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월이 지났지만 소녀상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습니다. 용인시청 측이 소녀상 제막식 이후 성금 기탁자들의 이름을 새긴 ‘이름표 조형물’ 추가 설치에 대해 난색을 표하면서, 용인 시민들의 항의가 빗발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용인 시민들과 추진위는 “이름표를 설치해준다던 용인시가 약속을 뒤집었다”며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용인시는 “주변 경관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일요신문i>가 용인 평화비를 둘러싼 ‘이름표 설치 논란’을 파헤쳤습니다.
용인 평화의 소녀상 주변에 널브러진 눈덩이. 박정훈 기자
12월 13일 오후 4시경, 기자는 위안부 소녀상을 찾기 위해 용인시청을 방문했습니다. 당시 온도는 영하 ‘7도’. 손발이 꽁꽁 얼어붙을 정도로 매서운 한파가 느껴지는 날씨였습니다.
추위를 피해 시청사 내부로 들어갔지만 위안부 소녀상에 대한 안내문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시청 안내원에 물어본 뒤 청사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처인구 보건소 옆에서 위안부 소녀상을 간신히 발견했습니다.
용인 평화의 소녀상이 ‘방치’된 모습. 박정훈 기자
소녀상은 외롭고 또 외로워 보였습니다. 용인시청 건물은 하늘을 향해 우뚝 솟아있었지만 평화의 소녀상은 작고 초라한 모습으로 방치된 상태였습니다. 소녀상 앞에는 그 흔한 팻말 하나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소녀상 옆에는 거대한 눈덩이들이 널브러져 있었습니다. 눈덩이가 치워진 곳에 남아있는 물자국이 얼어서 바닥이 쩍쩍 갈라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느껴졌기 때문에, ‘과연 이곳이 소녀상 설치 장소가 맞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용인시 측은 “회계과에서 관리 중입니다. 시장이 잘 관리하라고 지시를 내렸어요. 매일같이 청소하고 있습니다”고 해명했습니다.
소녀상이 수난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소녀상을 더욱 눈물짓는 이유가 있습니다. 용인시가 후원자들의 이름을 새긴 육각기둥(가로 50㎝·세로 50㎝·높이 90㎝) 형태의 이름표 조형물 설치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소녀상 옆에서 1인 시위 중인 서윤정씨(좌)와 위안부 소녀상. 박정훈 기자
소녀상 제작비용 3300만 원은 전부 시민들의 후원으로 마련한 금액입니다. 용인시가 바닥 공사에 대한 비용을 보조했지만 소녀상은 온전히 시민들의 성금으로 제작됐습니다. 용인시민들이 혹한의 날시 속에서 소녀상 옆에 앉아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는 이유입니다.
이날 1인 시위에 참여한 서윤정 씨는 “너무 억울해서 나왔습니다. 용인시가 주변경관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이름표 설치를 못하겠다고 했어요. 올해 2월초부터 돼지저금통을 가게에서 받고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매주 진짜 열심히 모금활동을 했는데…”라고 밝혔습니다.
서 씨는 “소녀상이 있는 다른 도시에는 시민들의 이름이 있습니다. 왜 용인에는 세울 수 없습니까”라는 팻말을 들고 있었습니다.
서 씨의 말대로 시민 성금으로 세워진 다른 위안부 소녀상 옆에는 후원의 뜻이 담긴 ‘이름표’가 있습니다. 아래 ‘용산 평화의 소녀상’ 사진이 보이시나요?
서울 용산구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 이름표 조형물이 설치돼있다. 박정훈 기자
용산 평화의 소녀상엔 기금 모금에 함께한 후원자들의 이름이 새겨진 명판이 있습니다. 명판과 소녀상과 함께 제작해 역사의 기록으로 남겨두려는 취지를 담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용인시청은 ‘꿈쩍’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소녀상 업무를 위임받은 관리위원 A 씨도 “동상 제막 전에 용인시와 회의할 때, 소녀상과 이름표를 일괄적으로 설치하자고 의견을 좁혔어요. 정말 구분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막상 제막 이후에 용인시 입장이 뒤집혔어요. ‘주변 경관’ 얘기를 계속하는데 다른 의도가 있어 보입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용인시가 이름표 설치를 거부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요? 정말로 ‘주변 경관 방해‘가 그 이유일까요. 일단 용인시는 제막식 이후 추진위 측에 “소녀상 설치 후 주변 조형물과의 조화를 고려해 이름표 조형물 설치는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용인시 여성가족과 관계자는 “소녀상 옆에 보면 용인시민의 뜻으로 만들었다는 글귀가 있어요. 그런데 이름표 조형물이 세워지면 주변 경관과 맞지가 않아요”라고 설명했습니다. 용인시 측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경 탓에 후원인들은 그야말로 ‘패닉’ 상태입니다.
