은 대통령이 못 될 것”이라며 뭇매를 맞았다.
박 의원도 마찬가지다. 지난 대선 막판 문재인 캠프에 합류했지만, 2014년 비상대책위원장 불명예 퇴진 과정에서 박 의원과 친문계는 섞일 수 없는 ‘물과 기름’ 관계로 전락했다. 출범 이후 박 의원은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레닌 모레노 에콰도르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했지만, 친문계 내부에선 ‘박영선 비토’ 기류가 적지 않다. 이에 박 의원이 최근 친문계 의원들과 두루 접촉하며 지지를 당부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문 대통령도 1기 정부 구성 때 중소기업 인사들이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1순위로 추천한 박 의원의 손을 끝내 잡지 않았다. 박 의원이 서울시장 출마 결심을 굳힌 결정적 계기였다. 박 의원은 문 대통령이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후보자로 지명한 직후인 11월부터 매주 일요일 ‘박영선, 서울을 걷다’ 프로젝트를 시작한 데 이어 대학 초청 강연을 통해 본격적인 스킨십 정치에 나섰다.
박 의원 측은 출마 의사를 밝힌 민병두 의원 등보다는 현역인 박원순 서울시장과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추미애 민주당 대표 행보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특히 추 대표 서울시장 출마설의 불이 꺼지지 않으면서 ‘여걸 전쟁’에도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박 의원 측 관계자는 “아무래도 추 대표 행보에 신경이 쓰이는 것은 사실”이라고 귀띔했다.
‘안희정·박영선’ 연대의 변수는 안 지사의 향후 행보다. 서울시장 출마를 굳힌 박 의원과는 달리, 안 지사는 안갯속이다. 다만 내년 6월 재보선의 판이 미니 총선급으로 커진 만큼, 여의도행을 위한 ‘안희정 등판설’이 힘을 받는 모양새다.
여의도행 열차의 기적소리는 이미 울렸다는 전망도 많다. 안 지사는 12월 8∼9일 이틀간 열린 당 선출직공직자평가위원회(평가위) 면접평가에 대리인을 보냈다. 정치권 안팎에선 안 지사가 당의 이례적인 현역 광역자치단체장 면접평가에 불참하자, 사실상 3선 포기로 마음을 굳힌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최명길 전 국민의당 의원의 선거무효형 확정판결 이후 안 지사는 ‘송파을 등판설’에 휩싸였다. 서울, 그것도 보수의 성향이 강한 강남권에서 안 지사가 당선될 경우 파급력은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재보선 당선→차기 당권 탈환→2022년 대권 도전’ 프로젝트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다. 민주당의 차기 당대표 경선은 내년 8월께다. 재보선이 끝난 지 두 달여 만에 당권 싸움에 돌입하는 셈이다. 안 지사가 재보선이나 당 대표 중 한 가지만 택할 수도 있지만, 지방선거 역학구도에 따라 권력쟁취 속도전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안 지사가 재보선에 승리한 후 당권까지 탈환한다면, 여의도 최대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보수진영 관계자도 “친문 지지를 업고 당선된 ‘추미애 체제’가 막 내리고 50대 기수론의 안 지사가 바통을 이어받는 것 자체가 큰 정치적 의미를 지닐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내년 서울시장 선거와 재보선에서 당선 내지 기초자치단체선거에서 자기 사람 심기에 성공한다는 것은 ‘포스트 문재인’ 체제 구축에 시동을 걸 수 있다는 의미다. 안 지사 측은 이르면 12월 하순께 3선 도전 여부에 관한 입장을 피력할 예정이다.
박 의원도 마찬가지다. 최근 여의도 정가에는 ‘후보 교체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문 대통령의 입 역할을 하는 김경수 의원이 박 시장에게 경남지사 출마를 권유했다는 얘기가 돌면서 친문계의 후보 교체론 의혹은 한층 증폭하는 모양새다. 여의도로 복귀하는 안 지사가 자신의 조직을 박 의원에게 밀어준다면, 만만치 않은 파괴력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권력의지가 강한 박 의원도 안 지사 조직을 등에 업고 범주류와의 관계를 회복하면, 판은 달라질 수도 있다.
당내 최대 주주인 친문계의 최종 선택이 임 실장일지 추 대표일지 아니면 제3후보일지는 미지수지만, 2014년 지방선거 분위기와는 확연히 차이가 난다는 게 당 안팎의 대체적 평가다. 비문계 한 인사는 “광역자치단체장 3선을 한다고 해도 임기 말 좋은 평가를 받을지는 미지수”라며 “지방 권력 10년이면 장기집권인데, 아무리 박원순의 길이 있다고 해도…”라고 전했다.
