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스카이로드 입구에 설치된 한·영 안내판
낮 시간대의 스카이로드 전경
대전 스카이로드 프로젝트는 본래 도시재생의 일환으로 진행됐다. 원도심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1년이 넘는 공사기간을 거쳐 지난 2013년 8월에 완공됐다. 총 공사비 165억 원(국비 82억 원, 시비 83억 원)이 투입된 스카이로드는 화려한 영상쇼 등으로 시민에게 즐거움을 제공하기 위한 대전시의 야심찬 결과물이다. 하지만 지금 실상은 어떨까.
12월 13일 11시경 기자가 대낮에 마주한 스카이로드는 거대한 고철에 불과했다. 스카이로드가 동절기에는 야간(오후 6시~10시)에만 운영돼서다. 스카이로드의 우람함은 오히려 전경을 해쳤다. 보는 이로 하여금 갑갑함마저 느끼게 했다.
대전시의 계획대로라면 2017년 스카이로드가 들어선 으능정이 거리는 대전 랜드마크에서 세계적인 명품문화거리로 탈바꿈돼 있었어야 했다. 하지만 이곳은 아직 대전 랜드마크로 거듭나기도 힘겨워 보였다.
낮 시간 동안 감상할 수 있는 것은 아름다운 영상이 아니었다. 촘촘한 망을 이루는 검은 철골천지였다. 스카이로드 입구 주변과 몇몇 기둥에 설치된 대형 모니터도 작동하지 않았다. 일정한 간격으로 세워진 기둥도 미관을 해치기에 충분했다. 하늘을 가린 LED 스크린에 드리워진 그림자는 햇빛을 막아서고 있었다.
스카이로드 운영을 맡고 있는 대전마케팅공사 관계자는 “영상을 틀지 않는 낮 시간대엔 거리가 삭막하다, 기둥마다 조형물을 달거나 간판을 새롭게 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19년간 대전에서 거주해 온 곽재민 씨는 “지역 명물을 위한 명물이지, 대전의 문화나 전통을 가져가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는 듯하다. 돈만 아깝다”고 말했다. 대학생인 우 아무개 씨는 “스카이로드 건립 목적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다면 스카이로드의 화려한 LED 스크린이 작동하는 밤은 어떨까. 6시, 영상이 시작됐지만 이를 보기 위해 하늘을 향해 고개 드는 이들은 극소수였다. 영상 내용이 시선을 끌 정도로 흥미롭지 못해서다.
LED 영상을 보기 위해 고개 드는 이들은 극소수였다.
무엇보다 광고가 문제였다. 스카이로드 스크린에 나온 광고 영상이 한 회 상영시간인 50분 중 절반을 차지했다. 여행사·학원·음식점 등 초대형 전자 광고판을 보는 듯했다. 그나마 볼거리가 있는 유명 미디어 아트 작가들의 작품 상영 시간은 고작 10~15분에 불과했다.
시민 참여형 문자메시지 화면과 아이돌 가수의 뮤직비디오 영상은 각각 10분, 5분씩 상영됐다. 시민들은 스카이로드보다 길가에 세워진 크리스마스 트리를 배경으로 ‘셀카’ 찍기에 몰두했다.
화장품 가게 사장인 A 씨는 “개인이 돈 들여 광고하는 걸 막을 순 없지만, 시민들이 더 좋아할 만한 영상을 틀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휴대폰 용품점을 운영 중인 F 씨는 “시가 운영하다 보니 영상들이 딱딱한 맛이 있다. 스크린에 미술 사진전을 백날 튼다고 누가 보겠냐. 젊은이들을 끌어 들일 만한 영상을 개발해야 한다. 이에 대한 고민이 없으면 스카이로드는 고철 덩어리로 남게될 것”이라고 말했다.
식당 광고영상이 스카이로드 메인스크린을 가득 메우고 있다. 한 회 상영시간인 50분 중 절반은 광고영상이다.
스카이로드의 낮은 활용가치에 대한 지적도 이어졌다. 직장인 유 아무개 씨는 “시민들이 문자 보내면 스크린에 띄워주고, 가끔 카메라로 거리를 비춰 시민들 모습 보여주는 게 전부”라며 “왜 돈을 들여서 하는지 모르겠다. 전형적인 전시행정”이라고 비판했다. 이를 지나친 고등학생 B 군도 “가끔 뮤직비디오 틀어주는 거 빼곤 딱히 활용을 못하는 것 같다”며 “비 올 때 우산 안 써도 되는 건 좋다”라고 비꼬았다.