용인시는 또 다른 이유를 들었습니다. 이름표 조형물이 공공디자인위원회의 심의대상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용인시 여성가족과 관계자 B 씨는 “시에 설치하는 공공조형물은 공공디자인과의 심의를 거쳐야 합니다. 심의 당시 소녀상은 크기와 재료가 정확하게 있었지만 이름표 조형물은 크기만 있었습니다. 이름표 조형물에 대한 심의가 준비 되지 않았습니다”고 설명했습니다.
용인시청 전경. 박정훈 기자
하지만 용인시 도시디자인과의 의견은 달랐습니다. 도시디자인과 관계자는 “8월 4일에 여성가족과에서 공공디자인에 대한 심의요청이 들어와서 위원회를 열고 8일까지 심의를 했어요. 소녀상과 이름표를 함께 심의했습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심의위원 8명 대다수가 조건부 가결을 했는데 보행 안전에 위험요소가 없도록 하고 조형물이 주변에 조화될 수 있게 설치하라는 의견이 나왔어요. 이름표만 설치하지 말라고 세세하게 작은 의견으로 나간 것이 아닙니다”고 전했습니다.
‘평화의 소녀상’이라는 공공 조형물 심의에 이름표 조형물도 심의를 통과했다는 뜻입니다. 용인시 도시디자인과가 서면으로 진행한 공공디자인위원회 심의에서 심의위원 27명 중 8명이 이름표를 포함한 전체 조형물에 ‘조건부 가결’ 결정을 했던 것입니다.
여성가족과 입장과는 전혀 다른 얘기였습니다. 여성가족과 관계자는 “디자인부서에서 우리 쪽으로 심의결과를 공지할 때 ‘설치계획 변경시 별도 협의 득할 것’이라는 전제를 달았습니다. 이름표는 재협의 대상이었어요”라고 반박했습니다.
하지만 용인시 측은 제막식 직전, 이름표 설치를 ‘재협의’ 대상으로 결정한 점도 추진위 쪽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여성가족과 관계자는 “급하게 하다보니 미리 말씀드릴 시간이 없어 일이 촉박하게 진행이 됐어요. 통보를 하지 않았습니다. 제막식 날짜를 맞추느라 추진위도 힘들었겠지만 우리도 힘들었습니다”고 덧붙였습니다.
용인시 평화의 소녀상 건립 추진위 페이스북 캡처.
용인시민들은 매주 수요일마다 1인 시위를 시작했습니다. 11월 15일 수요일, 서윤정 씨는 “용인의 소녀상 곁에는 시민들의 이름을 쓸 수가 없습니다. 왜 그런지 묻기 위해 오늘부터 매주 수요일에 1인 시위를 합니다”고 밝혔습니다. 서 씨는 물론 다수의 시민들이 용인시에 1인 시위로 항의 의사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서윤정 씨는 “제막식이 끝났지만 이름표 조형물에 대한 기대가 있었어요. 이름표 조형물을 만들면 오타가 나오기 때문에, 명단 파악을 위해 후원인들에게 공지해서 현수막도 만들었습니다. 그 현수막을 최근 소녀상 뒤편에 걸었는데 용인시에서 떼어갔습니다”고 밝혔습니다.
추진위 페이스북에 올라온 공지(좌)와 소녀상과 현수막. 추진위 홈페이지 캡처
시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용인시는 ‘1인 시위’에 대해서도 불만의 목소리를 드러냈다고 합니다. 용인시 여성 가족과 관계자는 “현수막을 띤 것은 사실입니다. 허락받지 않고 현수막을 걸었기 때문입니다. 1인 시위는 추진위의 업무를 이어받은 관리위와 통일된 목소리를 내달라고 부탁을 했을 뿐입니다”고 해명했습니다.
시민들은 억울한 심정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지난 3월부터 ‘용인 평화의 소녀상 건립 추진위원회’를 결성하고 모금활동에 나섰습니다. 청소년들과 자원봉사자들은 용인시 기흥구, 처인구, 수지구등 주요 거리, 아파트를 돌면서 도움을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중고생은 물론 어린아이들도 동참했습니다.
돼지저금통 모금 장면. 추진위 페이스북 캡처
‘돼지저금통’이 보이시나요? 포은 문화재 등 대규모 지역 행사가 있는 곳엔 어김없이 돼지저금통과 모금함이 등장했습니다. 앞서의 관리위원 A 씨는 “조그마한 돼지저금통에 시민들 정성을 담았어요. 순수한 목적으로 시민들이 참여하는 행사에 가서 열심히 모금했습니다”고 전했습니다.
약 6개월간 모인 성금액은 약 7390만원. 이 중 3300만원이 소녀상 제작비용으로 사용됐습니다. 추진위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계시는 나눔의 집과 한국정신대문제 대책협의회(정대협)에 1300만원과 300만 원을 각각 기부했습니다.
시민들의 성금 모습. 추진위 페이스북 캡처
서윤정 씨는 “1인 시위도 못하게 하고 현수막도 걸 수 없었어요. 돼지저금통, 거리 캠패인 등으로 한여름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모금했습니다. 소녀상 옆에 이름표 하나를 세우는 것이 이렇게 힘든 일인 줄 몰랐습니다”라고 호소했습니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