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성탄절 미국행 여객기 테러기도 사건 이후 취해진 보안강화 조치로 항공기 이륙 지연이 속출하고 있다. 사진은 캐나다 토론토 국제공항에서 탑승을 기다리고 있는 승객들. AP/연합 | ||
암스테르담의 스히폴 공항에서 출발했던 노스웨스트 항공 253편이 목적지인 디트로이트 공항에 무사히 착륙할 수 있었던 것은 승객들과 승무원들의 용감하고 신속한 행동, 그리고 다행이라면 다행인 테러범의 어수룩한 실수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승객 278명과 승무원 11명은 모두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번 사건으로 다시 한번 테러 공포에 휩싸인 미국인들은 그동안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던 미국의 대테러 정책에 비난의 화살을 퍼붓고 있는가 하면, 철통 같다던 보안시스템에 구멍이 뚫렸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미 정부가 9·11 테러 이후 대테러 안보에 쏟아 붓고 있는 돈은 매달 20억 달러(약 2조 330억 원). 하지만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신무기 개발이나 군사 훈련 등 전쟁과 관련된 분야이지 여객기나 기차, 지하철역, 공항 등의 폭탄 테러와 관련된 예산 책정은 그에 비해 미미한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미 정부는 2001년 이후 테러 전담부서인 국토안보부를 신설하고 방대한 정보망을 통해 테러 용의자들을 집중 감시하는 한편 주요 공항마다 최첨단 보안검색장비를 설치하는 등 국가안보에 만전을 기해왔다.
하지만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미국에서는 비록 실패하긴 했지만 여러 차례에 걸친 테러 시도가 있어왔다. 이와 관련 미국의 <타임>은 “9·11 이후 공항의 보안검색은 눈에 띄게 강화됐지만 이를 피하기 위한 테러 기술도 발전했다. 그것이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이를 증명하듯 이번 테러 미수범 역시 마치 첨단시스템을 비웃기라도 하듯 몸속에 폭발물을 지닌 채 유유히 공항의 보안검색대를 통과했던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그의 이름은 우마르 파루크 압둘무탈라브(23). 나이지리아 출신인 그는 영국의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유학생이었다. 아버지 알하지 우마르 무탈라브는 나이지리아 퍼스트뱅크의 은행장을 역임했고, 한때 장관으로 재직했던 거물이었다.
하지만 과격한 이슬람 신자였던 압둘무탈라브는 이런 종교적인 성향 때문에 가족들의 걱정을 샀으며, 2개월 전부터는 가족들과도 연락을 끊은 채 고립된 생활을 해왔다.
아버지 무탈라브는 아들의 이런 과격한 성향을 걱정한 나머지 사건 발생 6개월 전에 나이지리아 정부와 라고스 주재 미 대사관에 “아들이 걱정된다. 아들을 조심하라”는 경고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압둘무탈라브의 이름이 55만 명이 등록되어 있는 미 국가대테러센터의 테러리스트감시명단(TIDE)에 올랐던 것은 불과 1개월 전이었다. TIDE 명단 중 일부는 연방수사국(FBI)이 관리하는 테러리스트검색데이터베이스(TSDB)로 넘겨지고, 이 명단을 토대로 다시 미 교통보안국이 탑승금지 명단을 작성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조사 결과 압둘무탈라브의 이름은 TSDB로 넘겨지지 않았고, 결국 항공기탑승금지명단(4000명)에도 포함되어 있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 테러범 압둘무탈라브(아래 사진)가 비행기 폭파 계획이 무산된 후 체포되는 모습. | ||
또한 압둘무탈라브가 어떻게 폭발물을 소지한 채 기내에 탑승할 수 있었는지도 논란이 되고 있다. 그렇게 자랑하던 철통 같은 공항의 첨단보안검색시스템이 결국 무용지물 아니었냐는 것이다. 그것도 유럽 최고의 안전시스템을 자랑한다던 암스테르담에서 말이다.
압둘무탈라브가 소지하고 있던 폭발물은 PETN(펜타에리트리톨 테트라니트레이트)으로 알려진 고성능 폭발물질로 분말가루와 액체로 이루어져 있다. 그는 분말가루 80g을 콘돔 안에 넣은 후 속옷 안 사타구니 근처에 꿰매서 고정시켜 검색대를 통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금속이 아닌 데다 냄새도 거의 나지 않기 때문에 통과가 가능했던 것이다. 제아무리 첨단장치라 해도 소용이 없었다는 이야기다.
이런 사태를 예방하기 위해 현재 암스테르담의 히스폴 공항에는 엑스레이 투시장치를 도입하느냐를 놓고 설전이 오가고 있다. 인권침해 및 사생활 침해라는 주장과 테러 예방을 위해서라면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설령 분말가루는 그렇다 해도 압둘무탈라브가 액체를 소지하고 있었다는 점은 분명히 논란이 되기에 충분한 점이다. 이에 래리 존슨 전 CIA 요원은 “솔직히 말하면 마음만 먹고 잘 숨기면 0.9㎏ 이상의 액체를 지니고 탑승해도 보안검색에 걸리지 않고 통과할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이 벌거벗은 채 탑승하지 않는 한 폭발물을 철저하게 가려낼 기술은 아직 없다”고 인정했다.
