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핑 세력들은 날짜와 세세한 시간까지 지정해 그 시점에 특정 코인을 매수하도록 주문한다. 사진=‘텔레그램’ 메신저 캡처
# ‘시그널’ 받는 순간 ‘폭락’
직장인 강 아무개 씨(27)는 지난 10월 가상화폐 투자를 접었다. 급등하는 시세를 따라 ‘모네로’란 가상화폐에 투자했다가 시세가 단번에 폭락해 투자한 돈을 크게 잃었기 때문이다. 강 씨는 “호기롭게 전재산의 3분의 1 정도를 투자했는데 매수하자마자 시세가 30% 정도 떨어지더라”며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나 같은 사람이 수도 없이 많았다”고 말했다.
강 씨가 이 가상화폐에 투자하게 된 계기는 한 메신저의 투자 정보방에서 받은 메시지 때문이다. 메시지는 9월 하드포크 이후 완벽한 익명성을 갖게 된 ‘모네로’의 가치를 높게 평가한다는 내용이었다. 강 씨는 “9월에 하드포크된 것이면 조금 된 내용이었고 새로운 내용은 아니었다”며 “그런데도 방 사람들이 너도 나도 투자해 단기수익 정도 벌 수 있을까 해서 돈을 넣었다가 낭패를 봤다”고 말했다.
강 씨가 받은 메시지의 출처는 ‘디바’라는 펌핑 세력이었다. 현재 텔레그램에 존재하는 이 채팅방엔 2만여 명의 사람들이 들어와 있다. 이들 운영진은 날짜와 세세한 시간까지 지정해 그 시점에 특정 코인을 매수하도록 주문한다. 급격히 상승하는 시세를 본 개미들이 뛰어들기 시작하면 세력들은 가상화폐 보유분을 매도해 차익을 실현한다. 한 가상화폐 전문가는 “그들(세력)은 ‘펌핑’이란 명목으로 모든 사람들이 달라붙게 만들어 올린 가격에 모두 처분할려는 셈이다. 당연히 빠지는 속도도 순식간이다. 추격매수를 한 개미들은 당연히 피해를 보기 마련”이라고 밝혔다.
# “‘VVIP’ 등 유료 회원들은 따로 관리”
현재 전 세계 가상화폐 종류는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포함해 1300여 개에 달한다. 변동성이 큰 군소 가상화폐들이 계속 등장하고 있어 위험성은 점점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업계에 따르면 세력들의 움직임은 이 같은 군소 가상화폐를 일컫는 ‘잡코인’ 세계에서 포착된다. 이들이 개입하는 군소 코인들은 시세가 하루에도 수십 퍼센트 등락한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시가 총액이 적은 가상화폐 같은 경우는 거래가 많이 없어서 한번 수급이 확 쏠리면 가격 변동이 되게 크게 일어난다”고 설명했다.
‘펌핑방’의 핵심 정보들은 VVIP로 일컬어지는 유료 회원들에게 선공개 된 뒤 일반 회원들에게 전달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VVIP 회원이 되는 과정도 까다롭다. 업계에 따르면 VVIP 방은 사전 모집 기간이 있는데 인원수 제한이 있으며 월 0.1 비트코인(15일 기준 한화 약 200만 원)을 회원료로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VVIP 회원들은 일반 채팅방 참여자들보다 더 큰 차익을 낼 가능성이 높다. 정보를 먼저 습득한 VVIP 회원과 펌핑방 운영진들은 일반 회원들에게 ‘시그널’을 보내기 전 가상화폐를 선취매한다. 이후 일반 회원들이 시그널을 받고 매수에 들어가면 선취매한 이들은 말 그대로 ‘땅짚고 헤엄치기’를 하게 되는 것이다.
한 채굴업계 관계자는 “디바의 경우 자본금 얼마 이상 등을 조건으로 내세워 회원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VVIP방에 도는 정보들이 정말 핵심인데 아마 운영진들이 먼저 선매집하고 VVIP에게 정보를 주고 그 뒤에 일반 회원들에게 정보가 돌아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개인방송 BJ까지 나서 투기조장하기도
펌핑 세력 외에도 카카오톡 등 각종 메신저에는 유료 리딩방도 성황이다. 리딩방이란 그날의 시장상황을 설명하고 향후 유망한 종목을 짚어주는 대화방을 뜻한다. 앞서의 가상화폐 전문가는 “카카오톡, 텔레그램 등 각종 메신저에 존재하는 유료 리딩방은 어림잡아 100개 이상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입장 비용은 제각각 다르지만 100만 원 이상 받는 곳도 있다”고 귀띔했다.