스카이로드가 내뿜는 굉음(?)에 대해서도 불만이 쏟아졌다. 취업준비생인 서한나 씨는 “스카이로드 건립 후 볼거리는커녕 영상소리가 주변 가게 음악소리와 맞물리면서 길거리가 더 소란스러워졌다. 그런 곳에서 예술 작품을 상영한다 한들 제대로 감상할 수 있겠냐”고 말했다. 대전마케팅 공사 관계자는 “상가 측과 협의해 최대한 문제를 줄여보고자 노력 중”이라고 답했다.
스카이로드 아래서 장사를 하는 상인들의 불만은 일반 시민들보다 더했다. 완공 이후 매출과 유동인구 모두 큰 변화가 없어서다. 24년간 참치 식당을 운영해온 C 사장은 “스카이로드 공사로 손님들이 오지 않아 불편이 컸지만 완공 후 좋은 일이 있을 거란 생각으로 버텼다. 하지만 스카이로드 건립 후 손님은 더 떨어져나갔다”고 불평했다. 다른 식당의 D 사장도 “스카이로드가 별 효과를 내지 못했다”며 “매출 변화는 없다”고 의견을 함께 했다.
대전시가 시너지효과를 노리며 공휴일 등에 주최하는 거리 퍼포먼스, 댄스파티 등의 이벤트도 상인들에게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듯했다. 화장품 가게 점원 E 씨는 “이벤트가 열리면 사람이 몰리지만 가게 매출로 이어지진 않는다”며 “스카이로드를 보러 온 사람들도 그냥 전광판만 구경하고 가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중화요리 전문점에서 일하는 F 씨도 “사람들이 가게까지 찾아오진 않는다”며 “오히려 시에서 주최하는 각종 행사가 장사에 방해만 된다”고 불평했다. 감자탕집 G 사장은 ”날씨가 선선한 9월, 10월에 문을 열면 손님들이 시끄러워 밥을 먹을 수 없다며 그냥 나가버리곤 한다“고 불편을 호소했다.
‘젠트리피케이션‘도 심각하다. 스카이로드 건립 이후 치솟는 임대료 때문에 기존의 상인들이 쫓겨나는 현상이다. 앞서의 G 사장은 “3년 사이 임대료가 450만 원에서 650만 원으로 뛰었다. 한 30% 정도 오른 셈”이라고 설명했다.
2010년부터 카페를 운영해온 H 사장도 “저희 가게 임대료는 40% 정도 뛰었다. 공사로 인한 불편은 우리가 겪었는데 완공 후 보상은 다른 이들이 가져가는 듯하다”며 “스카이로드 초입에 있는 가게 임대료는 월 1000만 원을 훌쩍 넘는다고 들었다”고 설명했다.
으능정이 거리 곳곳에 임대 현수막이 걸려있다. 높은 임대료를 버티지 못하고 자리를 비운 가게들이다.
곳곳에 ‘임대문의’ 현수막이 내걸린 점도 이와 무관치 않다. 건물주가 높은 임대료를 요구하다보니, 외부 가게 사장들이 쉽사리 입주할 엄두를 쉽게 못 낸다는 것이 상인들의 설명이다.
부동산 업체 관계자들도 상인·시민 의견에 공감했다. 1년 3개월간의 스카이로드 공사기간이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고 분석했다. 공인중개사 I 씨는 “2012년에 시작된 공사로 사람들이 한동안 이 거리를 찾지 않게 됐다. 술집들은 대거 다른 지역으로 자리를 옮겼고 그 자리엔 현재 분식집들이 들어섰다“며 ”으능정이 거리엔 소비력이 낮은 중·고등학생들만이 찾는다. 상권이 살아날 수 없다“고 분석했다.
다른 공인중개사는 ”공사 전후로 유동인구는 동일하다고 본다. 다만 그 유동인구 회복속도가 더뎠고, 그 사이 임대료는 올라 스카이로드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에 대해 대전마케팅공사 관계자는 “임대료 상승문제 문제는 우리가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대전=이성진 인턴기자 ls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