한편 클리브 어빙 항공 전문가는 미국 내 공항들이 테러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아무리 새로운 최첨단 검사장비를 설치한다 해도 너무 낡고 오래된 공항들은 공간부족, 인력부족 등으로 철저한 보안체계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테러범들의 수법이 점차 교묘해지고 치밀해지는 데 비해, 그리고 여행객들의 수가 급증하는 것에 비해 공항들의 수준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미국 정부는 9·11 발생 7년 만인 지난 2008년 국토안보부 산하 교통안전청(TSA)을 통해 총 6억 달러(약 7000억 원)를 들여 대대적으로 미 전역의 공항을 개보수하겠노라고 발표했다. 예를 들어 시카고 오헤어 국제공항의 ‘터미널 1’에 1360만 달러(약 150억 원)를 들여 최첨단 폭발물 검색시스템을 설치하겠다는 것이었다. 또한 애틀랜타, 올랜도, 필라델피아, 샌프란시스코 등 다른 16개 국제공항에도 비슷한 시스템을 도입할 계획이라고도 발표했다. 여기에는 현재 영국 히드로 공항에 도입된 소형 크기의 폭발물 감지시스템도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보안검색이 철저해진다는 것은 그만큼 승객들의 불편이 가중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사고 발생 다음 날 런던발 미국행의 모든 기내에서는 오락서비스가 일체 중단됐다. 영화는 물론 음악도 들을 수 없었고, 기내에 반입할 수 있는 짐도 단 한 개로 제한됐다.
도착하기 한 시간 전부터는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으며, 심지어 화장실에 가는 것도 금지되었다. 비행 중에는 담요나 쿠션, 코트 등 어떠한 물건도 무릎 위에 올려 놓아서는 안 되며, 인터넷이나 전화 사용도 금지되었다.
심지어 현재의 비행 위치나 남은 시간 및 도착 시간을 안내하는 기내방송도 중단됐다. 이유는 이 정보가 테러범들에게는 요긴한 정보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실제 압둘무탈라브는 디트로이트에 거의 다 온 것을 인지한 상태에서 일부러 범행을 시도했었다. 그가 착륙하기 직전 폭발을 시도한 것은 사상자를 최대화하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이럴 경우 비행기 탑승객뿐만 아니라 폭파된 기체 잔해로 인해 지상에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피해가 가게 되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자신들만 피해를 보게 됐다고 말하는 미국인들은 “승객들의 수하물을 뒤지는 데에만 열중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TIDE 명단에 있던 사람이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 있었는지 그것부터 알아내라”고 비난하고 있다.
테러 미수 사건들
2001년 신발테러 닮은 꼴
▲ CCTV에 잡힌 니키 릴리의 모습. | ||
▲신발 테러=2001년 12월 파리발 마이애미행 비행기에 탑승했던 리처드 리드가 신발 안에 폭발물을 감추고 탑승했다가 적발된 사건. 당시 그는 자리에 앉아 중얼거리면서 성냥에 불을 붙이다가 이를 수상하게 여긴 승무원의 눈에 띄어 발각됐다. 신발에서 철사줄이 삐죽 나와있는 것을 본 한 승객이 그의 행동을 저지해서 실패했다.
▲리버티 시티 세븐=2006년 6월, 7명의 청년들이 모여서 ‘리버티 시티 세븐’이라는 테러조직을 결성했다. 이들의 목표는 시카고의 110층 고층건물인 시어스 타워를 폭파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계획은 FBI의 정보원에게 발각되어 미수에 그쳤다.
▲포트 딕스 사건=2006년 다섯 명의 남성들이 뉴저지주 포트 딕스에 있는 국방부 건물을 공격할 계획을 세웠다. 몸에 수류탄을 장착하고 건물로 뛰어들어가 권총으로 위협하려던 계획을 세웠던 이들은 철저한 준비를 했다. 하지만 어이없게도 자신들의 테러작전을 녹화한 테이프를 복사하기 위해서 맡긴 가게 점원의 신고로 체포됐다.
▲데이비드 맥메너미=2006년 아이오와주 데븐포트의 에드거튼 여성병원을 폭파하려다 실패했다. 당시 자동차에 가솔린을 뿌린 후 돌진했지만 폭발이 일어나지 않자 차에서 내려 자동차에 가솔린을 더 뿌리다가 체포됐다.
▲글래스고 공항 폭파사건=2007년 두 명의 남성이 지프차에 프로판 가스통을 싣고 공항으로 돌진했다. 하지만 지프차가 문을 뚫지 못하고 멈추자 밖으로 내려서 가솔린을 뿌려 자동차에 불을 붙이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시민들의 저지로 결국 자신들의 몸에만 불이 붙었고,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니키 릴리=2008년 발달장애의 일종인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던 니키 릴리가 영국 엑세터의 한 레스토랑에서 폭탄을 터뜨리려다 실패한 사건. 화장실에서 폭탄을 터뜨리려 했지만 본인만 화상을 입었다. 릴리의 변호인은 이슬람단체가 장애를 앓는 릴리를 이용해서 일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브롱스 폭파사건=2009년 5월 네 명의 청년이 브롱스의 유대교 회당을 폭파하려다 체포됐다. 또한 이들은 지대공 미사일로 비행기를 쏘려는 계획도 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이를 눈치 챈 주변 사람들의 신고로 체포됐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