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중국 경호원에게 폭행당한 한국 기자’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고성준 기자
[일요신문] 문재인 대통령 중국 방문에 동행한 청와대 출입 사진기자들이 중국 측 경호원들로부터 집단 폭행을 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둘러싼 양국의 갈등이 첨예한 가운데,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12월 14일(현지시간) 오전 10시 50분께 베이징 시내 국가회의중심에서 ‘열린 한중 경제·무역 파트너십 개막식’에 참석했다. 사진기자들은 문 대통령이 개막식 일정을 마친 뒤 식장에서 나와 중앙복도로 이동하자 그 동선을 따라 나오기를 시도했다. 그러던 중 중국 측 경호원들이 갑작스럽게 한국 기자들 출입을 막았다.
중국 경호원들 제지로 문 대통령과 한국 측 경호원들만 개막식장을 빠져 나갔고, 한국일보 소속 고 아무개 사진기자가 이에 항의했다. 그러자 중국 경호원들은 고 기자 멱살을 잡고 넘어뜨렸다. 고 기자는 바닥에 누운 채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이를 발견한 연합뉴스 사진기자가 사진 촬영을 시도하자 중국 경호원들은 카메라를 뺏어 집어 던지는 시도도 했다.
한 차례 소동이 있은 뒤인 오전 11시쯤 기자들은 문 대통령을 따라 맞은편 스타트업 홀로 이동했으나, 그곳에서도 또다시 폭행이 일어났다. 이번에도 중국 측 경호원들이 기자들의 취재를 막고 나선 것이다. 이에 사진 기자들은 중국 경호원들에게 취재 비표를 제시했지만, 경호원들은 이를 무시하며 또다시 출입을 막았고 매일경제 소속 이 아무개 사진기자와 한 중국 경호원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그러자 중국 경호원 15여 명이 몰려와 이 기자를 복도로 끌고 나가 벽으로 강하게 밀어붙였다. 이 기자가 벽에 부딪히며 복도에는 ‘쿵’ ‘쿵’ 하는 소리가 울렸다.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멱살 잡은 손) 놔!”, “헤이, 돈 터치! (Hey, don‘t touch)”라며 고성을 질렀지만, 중국 측 경호원들의 집단 구타는 계속됐다.
당시 취재기자들과 춘추관 이주용 국장, 송창욱 국장, 다른 기자들이 중국 경호원들을 뜯어 말렸으나 그들을 막을 수는 없었다. 중국 경호원들은 이 기자를 둥글게 둘러 싸고 주먹질을 시작했다. 이 기자가 폭행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자 한 중국 경호원은 엎어져 있는 그의 얼굴을 구둣발로 세차게 강타하기도 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한국 기자들은 우리 측 경호원을 찾았으나 당시 장소에는 한 명도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아수라장이 된 그곳에서 춘추관 이주용 국장은 “우리 경호원 어디갔냐? (여기로) 좀 와주세요!” “한국 경호 와주세요!”라고 서너번 큰 소리로 외쳤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중국 경호원은 이주용 국장의 뒷덜미를 잡고 뒤로 쓰러뜨렸다. 옆에 있던 송창국 국장도 중국 경호원들로부터 밀려 나가게 됐다. 3분 동안 이어진 상황에서 우리 측 경호원은 찾아오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문 대통령은 식장에 7분 정도 머물 예정이었으나, 외부가 소란스럽다는 이유에서 10분 이상 머물렀다.
뒤늦게 상황을 보고받은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이 현장으로 달려왔고 “다친 기자들을 빨리 병원으로 보내라. 대통령 의료진에게 진료받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윤영찬 수석은 송창국·이주용 국장과 상의하며 더 이상의 취재가 불가하다고 판단, 전속팀과 취재기자 2명을 제외하고 모두 철수시켰다.
상황이 종료된 뒤, 두 기자는 문 대통령 의료진으로부터 응급치료를 받으며 베이징 시내 병원으로 이동했다. 고 기자는 허리 통증을 호소했고, 이 기자는 오른쪽 눈 두덩이가 심각하게 붓고 코피가 양쪽에서 흐르던 상태였다.