안 지사 행보도 박 시장에게는 걸림돌이다. 당내 후보교체론에도 3선 도전을 강행하는 박 시장과 3선 도전을 포기하는 안 지사의 행보가 대비될 경우 박 시장에게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자유한국당 한 당직자도 “우리 국민은 여야 중 어느 한쪽에 권력을 몰아주지 않지만, 한 사람의 장기집권도 좋아하지 않는다”라며 “이는 보수와 진보를 넘는 작동기제”라고 밝혔다.
‘안희정·박영선’ 연대의 파괴력 극대화는 단순히 비문 프레임을 넘어 새로운 판을 짜느냐에 달릴 것으로 보인다. 친문계가 서울시장 후보교체론에 군불을 지핀 이상, 이들도 내부 역학구도를 ‘친문 vs 비문’에 한정할 이유는 없다. 일단 안 지사의 재보선이나 당권 도전, 박 의원의 서울시장 퍼즐을 맞춘 뒤 민주당 지지도가 30% 선으로 떨어지는 시점이 되면 이들의 정치적 공간은 열린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민주당 지지도가 현재의 3분의 2 수준으로 하락하면, 비문이 당 개혁을 앞세워 치고 나갈 수 있을 것”이라며 “이들의 연대는 그 판을 위한 첫 단추”라고 설명했다.
윤지상 언론인
우상호·이인영…86그룹 자기 정치 성공할까 문재인 정부 신주류로 떠오른 86(80년대 학번·60년대 생)그룹이 시험대에 올랐다. 한때 ‘동네북’으로 전락했던 86그룹이 정권 실세로 부상, 그간 실패했던 자기 정치 구축에 성공할지 정가의 이목이 쏠린다. 분기점은 내년 6·13 지방선거다. 자기 정치에 시동을 건 86그룹의 운명도 이 기점으로 희비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86그룹이 서울시장 등 광역자치단체장에 대거 진입한다면, 문재인 정부 중·후반기 내부 역학 구도에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한 분석가는 “86그룹이 지방선거에서 존재감을 보여준다면, 오는 2020년 총선을 앞두고 당원 구축 등 자기 세력 구축에 청신호가 켜질 것”이라고 전했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의 임기는 내년 8월까지다. 86그룹이 문재인 정부 중반기 청와대와 호흡을 맞출 대표직에 오를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셈이다. 반대의 경우 혁신의 주체에서 ‘물갈이 대상’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당의 차기 전당대회와 21대 총선 공천 과정에서 86그룹 아킬레스건인 ‘하방정치·숙주정치’가 재부상할 수 있다는 얘기다. 현재 청와대 참모진을 제외한 당내 86그룹 가운데 지방선거 출마자로 거론되는 대표적인 인사는 우상호·이인영 의원이다. 두 의원 모두 서울시장 후보군에 올랐다. 다만 이 의원보다는 우 의원이 서울시장 출마에 적극적이다. 우 의원은 최근 측근들에게 ‘이 의원의 불출마’를 전제로 서울시장 출마 의사를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이나 학번은 우 의원(1962년생·81학번)이 이 의원(1964년생·84학번)보다 위지만, 87년 6월 항쟁을 이끈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조직에선 이 의원이 선수다. 전대협 1기 시절 이 의원은 의장, 우 의원은 부의장이었다. 전대협동우회 초대 회장도 이 의원이 맡았다. 민주당 한 보좌관은 “우 의원이 그간 이 의원에게 당권 도전 등을 양보했던 것은 특유의 ‘운동권 기수’ 문화가 한몫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민주당 전신)의 2·8 전당대회 당시에도 우 의원은 출마를 타진했지만, 이 의원이 86그룹의 대표로 나가면서 공동 출마가 무산된 바 있다. 당시 1위는 문재인 대통령으로 득표율 45.3%를 기록했다. 박지원 국민의당 의원은 41.78%로 뒤를 이었고, 이 의원은 12.92%로 최하위에 그쳤다. 이 의원은 서울시장보다는 차기 당권 도전에 한 발 더 다가서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경우 이 의원은 ‘포스트 추미애’ 자리를 노릴 것으로 보인다. 86그룹의 두 축이 서울시장 후보와 당권을 놓고 일종의 정치 분업화를 꾀하는 모양새다. 한 분석가는 “86그룹이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을 넘으려면 내부 조직문화를 바꾸는 게 먼저”라고 꼬집었다. [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