최근에는 한 개인 방송 ‘BJ’가 개인 방송에서 직접 가상화폐 매수하는 장면을 보여줘 투기를 조장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진은 방송화면 캡처.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아울러 최근에는 한 개인 방송 ‘BJ’가 개인 방송에서 직접 가상화폐 매수하는 장면을 보여줘 투기를 조장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방송에선 시청자들에게 “따라서 매수하지 말라”고 경고하면서도 실제 자신의 수익을 공개해 보는 이들을 놀라게 한다. 하지만 BJ가 투자 매수하는 장면을 직접 생방송을 통해 지켜본 시청자들이나 투자자들이 자연스레 특정 가상화폐 매수에 몰려 시세가 급등할 수 있다. 한 가상화폐 투자자는 “그 방송을 보고 있으면 ‘저 사람 따라가면 뭔가 될 것 같다’는 심리로 개미 투자자들이 몰릴 것 아닌가. 특정 세력이 움직이는 것도 아닌데 자동으로 ‘펌핑’되는 꼴”이라고 밝혔다.
이런 일들이 어렵지 않게 가능한 것은 국내 가상화폐 거래시장이 아직 제도권 밖에 있기 때문이다. 주식시장에서 ‘펌핑’과 같은 인위적인 시세 조종은 법적으로 제한하며 처벌수위가 강하다. 하지만 가상화폐 시장의 경우 법적인 규제가 미비해 익명성이 존재하고 있어 선의의 피해자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들은 이에 “아직 법망이 미비해 딱히 방법이 없다”며 투자자의 주의를 당부했다. 지난 13일 정부가 가상화폐 규제 대책을 가지고 나왔지만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과 궤를 같이 한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정부 대책은 가상화폐가 무엇인지 확실히 정의를 내리지 못한 상태에서 나온 낮은 수위의 규제”라며 “법적 사각지대를 이용해 여전히 작전세력 등이 시세조종을 할 가능성은 농후하다”고 밝혔다. 이어 “투기과열을 막기 위한 장치나 투자자 보호를 위한 제도적 노력이 하루빨리 나와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상훈 기자 ksanghoon@ilyo.co.kr
‘심상정’ ‘구조대’…가상화폐 투자 은어 아시나요? 가상화폐에 투자한 사람들이 많아지며 그들이 쓰는 다양한 은어도 눈길을 끌고 있다. 특히 24시간 거래가 가능한 가상화폐의 특성상 실시간 등락을 체크하는 투자자들이 주로 모이는 정보공유 커뮤니티에선 이들이 사용하는 은어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디씨 인사이드 비트코인 갤러리에 심상치 않다를 검색해본 결과.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가상화폐 투자자들이 자주 오고가는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를 살펴보면 몇 가지 자주 접하는 말이 있다. 가장 먼저 ‘심상치 않다’라는 단어가 눈길을 끈다. 이 말은 비트코인 주가가 급격히 떨어지거나 오를 것을 의미하는 말을 뜻한다. 한 투자자는 “매수세가 심상치 않으니 예의주시해야 한다는 뜻 정도로 우리 사이에선 ‘심상정’으로 줄여 쓰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가즈아’라는 말도 화제다. 가상화폐 세계에서 ‘가즈아’라는 말이 담긴 게시물이 급격히 늘기 시작하면 시세가 급등하고 있다는 신호 정도로 받아들여진다. 일례로 자신이 투자한 가상화폐 시세가 급등하면 ‘○○ 가즈아!’ 정도로 표현할 수 있다. ‘존버’와 ‘구조대’란 말도 흔히 쓰인다. ‘존버’는 가격이 내려가도 손절하지 않고 끝까지 버틴다는 의미로 다시 시세가 올라가길 기대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아울러 ‘구조대’는 자신이 산 가격까지 시세가 다시 올라오는 것을 뜻한다. 이밖에도 주가가 많이 오르는 현상을 뜻하는 ‘떡상’, 반대로 내리는 현상을 뜻하는 ‘떡락’, 자기가 매수했던 가격보다 내렸을 때 쓰는 말인 ‘물렸다’ 등이 있다. [훈] |