폭행을 휘둘렀던 중국 경호원들은 이날 행사 주관인 ‘코트라’가 현지에서 고용한 사설 보안업체인 동시에 중국의 공안 지휘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중국 정부 측도 ‘폭행 사태’에 대한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란 주장도 제기된다.
한편, 사건이 일어났던 당시 폭력 사태가 벌어질 것을 예상할 수 있었던 정황이 여럿 발견됐다. 이주용 국장이 한국 경호팀에 “물리적 충돌 징후가 계속 보이니 신경 써 달라”고 요구했지만, 경호팀은 “중국 경호팀이 매우 협조적이다”라고 답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 사태에 대해 정치권도 비난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야당에선 “외교부 장관을 경질하라”며 비난까지 나온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여기에 대처하는 우리 정부는 무능력하다. 강경화 외교부장관은 중국 왕이 외교부 장관을 만나 유감을 표명했다고 하는데, 강 장관은 (유감을 표명할 것이 아니라) 사과를 받아냈어야 했다”고 꼬집었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중국으로부터 사과를 받아내야지 이 문제를 가지고 우리나라 내부에서 (지금의 야당처럼) 싸울 일은 아니다. 팬 놈이 (사과를 하며) 처리를 해야지 왜 맞은 놈들끼리 싸우나”라며 “중국 정부가 사과를 하냐 마냐를 갖고 우리끼리 갑론을박하면 그것이야 말로 뻔뻔한 가해자 앞에서 억울한 피해자끼리 싸우는 꼴”이라고 했다.
윤태곤 정치평론가는 “사드 보복과 대한민국에 대한 중국의 경계가 점차 풀려가고 있는데, 이번 일과는 무관할 것이다. 이번 일로 (우리 국민이) 중국에 안 좋은 감정을 갖는 수준에서 그칠 것”이라며 ‘양국 외교관계 악화’ 가능성을 일축했다. 윤 평론가는 “한국 정부는 ‘내부 여론이 좋지 못하다’는 것을 잘 활용해야 하며, 중국은 성의 있게 나와서 사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
중국, 관심 표명이 전부? 중국 언론 “공안은 책임 없다” 중국 경호원의 한국 사진 기자 폭행 사건을 둘러싼 한국과 중국의 반응은 미묘한 차이를 보였다. 한국 정부는 중국에 철저한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다. 반면, 중국 정부 측은 외교부 대변인을 통해 ‘관심’을 표했을 뿐 이 사건이 잠잠해질 때까지 말을 아끼는 모양새다. 청와대는 12월 14일 외교부를 통해 중국 정부에 공식 항의의 뜻을 전달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15일 정상회담에서 왕이 외교부 장관에게 이 같은 사건의 재발 방지와 책임자 문책을 요구하며 유감을 표하기도 했다. 정의용 국가안보실장도 사건 당일 문재인 대통령 지시로 입원 중인 사진 기자를 위로 방문하고 병원에 있던 중국 공안 담당자에게 철저한 수사와 책임자 처벌을 당부했다. 한국사진기자협회는 14일 성명서를 통해 “대한민국 국민의 알 권리를 대표해 취재 중인 기자들의 취재를 방해하고 집단 폭행한 것은 대한민국을 폭행한 것과 다름없다”라며 “중국 정부는 이 사건에 대해 즉각 사과하고 관련자를 처벌하라”고 촉구했다. 루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4일 정례 브리핑에서 “이번 행사는 문재인 대통령 방중에 맞춰 한국 측에서 주최한 자체 행사다. 비록 한국이 주최했지만 중국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큰 관심(關心)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중국 외교부 아주국 부국장은 15일 강 장관 요청에 따라 공식 입장을 내놨다. 중국 측은 “이번 사안에 대해 중국 외교부는 관련 부서에 긴급히 진상조사를 요청하고 독려하고 있다”면서도 “사실관계 파악에 시간이 걸리는 상황이다. 진상파악 후에 필요한 조치를 검토할 예정이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CCTV 등 중국 관영 언론의 보도에서는 관련 내용을 찾아보기 힘든 상태다. 중국 관변 매체인 <환구시보>는 “문 대통령 주변에는 한국 측 경호원들이 경호를 맡았고, 외곽에는 중국 경호원들이 상황을 통제했다”며 “(가해자가) 중국 공안이라는 어떤 증거도 없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박현광 인턴기자 mua123@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